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극해/www.antarcticacruises.com 자료

남극 대륙을 둘러싼 남극해(Southern Ocean)의 강력한 폭풍이 지구 온난화를 완화하는 결정적 역할을 한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남극해는 인류가 배출한 과잉 열의 약 75%와 이산화탄소의 약 40%를 흡수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그 구체적인 메커니즘은 극한의 기상 조건으로 인해 베일에 싸여 있었다.

스웨덴 예테보리 대학교(University of Gothenburg)의 마르셀 뒤 플레시스(Marcel du Plessis) 박사 연구팀은 남아프리카공화국 과학산업연구협의회(CSIR)와의 공동 연구를 통해 이달 국제 학술지 '네이처 지오사이언스(Nature Geoscience)'에 획기적인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연구팀은 남극해를 휩쓰는 폭풍이 바다의 수직 혼합을 유발해 심층의 차가운 물을 표층으로 끌어올림으로써 대기와의 온도 차이를 유지하고, 이를 통해 열 흡수 효율을 극대화한다는 사실을 규명했다.

연구팀은 기존 선박 관측이 악천후를 피해 수행됨으로써 발생하는 '맑은 날씨 편향(Fair-weather bias)'을 극복하기 위해 첨단 무인 로봇인 글라이더(Glider)를 폭풍의 중심부로 투입했다. 2018-2019년 남극 여름 동안 수행된 'SOSCEx-Storm' 캠페인을 통해 폭풍이 잦았던 시기에는 혼합층의 깊이가 123미터에 달하며 표층 수온 상승이 억제된 반면, 폭풍이 적었던 시기에는 얕은 혼합층이 형성되며 수온이 급격히 상승했음을 실측 데이터로 증명했다.

이번 발견은 현재 기후 변화 예측의 표준으로 사용되는 CMIP6(Coupled Model Intercomparison Project Phase 6) 모델들이 남극해의 표층 수온을 실제보다 최대 2.5도 높게 예측하는 '온난 편향(Warm Bias)' 오류를 범하고 있었음을 시사한다. 이는 해상도 한계로 인해 국지적이고 일시적인 폭풍에 의한 난류 혼합을 과소평가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연구팀은 이러한 폭풍 주도 혼합 메커니즘이 남반구 환상 모드(Southern Annular Mode, SAM)와도 밀접하게 연동되어 있다고 밝혔다. 최근 수십 년간 오존층 파괴와 온실가스 증가로 인해 SAM지수가 양의 값으로 편향되면서 남극 주변의 편서풍이 강해지고, 이에 따라 폭풍의 빈도와 강도도 증가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번 연구는 유럽연구이사회(ERC)로부터 1천200만 유로, 약 170억원 규모의 지원을 받은 'WHIRLS(Whirls of Heat and Carbon in the Southern Ocean)'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수행됐다. 이 프로젝트는 스웨덴, 남아프리카공화국, 프랑스, 독일 등 4개국의 선도적 연구기관이 참여하는 대규모 국제 공동 연구로, 2024년부터 2030년까지 6년간 진행될 예정이다.

오는 6월 23일부터 7월 3일까지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개최될 제47차 남극조약협의당사국회의(ATCM)에서는 이번 연구 결과가 핵심 의제로 다뤄질 전망이다. 특히 "남극조약 지역 관리에서의 기후 변화 함의"를 주제로 한 논의에서 남극연구과학위원회(SCAR)가 이번 연구를 포함한 최신 보고서를 제출할 예정이다.

남극해양생물자원보존위원회(CCAMLR)가 수년째 교착 상태에 빠진 웨델해(Weddell Sea)와 동남극(East Antarctica) 해양보호구역(MPA) 지정 문제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이번 연구가 집중 조명한 웨델해는 폭풍에 의한 혼합 작용이 활발해 열과 탄소를 심해로 격리하는 '기후 조절 서비스' 기능이 탁월한 지역으로 확인됐다.

한편, 이번 연구는 인간이 탑승하는 쇄빙선 중심의 전통적 해양학에서 자율 무인 로봇을 활용한 원격 해양학으로의 전환을 상징한다. 연구팀은 슬로컴 글라이더(Slocum Glider)와 웨이브 글라이더(Wave Glider)를 활용해 폭풍 속에서도 중단 없이 데이터를 수집하는 데 성공했다.

진수 대기중인 웨이브 글라이더/해양수산부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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