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산스코다파워를 방문한 체코 페트르 파벨 대통령/두산에너빌리티 자료
두산에너빌리티가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과 체코 두코바니(Dukovany) 신규 원전 주기기 공급 계약을 16일 체결했다고 밝혔다. 계약 규모는 총 5조 6,000억 원으로, 한수원이 주축이 된 '팀코리아'가 수주한 체코 원전 사업의 후속 협력 계약이다. 이는 2009년 아랍에미리트(UAE) 바라카 원전 수출 이후 16년 만에 성사된 대규모 한국형 원전 본계약으로, 유럽 원전 시장 진출의 교두보를 마련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계약 금액은 원자로와 증기발생기 등 주기기 공급에 약 4조 9,000억 원, 터빈과 발전기 공급에 약 7,000억 원 규모로 구성됐다. 이들 제품은 2027년 11월부터 2032년 8월까지 제작을 거쳐 APR1000급(1,000메가와트 규모) 두코바니 5·6호기에 공급될 예정이다. 이번 계약은 지난 6월 한수원이 발주처인 두코바니Ⅱ 원자력발전소(EDU Ⅱ)와 맺은 체코 신규 원전 사업의 본계약에 따른 것이다.
전체 두코바니 프로젝트 사업비는 약 24조 원(180억 달러)으로 추산되며, 2029년 착공을 거쳐 2036년 1호기 상업 운전을 목표로 한다. 한수원은 설계·조달·시공(EPC) 총괄을 맡고, 한전기술이 설계를, 대우건설이 시공을 담당한다. 체코 정부는 자국 기업 참여율 60%를 요구했으며, 두산의 체코 자회사인 두산스코다파워(Doosan Škoda Power)가 터빈 제작에 참여해 이 조건을 충족시켰다.
이번 수주가 성사되기까지는 미국 웨스팅하우스(Westinghouse)와의 지식재산권 분쟁 해결이 결정적 역할을 했다. 웨스팅하우스는 한국형 원전 APR1400이 자사의 '시스템 80' 기술을 기반으로 개발됐다며 2022년 10월 소송을 제기했으나, 올해 1월 한수원과 글로벌 합의를 도출했다. 합의에 따르면 한국은 원전 1기당 약 1억 7,500만 달러의 기술료와 약 6억 5,000만 달러 규모의 미국산 기자재를 구매하는 조건으로 수출권을 확보했다.
프랑스 전력공사(EDF)는 유럽연합(EU)의 해외보조금규정(FSR) 위반 혐의를 들어 계약 직전까지 법적 이의를 제기했으나, 체코 반독점당국(UOHS)이 12월 최종 기각했다. 체코 당국은 "국가 안보와 전력 수급의 시급성이 개별 기업의 상업적 이익보다 우선한다"는 논리를 제시했다. 이는 원자력이 국가 안보 자산임을 유럽 내에서도 공식 인정한 사례로 평가된다.
체코 내 정치 지형도 주목할 만한 변화를 겪었다. 10월 총선에서 안드레이 바비시(Andrej Babiš)가 이끄는 긍정당(ANO)이 제1당으로 복귀해 12월 9일 바비시가 총리로 취임했다. 바비시는 과거 총리 재임 시절(2017-2021) 강력한 원전 옹호 정책을 펼쳤으며, 2020-2021년 안보 평가 당시 러시아 로사톰(Rosatom)과 중국 CGN을 입찰에서 배제하는 결정을 주도했다. 체코 국민의 77%가 신규 원전 건설을 지지하고 있어 정권 교체에도 불구하고 프로젝트는 안정적으로 추진될 전망이다.
두산에너빌리티가 공급하는 주기기는 한국형 원전 APR1000 모델을 기반으로 한다. APR1000은 UAE에 수출된 APR1400을 체코의 내륙 지형과 유럽의 강화된 안전 기준에 맞춰 출력을 1,000메가와트로 최적화한 모델이다. 후쿠시마 사고 이후 강화된 유럽사업자요건(EUR)을 충족하기 위해 피동형 안전 설비와 이중 격납건물을 적용했으며, EU 택소노미(녹색분류체계) 기준도 통과해 저리 금융 조달이 가능하다.
이번 계약은 침체됐던 한국 원전 산업 생태계에 활력을 불어넣을 것으로 기대된다. 두산에너빌리티는 약 424개의 1차 협력사와 거래하고 있으며, 이들 중소·중견기업은 향후 10년간 일감을 확보하게 됐다. 창원 국가산업단지를 중심으로 주기기 제작이 본격화되는 2027년부터는 용접, 비파괴 검사, 가공 분야의 고용이 증가할 전망이다.
한수원은 이번 계약을 통해 체코 테믈린(Temelín) 3·4호기에 대한 우선 협상권을 사실상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두코바니 프로젝트가 순조롭게 진행될 경우 동일한 노형을 적용하는 것이 유지보수 및 부품 호환성 측면에서 유리하기 때문에 추가 수주 가능성이 높다. 체코 수주 성공은 폴란드, 네덜란드, 슬로베니아, 핀란드 등 신규 원전 도입을 고려 중인 유럽 국가들에게도 긍정적 신호로 작용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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