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르게이 라브로프(Sergey Lavrov) 러시아 외무장관/러시아 외무부 자료


러시아가 한국과 일본을 향해 "미국 등 서방 집단과는 달리 실용적인 접근을 하고 있다"며 이례적인 공개 평가를 내놨다. 이는 한국의 이재명 행정부와 일본의 다카이치 내각이 안보 압박 속에서도 경제적 실리를 놓지 못하는 딜레마를 정확히 타격한 것으로, 한·미·일 공조에 균열을 내려는 러시아의 '쐐기 전략(Wedge Strategy)'이 노골화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세르게이 라브로프(Sergey Lavrov) 러시아 외무장관은 16일 모스크바 외무부 영빈관에서 열린 '러시아 연방주체 수장 협의회(Council of Heads of Constituent Entities)' 제45차 회의를 주재하며 동북아시아 국가들에 대한 러시아의 전략적 시각을 드러냈다.

라브로프 장관은 이날 "서방 집단(collective West)이 강요하는 깊은 이념적 노선과 달리, 한국과 일본의 관련 조직 및 기업들이 러시아에 대해 실용적으로 접근하고 있음을 높이 평가한다"고 밝혔다. 그는 양국의 행보를 "주권적 결정"이라고 치켜세우며, 정치적 수사와 실제 경제 활동이 분리되어 움직이는 현상을 긍정적으로 묘사했다.

이날 회의에는 알렉산드르 치불스키(Alexander Tsybulsky) 아르한겔스크 주지사를 비롯한 북극권 및 극동 지역 고위 관계자들이 참석해 북극 지역에서의 국제 협력 방안을 논의했다. 라브로프의 발언은 서방의 제재 포위망을 뚫기 위해 동북아시아 경제 파트너들과의 끈을 놓지 말라는 지방 정부 차원의 지침으로 해석된다.

◆ 韓, 자동차 수출 162% 폭증… 이재명 정부의 '실용 외교'

러시아의 이러한 평가는 2025년 들어 뚜렷해진 한국과 러시아 간의 교역 회복세를 근거로 한다. 이재명 대통령은 취임 이후 전임 정부의 '가치 외교'에서 탈피해 국익 중심의 '실용적 접근(pragmatic approach)'으로 외교 노선을 재조정했다.

실제로 10월 기준 한국의 대러 수출액은 3억 8,100만 달러로 전년 동기 대비 14.5% 증가했다. 특히 주목할 점은 자동차 수출이다. 현대·기아차 등 주요 기업의 현지 생산 차질에도 불구하고, 자동차 수출액은 1억 4,200만 달러를 기록하며 무려 162%나 폭증했다. 이는 서방 브랜드가 철수한 시장 공백을 한국산 완성차와 중고차가 빠르게 메우고 있음을 보여준다.

에너지 분야에서도 '실용주의'는 확인된다. 한국은 지난 8월 러시아산 석탄 수입량을 전월 대비 36% 늘리며 사상 최고치를 기록하는 등, 전력 수급 안정을 위해 대러 에너지 의존도를 유지하고 있다. 러시아는 이를 두고 한국이 미국의 에너지 퇴출 압박에 완전히 동참하지 않는 '이성적 파트너'라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 日 다카이치 총리, 안보는 '강경' 에너지는 '사수'

일본 역시 상황은 비슷하다. 다카이치 사나에(Sanae Takaichi) 총리는 중국과 북한에 대해 강경한 안보 태세를 취하고 있지만, 에너지 안보만큼은 타협하지 않고 있다. 일본은 러시아 사할린-2(Sakhalin-2) 프로젝트의 지분을 여전히 유지하고 있으며, 생산된 액화천연가스(LNG)의 57.5%를 수입하고 있다.

지난 10월 스콧 베센트(Scott Bessent) 미국 재무부 장관이 러시아산 에너지 수입 중단을 요구했음에도, 일본 정부는 "국익에 부합하지 않는다"며 사실상 이를 거부했다. 심지어 12월 10일 중·러 폭격기가 일본 인근에서 합동 비행을 실시해 군사적 긴장이 고조된 상황에서도 에너지 거래는 지속되는 '정경분리'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 북극 개발, 제재 돌파구로 韓·日 지목

라브로프 장관이 이날 회의 주제를 '북극'으로 잡은 것 또한 전략적 포석이다. 러시아는 서방 자본이 떠난 북극 개발과 북극항로(NSR) 활성화를 위해 아시아 국가들의 참여가 절실하다.

미국 국무부가 '북극 LNG-2' 프로젝트를 무산시키겠다고 공언하며 제재 수위를 높이고 있지만, 러시아는 한국과 일본의 조선·해운 기업들이 쇄빙선 계약이나 기자재 공급 등에서 완전히 발을 빼지 않고 '회색 지대'에 머물러 줄 것을 우회적으로 압박하고 있다.

◆ 안보 딜레마 속 '아슬아슬한 줄타기'

러시아의 '칭찬'은 한국과 일본에게 외교적 부담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라브로프 장관은 경제 협력을 높이 평가하면서도, 한편으로는 한·미·일 안보 협력을 "아시아판 NATO"라고 비난하며 안보와 경제를 분리 대응하는 이중적 태도를 보이고 있다.

전문가들은 러시아가 한국과 일본의 안보적 대미 의존성과 경제적 대러 의존성 사이의 괴리를 파고드는 '쐐기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고 분석한다. 다가오는 2026년, 트럼프 행정부의 압박과 러시아의 회유 사이에서 이재명 정부와 다카이치 내각의 외교력이 시험대에 오를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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