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상 최초로 우주 전체를 102가지 색상으로 정밀하게 촬영한 지도가 19일 공개됐다. 대한민국 우주항공청(KASA)과 미국 항공우주국(NASA)이 공동으로 수행한 '스피어엑스(SPHEREx)' 프로젝트의 첫 번째 결과물이다. 이번 성과는 한국이 미국의 우주 탐사 프로젝트에서 단순한 재정적 참여자를 넘어, 핵심 기술을 분담하는 '필수 불가결한 파트너(Indispensable Partner)'로 자리매김했음을 보여주는 결정적 사례로 평가받는다.
스피어엑스는 지난 3월 스페이스X의 팰컨9 로켓에 실려 발사된 후, 지구 고도 약 700km 궤도에서 6개월간 밤하늘 전체를 훑으며 관측을 수행했다. 인간의 눈은 가시광선이라는 좁은 영역만 볼 수 있지만, 스피어엑스는 0.75에서 5.0 마이크로미터(㎛)에 이르는 근적외선 대역을 102개의 채널로 쪼개어 우주의 속살을 들여다본다.
이날 공개된 '전천 분광 지도(All-Sky Spectral Map)'는 기존 망원경들이 3~4개의 색으로만 우주를 보던 한계를 뛰어넘은 것이다. 지도상의 파란색은 은하 내의 젊은 별과 뜨거운 수소 가스를, 빨간색은 별 탄생의 재료가 되는 우주 먼지와 유기 분자를 나타낸다. 이는 제임스 웹 우주망원경(JWST)이 좁은 구역을 깊게 보는 것과 달리, 우주 전체의 큰 구조와 물질 분포를 한눈에 보여주는 일종의 '대동여지도' 역할을 한다.
이번 프로젝트는 외교적으로도 상당한 함의를 갖는다. 지난 4월 워싱턴 D.C.에서 열린 '제4차 한미 민간 우주 대화'에서 조태열 외교부 장관과 미국 측 대표단은 스피어엑스의 성공을 한미 동맹 확장의 핵심 사례로 꼽은 바 있다. 안보 중심이었던 한미 동맹이 우주 기술과 탐사라는 미래 지향적 영역으로 깊숙이 통합되고 있음을 시사한다. 특히 제2기 트럼프 행정부의 우주 정책 기조인 '아르테미스 협정(Artemis Accords)' 체제 하에서 한국은 단순 서명국을 넘어 실질적 기여국으로서의 입지를 굳혔다.
한국천문연구원(KASI)의 전략적인 기술 참여도 눈길을 끈다. 총 4억 8,800만 달러(약 6,800억 원)에 달하는 전체 미션 비용 중 한국의 분담금은 약 150억~200억 원으로 5% 미만이다. 그러나 한국은 천문학적 비용이 드는 발사체 경쟁 대신, 자국이 강점을 가진 '극저온 진공 챔버(NVS)' 기술을 제공해 유일한 국제 파트너 지위를 획득했다.
한국천문연구원이 개발해 캘리포니아 공과대학교(Caltech)에 설치한 이 챔버는 영하 220도 이하의 극한 우주 환경을 지상에서 구현하는 장비다. 스피어엑스 망원경은 이 챔버 안에서 초점과 파장 정확도를 검증받은 뒤에야 우주로 나갈 수 있었다. NASA JPL과 칼텍이 주도하는 이번 미션에서 한국은 하드웨어 제공을 통해 전천 분광 데이터에 대한 공동 소유권과 독점적 접근 권한을 확보하는 '가성비' 높은 외교 전략을 성공시켰다.
과학적으로 스피어엑스는 우주 탄생의 비밀인 '급팽창(Inflation)'의 증거를 찾고, 은하 형성의 역사와 생명 기원 물질인 얼음 분자를 추적하는 3대 임무를 수행한다. 한국 연구진인 정웅섭 박사팀과 서울대학교 연구팀은 특히 은하 형성사와 우주 배경광(EBL) 연구를 주도하고 있다.
스피어엑스는 향후 2년간 총 4번의 전천 관측을 수행하며 데이터의 정밀도를 높여갈 예정이다. 이 데이터는 NASA의 데이터 처리 시스템을 거쳐 전 세계 천문학자들에게 제공되며, 제임스 웹 우주망원경 등 대형 관측 장비가 어디를 관측해야 할지 알려주는 길잡이 역할을 하게 된다.
이번 지도의 공개는 2024년 5월 우주항공청 개청 이후 한국이 거둔 첫 번째 대형 우주 외교 승리다. 102가지 색으로 완성된 이 우주 지도는 '우주 G5'를 향한 대한민국의 여정이 궤도에 올랐음을 알리는 선명한 신호탄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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