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자동차 홈페이지 자료


현대자동차와 기아가 미국 내 35개 주 법무장관 연합 및 워싱턴 D.C.와 약 400만 대 규모의 도난 방지 장치 무상 장착 합의에 최종 서명했다. 16일(현지시간) 발표된 이번 합의로 지난 5년간 미국 자동차 시장을 흔들었던 '도난 위기'가 사실상 종결 국면에 접어들었다.

현대차와 기아는 2011년부터 2022년 사이 생산된 '키 시동(Turn-key)' 방식 차량에 '아연 강화 점화 실린더 보호 장치(Zinc-Reinforced Ignition Cylinder Protector)'를 무상으로 장착하고, 소비자 피해 구제 및 주 정부 조사 비용 보전을 위해 900만 달러(약 120억 원)를 지불하기로 했다. 미네소타주 법무장관 키스 엘리슨(Keith Ellison)은 이번 하드웨어 장착 프로그램의 이행 비용이 5억 달러(약 6,500억 원)를 상회할 것으로 추산했다.

이번 사태는 해당 차량들이 엔진 이모빌라이저(Engine Immobilizer) 미탑재로 인해 범죄의 표적이 되면서 시작됐다. 2021년경부터 '기아 보이즈(Kia Boyz)'라 불리는 10대 청소년들이 USB 케이블만으로 차량을 훔치는 방법을 틱톡(TikTok)에 공유하면서 '기아 챌린지(Kia Challenge)'가 바이럴 확산됐다. 이로 인해 미 전역에서 최소 14건의 충돌 사고와 8명 이상의 사망자가 발생했다.

◆ 보험사 블랙리스트와 법적 공세

도난 급증은 보험 시장의 붕괴로 이어졌다. 미국 최대 자동차 보험사인 스테이트 팜(State Farm)과 프로그레시브(Progressive)는 2023년 초부터 특정 연식의 현대·기아 차량에 대해 캘리포니아, 조지아, 루이지애나, 오레곤, 워싱턴, 펜실베이니아 등 주요 주에서 신규 가입을 중단했다. 이는 차량 소유주들에게 사실상의 '운행 금지 선고'나 다름없었다.

법적 압박도 거세졌다. 35개 주 법무장관 연합은 현대차와 기아의 차량 결함이 단순한 소비자 피해를 넘어 경찰력과 응급 의료 자원 등 공공 자원을 고갈시키는 '공적 불법 방해(Public Nuisance)'에 해당한다고 주장하며 조사에 착수했다. 캘리포니아 법무장관 롭 본타(Rob Bonta)는 "현대차와 기아는 캐나다와 유럽에서 판매되는 동일한 모델에는 표준으로 장착된 안전 장치를 미국 소비자들에게는 제공하지 않기로 선택했다"고 비판했다.

미네소타주 법무장관실은 2022년 미니애폴리스에서만 도난된 현대·기아차가 5건의 살인, 13건의 총격, 36건의 강도, 265건의 교통사고에 연루됐다고 보고했다. 위스콘신주 밀워키에서는 2020년 대비 2021년 차량 도난이 132% 폭증했으며, 도난 차량의 66%가 현대·기아차였다.

◆ 규제 비대칭의 역습

사태의 근본 원인은 2011년부터 2022년형 현대·기아 기본 트림(Base Model) 차량에 엔진 이모빌라이저가 장착되지 않았다는 기술적 결정에 있다. 엔진 이모빌라이저는 스마트키에 내장된 암호화된 트랜스폰더(Transponder) 칩이 차량의 전자제어장치(ECU)와 통신하여 인증될 때만 시동을 허용하는 보안 장치다.

미국 고속도로손실데이터연구소(HLDI)의 2015년 데이터에 따르면, 당시 미국에서 판매된 타 제조사 차량의 96%가 이모빌라이저를 기본 장착했지만, 현대차와 기아는 단 26%만이 이 장치를 탑재했다. 유럽연합은 1998년부터, 캐나다는 2007년부터 이모빌라이저 장착을 의무화했지만, 미국의 '연방 자동차 안전 기준(FMVSS) 114'는 이를 명시적으로 요구하지 않았다.

현대차와 기아는 초기 대응으로 도난 방지 소프트웨어 업데이트를 배포했으나, 일부 구형 모델은 전자제어장치 사양 문제로 업데이트가 불가능했고, 업데이트를 받은 차량도 절도범들이 우회 방법을 찾아냈다. 뉴욕주 법무장관실은 "소프트웨어 업데이트가 절도범들에 의해 쉽게 우회될 수 있었다"고 지적했다.

◆ 하드웨어 솔루션과 향후 과제

이번 합의의 핵심인 '아연 강화 점화 실린더 보호 장치'는 점화 실린더 본체를 감싸는 형태의 금속 주물로 제작됐으며, 강화 아연 합금을 사용해 일반 공구로 파괴하기 어렵게 설계됐다. 이 장치는 '기아 보이즈'의 절도 수법인 '점화 실린더 뭉치 제거' 자체를 물리적으로 차단한다. 소프트웨어 업데이트가 불가능한 차량은 물론, 이미 업데이트를 받은 차량 소유주들도 희망 시 장착할 수 있다.

현대차와 기아는 딜러망을 통해 무상 장착을 실시하며, 장착 후에는 도난 방지 장치 설치를 알리는 윈도우 데칼(Sticker)을 부착해 시각적 억제 효과를 강화할 예정이다. 이번 합의는 주 정부 조사를 종결하는 것으로, 소비자 집단소송과는 별개로 진행된다. 소비자 집단소송의 경우 약 2억 달러 규모의 합의안이 2024년 10월 연방 법원에서 최종 승인됐으나, 2025년 11월 제9순회항소법원에서 항소 심리가 진행 중이어서 실제 보상금 지급은 2026년 3월~5월 이후로 지연된 상태다.

이번 사태는 9월 조지아주 현대차 메타플랜트에서 발생한 대규모 이민 단속 사태와 겹치면서 현대차 그룹의 미국 내 입지에 복합적 위기를 초래했다. 당시 약 475명의 노동자가 구금됐으며, 이 중 300명 이상이 한국 국적자였다. 한국 외교부는 "깊은 유감과 우려"를 표명했다.

그러나 12월 16일 합의 발표 직후 한국 주식 시장에서 현대차와 기아의 주가는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골드만삭스 등 글로벌 투자은행들은 이번 합의로 인해 불확실성이 제거됐다고 평가했다. 수년간 지속된 법적 리스크가 해소되고 미국 시장 점유율 방어에 집중할 수 있게 된 점이 긍정적으로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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