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호화폐/픽사베이 이미지


영국 정부가 암호화폐를 주식·채권과 동일한 수준의 규제 체계 안으로 편입시키는 포괄적 규제안을 확정하고, 2027년 10월부터 전면 시행에 들어간다. 레이첼 리브스(Rachel Reeves) 재무장관은 15일(현지시간) 공식 발표를 통해 "명확한 규칙을 통해 성장을 촉진하고 소비자를 보호하겠다"며 브렉시트(Brexit) 이후 위축된 런던 금융 경쟁력을 디지털 자산으로 재건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이번 규제의 핵심은 암호화폐 전용 특별법을 신설하는 대신 2000년 금융서비스시장법(Financial Services and Markets Act, FSMA)의 적용 범위를 확장하는 방식을 택했다는 점이다. 이는 유럽연합(EU)이 미카(MiCA)라는 단독 규제법을 제정한 것과 대조적이며, "동일 위험, 동일 규제"라는 기술 중립성 원칙을 구현한 '영국식 실용주의'로 평가받는다. 암호화폐 거래소 운영, 중개, 수탁, 스테이블코인 발행, 대출 및 스테이킹 등 광범위한 활동이 금융행위감독청(FCA)의 정식 인가 대상이 된다.

영국의 이러한 결정은 글로벌 디지털 자산 패권을 둘러싼 치열한 경쟁 구도 속에서 나왔다. 지난 7월 미국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서명으로 '지니어스 법(GENIUS Act)'을 발효시켜 달러 기반 스테이블코인 시장을 선점한 가운데, 영국은 2027년까지 약 2년의 준비 기간을 두고 전통 금융과의 통합을 통해 차별화된 경쟁력을 확보하려는 전략이다.

규제 대상에는 거래소 운영 시 증권거래소 수준의 투명성과 시장 감시 시스템 구축, 중개업자의 최선 집행 의무, 고객 자산 엄격 분리 보관 등이 포함된다. 특히 스테이블코인은 잉글랜드 은행(BoE) 감독 하에 지급준비금 100% 보유 의무가 부과되며, 영국 내 발행자에게만 인가가 허용된다. 다만 단순 기록형 토큰이나 진정한 탈중앙화 금융(DeFi) 프로토콜은 규제 대상에서 제외해 혁신을 위한 여지를 남겼다.

시장 데이터는 규제 도입의 시급성을 뒷받침한다. 제미니(Gemini)의 '2025 글로벌 암호화폐 보고서'에 따르면 영국의 암호화폐 소유 비율은 지난해 18%에서 올해 24%로 급증해 싱가포르(28%)에 이어 세계 2위를 기록했다. 이는 미국(22%)과 프랑스(21%)를 앞서는 수치다. 그러나 영국 금융권(UK Finance)의 '2025 연례 사기 보고서'는 투자 사기 건수는 감소했지만 피해 금액이 34% 급증했다고 밝혀 정교한 사기 수법에 대한 대응 필요성을 시사했다.

업계 반응은 엇갈린다. 영국 금융권과 코인베이스(Coinbase)는 "제도권 편입으로 기관 자금 유입이 가속화될 것"이라며 환영했다. 주모(Zumo)의 최고경영자(CEO) 닉 존스(Nick Jones)는 "디지털 자산이 법정 화폐와 공존할 수 있다는 강력한 신호"라고 평가했다. 반면 크라켄(Kraken)의 공동 CEO 아준 세티(Arjun Sethi)는 영국의 금융 홍보 규제를 "담배 갑의 혐오스러운 경고 그림"에 비유하며 과도한 위험 고지 의무가 소비자 경험을 저해한다고 비판했다.

향후 일정을 보면 2026년 상반기 FCA가 세부 규칙 초안을 발표하고 업계 협의를 거쳐 하반기 최종 규칙을 확정한다. 이후 기업들은 인가 신청이 가능해지며, 2027년 10월부터 인가받지 못한 기업은 영국 내 영업이 전면 금지된다. 리브스 장관이 언급한 "불법 금융 행위자(Dodgy Actors)"는 이 시점부터 시장에서 퇴출되거나 형사 처벌 대상이 된다.

영국 정부는 미국과의 '대서양 횡단 태스크포스(Transatlantic Taskforce)'를 통해 규제 조화를 모색하는 한편, FSMA 확장을 통한 유연성을 무기로 글로벌 핀테크 자본 유치에 나선다는 전략이다. 2026년 국제자금세탁방지기구(FATF) 및 금융안정위원회(FSB)의 글로벌 표준 이행 점검 일정과도 보조를 맞춰 국제적 신뢰도를 확보한다는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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