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 기니 국적 남성이 김해국제공항 출국대기실에서 152일간 머물며 대부분의 식사를 햄버거로만 해결한 끝에 26일 오후 5시 22분 마침내 한국 땅을 밟았다.
이번 사건은 2013년 난민법 시행 이래 김해공항 최초의 '공항 난민' 사례로, 한국의 출입국항 난민 심사 제도의 구조적 문제점을 부각시키는 계기가 됐다.
5개월간의 기약 없는 기다림
A씨는 4월 27일 김해국제공항에 도착해 고국 기니에서 군부 독재 반대 시위 참여로 정치적 박해를 받아 한국에 왔다며 난민 인정을 신청했다. 그는 시위 참여 당시 입은 상처의 흉터 등을 증거로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법무부 김해공항출입국·외국인사무소는 5월 초 A씨의 진술에 신빙성이 부족하고 난민 인정 요건을 갖추지 못했다는 이유로 '난민인정 심사 불회부 결정'을 내렸다. 이는 A씨가 정식 난민인정 심사 절차를 밟을 기회 자체를 원천적으로 차단하는 조치였다.
A씨는 본국으로 돌아갈 경우 종신형 등 심각한 위협에 처할 수 있다며 송환을 거부했고, 이후 공항 2층 출국대기실에서 기약 없는 생활을 시작했다.
인권침해 논란 확산
5개월간의 출국대기실 생활은 심각한 인권 문제를 야기했다. 시민단체들은 무슬림인 A씨가 5개월간 식사의 98% 이상을 특정 브랜드의 치킨 햄버거로만, 그것도 불규칙한 시간에 제공받았다고 폭로했다. 이는 난민법이 규정한 '본국의 생활관습과 문화에 맞는 의식주 제공' 의무를 명백히 위반한 것이었다.
A씨의 생활 공간은 외부 공기를 전혀 쐴 수 없는 폐쇄된 곳이었으며, 하루 두 차례 짧은 시간 동안 터미널 출국장으로 나가는 것만이 허용된 외출의 전부였다. 그는 항공사로부터 강제로 비행기에 태우겠다는 위협을 받는 등 지속적인 송환 압박에 시달렸다고 주장했다.
법적 구제와 사회적 연대
공익법센터 '두루' 소속 변호사와 '이주민 인권을 위한 부울경 공동대책위원회' 등 인권단체의 조력을 받아 A씨는 7월 김해공항출입국·외국인사무소장을 상대로 '난민인정 심사 불회부 결정' 취소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9월 24일 부산지방법원 행정단독(박민수 부장판사)은 "김해공항출입국·외국인사무소장은 A씨에 대한 난민인정 심사 불회부 결정을 취소하라"고 판결했다. 이 판결로 A씨는 정식으로 난민 심사를 받을 수 있는 길이 열렸다.
25일에는 A씨를 지원해 온 시민단체들이 부산 연제구 국가인권위원회 부산인권사무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A씨가 출국대기실에서 겪은 비인간적인 처우에 대해 국가인권위원회에 공식 진정을 제기했다.
법무부 항소 포기 결정
법원의 판결과 거세진 여론의 압박 속에서 법무부와 김해공항출입국·외국인사무소는 26일 오전 법원의 1심 판결을 존중하고 출입국항 난민 신청자의 인권을 보호하기 위해 항소를 포기한다고 발표했다.
오후 4시 30분경부터 입국 심사를 받기 시작한 A씨는 오후 5시 22분 152일 만에 공항 밖으로 나와 한국 땅을 밟았다. 그는 이제 한국에 거주하며 수년에 걸릴 수도 있는 정식 난민 심사 절차를 밟게 된다.
심사 불회부 제도의 구조적 문제
이번 사건의 핵심은 한국 난민법 제6조에 따른 출입국항 난민 심사의 2단계 절차에 있다. 첫 번째 단계인 '심사 회부 여부 결정'은 정식 난민 심사를 받을 자격이 있는지를 판단하는 사전 심사로, 신청일로부터 7일 이내에 완료되어야 한다.
난민법 시행령 제5조는 불회부 결정이 가능한 사유로 ▲명백히 경제적인 이유로 신청한 경우 ▲거짓 서류를 제출한 경우 ▲안전한 국가 출신인 경우 등을 열거하고 있다.
하지만 인권단체들은 출입국 당국이 이 조항들을 지나치게 광범위하고 자의적으로 해석하여, 사실상 정식 심사에서 다뤄져야 할 박해의 신빙성 여부까지 이 단계에서 판단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A씨의 경우처럼 '진술의 신빙성이 떨어진다'는 이유는 불회부 결정의 대표적인 남용 사례로 지적된다.
