2025년 12월 26일, 세계는 단순한 지정학적 불안을 넘어선 구조적 임계점을 통과하고 있다. 미국 트럼프 행정부가 카리브해에서 전개 중인 베네수엘라에 대한 전례 없는 '완전 봉쇄(Total Blockade)' 조치는 힘에 의한 평화, 즉 '팍스 아메리카나(Pax Americana)'가 극단으로 치닫고 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 사건이다. 동시에 국제 금융 시장에서는 금(Gold)과 은(Silver)이 각각 온스당 4,500달러와 75달러라는 역사적 저항선을 돌파하며, 기존 법정 화폐 시스템(Fiat Currency System)에 대한 불신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다.
◆ '검역'이라는 이름의 전쟁 행위... 카리브해의 긴장 고조
미국 백악관은 베네수엘라 석유 수출입을 '검역(Quarantine)'한다는 명목하에 미 해군(US Navy)과 해안경비대(USCG)에 봉쇄 명령을 내렸다. 현재 카리브해와 동태평양 지역에는 유도미사일 구축함과 항공모함 전단 일부를 포함해 약 15,000명의 병력이 배치된 것으로 파악된다. 이는 수십 년 만에 해당 지역에 전개된 최대 규모의 미군 전력이다. 미 정부 관계자는 지상군 투입보다는 경제적 압박에 우선순위를 두고 있다고 밝혔으나, 이는 주권 국가의 해상 물류를 물리력으로 차단하는 사실상의 '전쟁 행위(Act of War)'로 평가받는다.
실제 현장에서는 교전 수칙이 변경되어 의심 선박에 대한 선제 타격이 감행되고 있다. 보고에 따르면 지난 9월부터 12월 사이 마약 밀매 의심 선박에 대한 28차례의 타격으로 최소 104명이 사망했다. 지난 12월 10일에는 미 특수부대가 헬기 레펠 강습을 통해 무국적 선박인 '스키퍼(Skipper)호'를 나포했으며, 20일에는 미 해안경비대가 200만 배럴의 원유를 적재한 파나마 선적 '센추리스(Centuries)호'를 바베이도스 동쪽 해상에서 나포했다. 이에 대해 베네수엘라 정부는 유엔 안보리에 긴급 회의를 요청하며 미국의 행위를 '침략'으로 규정했고, 러시아와 중국 역시 이를 지지하며 미국을 성토하고 있다.
◆ 부활한 '자원 제국주의', 명분 뒤에 숨은 실리
이번 사태를 관통하는 핵심은 도널드 트럼프(Donald Trump) 미국 대통령이 주창하는 '자원 제국주의(Resource Imperialism)'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라크 전쟁 당시의 논리를 차용하여 "승리한 자가 전리품을 가져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그는 성명을 통해 "빼앗긴 자산을 되찾을 때까지 봉쇄를 지속하겠다"고 선언하며, 나포된 유조선의 석유를 미국 전략비축유(SPR)로 귀속시키거나 판매할 수 있음을 시사했다.
가디언(The Guardian) 등 주요 외신은 이를 국제법상 '해적 행위'와 다를 바 없다고 비판하고 있다. 또한 미 행정부가 펜타닐을 '대량살상무기(WMD)'로 규정하고 베네수엘라를 공급원으로 지목한 것은, 군사 개입의 명분을 마약 퇴치에서 국가 안보 수호로 격상시키기 위한 정치적 포석으로 풀이된다. 이는 과거 이라크 침공 당시의 패턴과 유사하다.
◆ 금융 시장의 '위험한 합의'와 화폐의 타락
지정학적 위기는 금융 시장으로 전이되어 자산 가격의 폭등을 야기했다. 26일 기준 국제 금값은 온스당 4,508.15달러를 기록하며 연초 대비 약 70% 상승했다. 은 가격 역시 온스당 75달러를 돌파하며 150% 이상의 폭등세를 보였다. 이는 미 연방준비제도(Fed)가 인플레이션 우려에도 불구하고 경기 침체 방어를 위해 하반기에만 3회 연속 금리를 인하(현재 3.50~3.75%)한 정책 전환(Pivot)과 맞물려 있다.
시장에서는 위험 자산인 주식과 안전 자산인 금이 동시에 최고치를 기록하는 기현상, 이른바 '위험한 합의(Dangerous Consensus)'가 나타나고 있다. 투자자들은 성장을 원하면서도 시스템 붕괴를 두려워하며 실물 자산으로 도피하고 있는 것이다. 블룸버그 달러 현물지수가 하락하는 등 달러 약세가 뚜렷한데, 이는 미국의 지정학적 리스크 유발이 오히려 미국 통화에 대한 신뢰를 갉아먹고 있는 역설적인 상황이다.
◆ 인본주의적 위기와 생태학살(Ecocide)의 공포
외교신문이 견지하는 인본주의적 관점에서 볼 때, 미국의 봉쇄는 '집단적 처벌(Collective Punishment)'의 성격을 띤다. 유엔 인권최고대표는 포괄적 제재가 식량과 의약품 수급을 차단하여 베네수엘라 빈곤층의 생존권을 위협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민주주의 회복을 명분으로 내세운 제재가 오히려 시민사회의 존립 기반을 무너뜨리는 역설이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더욱 심각한 것은 자연주의적 관점에서 제기되는 생태 위기다. 미국의 봉쇄를 피하기 위해 베네수엘라 원유 수송에 투입된 약 900척의 '그림자 선단(Shadow Fleet)'은 대부분 선령 20년 이상의 노후 선박이다. 이들은 위치 추적 장치를 끄고 운항하며 보험에도 가입되어 있지 않다. 2025년에만 이들 선박의 3분의 1이 사고 위험에 노출된 것으로 보고되었다. 만약 대규모 기름 유출 사고가 발생할 경우, 카리브해의 산호초와 해양 생태계는 돌이킬 수 없는 재앙, 즉 '생태학살'을 맞이하게 된다.
◆ 한국의 딜레마, 실리와 가치 사이의 줄타기
수출 주도형 국가이자 미국의 동맹인 한국(Republic of Korea)은 복잡한 고차방정식을 풀어야 한다. 글로벌 달러 약세에도 불구하고 원/달러 환율은 1,470원 대의 고공행진을 이어가고 있으며, 에너지 수입 의존도가 높은 경제 구조상 유가 불안은 치명적이다. 금·은·구리 가격의 '트리플 랠리'는 일부 기업에겐 호재일 수 있으나, 제조업 전반에는 비용 부담으로 작용한다.
정부는 11월 21일 베네수엘라 접경 지역에 여행 금지를 발령하며 조심스러운 행보를 보이고 있으나, 미국의 동참 요구가 거세질 경우 외교적 입지가 좁아질 수 있다. '규범 기반 국제 질서'를 표방해 온 한국이 국제법 위반 소지가 다분한 봉쇄 조치를 맹목적으로 지지할 경우, 글로벌 사우스(Global South) 국가들과의 관계 악화는 불가피하다.
2025년 말, 우리는 힘에 의한 평화가 한계에 봉착하고 달러 패권이 시험대에 오른 역사의 변곡점에 서 있다. 정부는 한미 동맹을 굳건히 하되, 인본주의와 자연주의적 가치를 훼손하지 않는 선에서 '전략적 모호성'과 '원칙 있는 외교'를 병행해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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