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뉴욕 유엔본부에서 18일(현지시간) 열린 제80차 유엔총회 본회의에서 북한의 조직적이고 광범위한 인권 침해를 규탄하는 북한인권결의안이 표결 없이 컨센서스(Consensus·전원동의)로 채택됐다. 2005년 제60차 총회 이후 21년 연속 채택이다. 이번 결의안은 특히 북한이 최근 공식화한 '적대적 두 국가' 정책이 인권에 미칠 부정적 파장을 국제사회가 처음으로 공식 문서화해 우려를 표명했다는 점에서 중대한 외교적 의미를 갖는다.
유엔총회는 이날 유럽연합(EU) 회원국과 미국, 일본, 한국 등 61개국이 공동제안국(Co-sponsors)으로 참여한 북한인권결의안을 최종 승인했다. 결의안은 본회의 상정 전인 11월 중순 유엔 제3위원회(사회·인도·문화 담당)에서도 컨센서스로 통과된 바 있다. 중국과 러시아 대표단은 채택 직후 "컨센서스에 동참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구두로 밝혔으나, 공식적인 표결(Recorded Vote)을 요구하지는 않았다. 이는 북한의 인권 상황에 대한 국제사회의 비판 여론이 압도적인 상황에서 수적 열세를 피하려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이번 제80차 결의안의 가장 큰 특징은 김정은 정권의 대남 노선 변경을 인권적 시각에서 다뤘다는 점이다. 결의안은 "북한이 더 이상 대한민국과의 통일을 추구하지 않겠다고 발표한 이후, 이러한 정책 변화가 이산가족 문제를 포함한 인권 상황에 미칠 수 있는 부정적 영향에 대해 우려한다"는 문구를 새롭게 포함했다.
이는 북한이 남한을 '제1의 적대국'으로 규정함에 따라, 이산가족 상봉과 같은 인도주의적 사안조차 '적국과의 내통'이나 '간첩 행위'로 처벌받을 수 있는 법적 환경이 조성된 데 대한 국제사회의 경고다. 유엔은 북한의 새 독트린이 유엔 헌장과 국제인권규약이 보장하는 '가족 결합권'을 심각하게 침해할 소지가 있다고 판단했다.
결의안은 또한 북한 주민의 사상과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이른바 '3대 악법'인 반동사상문화배격법, 청년교양보장법, 평양문화어보호법의 철폐를 강력히 촉구했다. 특히 남한 영상물 유포자를 사형에 처하거나 남한식 말투 사용을 처벌하는 등 자의적이고 광범위한 사형 집행이 이 법률들에 근거해 이뤄지고 있음을 지적하며 깊은 우려를 표했다.
이와 함께 지난 9월 12일 발표된 유엔 인권최고대표(OHCHR)의 보고서 내용도 결의안의 핵심 근거로 반영됐다. 폴커 튀르크(Volker Türk) 유엔 인권최고대표는 김정은 집권 10년을 '잃어버린 10년(A Lost Decade)'으로 규정하며, 북한의 군사비 지출과 주민 식량권 사이의 극심한 불균형을 비판한 바 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북한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군사비 지출은 34.0%에 달해 세계 1위를 기록한 반면, 전체 인구의 약 40%인 1,070만 명은 영양실조 상태에 놓여 있다.
한국 정부는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확립된 '인권 원칙주의' 기조에 따라 이번 결의안에도 공동제안국으로 참여했다. 안창호 국가인권위원장은 성명을 통해 "북한 인권 상황에 획기적 변화가 없는 한 지속적으로 참여해야 한다"며 환영의 뜻을 밝혔다.
반면, 북한 측은 강력히 반발했다. 김성 주유엔 북한 대사는 채택 직전 발언을 통해 이번 결의안을 "미국과 그 추종 세력들이 주도하는 정치적 모략이자 거짓과 날조로 점철된 대결 문서"라고 비난하며 전면 배격한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한편, 이번 결의안 채택에도 불구하고 대북 인권 단체들의 상황은 녹록지 않다. 최근 미국 국립민주주의기금(NED) 등의 자금 지원 축소로 대북 라디오 방송과 정보 유입 활동을 하던 주요 NGO들이 재정난에 직면해 있으며, 한국 내 북한인권증진재단 역시 국회의 이사 추천 거부로 9년째 출범하지 못하고 있어 민간 차원의 인권 개선 활동 위축이 우려되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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