최근 대법원은 불회부 결정의 입증 책임이 난민 신청자가 아닌 처분청, 즉 정부에 있다는 점을 명확히 했다. 이는 정부가 신청자의 주장이 '명백히 이유 없음'을 적극적으로 증명해야 함을 의미한다.
공항 난민 현상의 확산
'송환대기실'로도 불리는 출국대기실은 법적으로 모호한 공간이다. 이곳에 머무는 사람들은 물리적으로는 한국 영토 내에 있지만, 법적으로는 입국하지 않은 상태로 간주된다. 이 시설은 본래 송환 전 몇 시간 또는 며칠간 단기로 대기하는 이들을 위해 설계된 공간이다.
김해공항의 첫 사례이지만, '공항 난민' 현상 자체는 새로운 것이 아니다. 한국의 관문인 인천국제공항에서는 콩고 출신 가족이 14개월간 체류했던 사건이나 북아프리카 출신 남성이 10개월 이상 머물렀던 사건 등이 발생했다.
중요한 차이점은 지역 공항의 인프라 부족 문제다. 인천공항의 경우 1심 소송에서 승소한 난민 신청자를 공항 외부의 난민지원센터 등 별도 시설로 이동시키는 관행이 일부 형성됐지만, 김해공항에는 이러한 대체 시설이 전무하다.
낮은 난민 인정률과 시스템적 한계
한국의 1994년부터 2024년까지 누적 난민 인정률은 1~2%대에 머물고 있다. 이러한 통계는 난민 신청을 까다롭게 심사하고 가급적 인정하지 않으려는 행정적 관행과 문화를 반영한다.
법무부 통계에 따르면, 총 난민 신청 건수는 122,095건이었고, 총 심사 종결 건수는 94,391건이었다. 최종 심사 결정 건수(소송 포함)는 57,090건이었으며, 이 중 난민 인정자는 1,544명에 불과했다. 최종 난민 인정률은 2.7%에 그쳤다.
난민 인정자 중 1차 심사에서 인정받은 경우는 1,116명(72.3%)이었고, 이의신청 단계에서 인정받은 경우는 252명(16.3%), 소송 단계에서 인정받은 경우는 176명(11.4%)이었다. 인도적 체류 허가자까지 포함한 최종 보호율은 7.4%였다.
제도 개선 요구 목소리
국가인권위원회는 수년간 출국대기실의 처우 개선과 장기 체류자를 위한 공항 외부의 국가 운영 시설 마련을 법무부에 지속적으로 권고해왔다. 법무부가 2023년에 출국대기실 환경 개선을 발표하기도 했으나, A씨의 사례는 이러한 개선 조치가 특히 인천공항 외 지역 공항에서는 실질적으로 이행되지 않고 있음을 보여준다.
현재 국회에는 공항 밖에 별도의 대기 시설을 설치하고 운영할 법적 근거를 마련하는 내용의 출입국관리법 개정안이 계류 중이지만, 아직 통과되지 않고 있다.
앞으로의 과제
A씨의 입국 허가는 싸움의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을 의미한다. 그는 이제 막 정식으로 난민 심사를 받을 권리를 얻었을 뿐이다. 한국의 난민 심사 절차는 매우 길고 험난하다. 1차 심사에서 불인정 결정을 받으면 법무부 난민위원회에 이의신청을 할 수 있고, 여기서도 기각되면 다시 행정소송을 통해 다투어야 한다.
법무부 통계에 따르면, 이 모든 절차를 거쳐 최종 결론이 나기까지 평균 4년 이상이 소요된다. 이 기간 동안 그는 불안정한 법적 지위 속에서 불확실한 미래를 감내해야 한다.
이번 사건은 한국의 출입국항 난민 심사 제도가 가진 구조적 문제점을 명확히 드러냈다. 행정 단계의 폐쇄적인 심사 관행, 이를 견제하는 사법부의 역할, 그리고 그 틈을 메우는 시민사회의 노력이라는 역학 관계가 한 개인의 고난을 통해 생생하게 드러났다.
A씨를 지원해 온 시민단체들은 그가 한국 사회에 정착할 수 있도록 거주지 마련 등 실질적인 지원을 제공할 예정이다. 이들의 연대가 없었다면 A씨는 조용히 본국으로 송환되었거나, 여전히 공항에 잊힌 존재로 남아있었을지도 모른다.
김해공항 A씨의 사례는 '공항 난민' 문제를 더 이상 인천공항에 국한된 예외적인 일이 아닌, 모든 국제공항에서 발생할 수 있는 국가적 과제로 격상시켰다. 한국이 국제 난민 협약과 국내 난민법에 명시된 책무를 얼마나 진정성 있게 이행하고 있는지를 묻는 중요한 시금석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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