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력공사가 2025년 11월 12일부터 세계 최고 수준의 지능형 활선작업 로봇 플랫폼 개발에 착수했다. 전류가 흐르는 고압선 작업을 전기를 끄지 않고도 수행할 수 있는 이 로봇 시스템은 작업자의 안전사고를 획기적으로 예방할 것으로 기대된다. 이는 단순한 기술 혁신을 넘어, AI가 물리적 세계와 본격적으로 상호작용하는 '피지컬 AI' 시대의 도래를 상징하는 사례다.
엔비디아의 젠슨 황 최고경영자(CEO)는 CES 2025에서 "로봇을 위한 챗GPT의 모멘트가 다가오고 있다"며 로봇 중심의 물리적 AI 시대가 다가올 것이라고 강조했다. 과연 AI의 미래는 어떤 모습일까. 산업 현장의 변화와 일자리 재편, 그리고 우리가 준비해야 할 과제를 짚어본다.
1950년대 태동에서 피지컬 AI까지
오늘날 AI의 태동은 195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1950년 영국의 전산학자 앨런 튜링은 '기계가 생각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지며 기계의 능력을 측정하는 '튜링 테스트'를 제안했다. 이후 1956년 미국 다트머스 대학 학회에서 'AI'라는 용어가 처음 등장했다.
2006년 제프리 힌턴이 '심층 신뢰 신경망'(DBN)을 제시해 신경망의 학습 속도와 효율성을 크게 높이면서 현대 AI 기술의 핵심인 '딥러닝'이 가능해졌다. 이제는 AI가 스스로 데이터에서 규칙을 파악할 수 있게 된 것이다. 2016년 구글 딥마인드의 알파고가 바둑기사 이세돌 9단을 꺾은 사건은 AI 기술의 잠재력을 세계에 각인시켰고, 2022년 출시된 오픈AI의 챗GPT는 '생성형 AI'의 대중화를 이끌었다.
엔비디아는 피지컬 AI를 "인지하고, 계획하고, 행동하는 인공지능"이라고 정의했다. 즉, AI 기술이 실제 물리적 장치와 결합하여 인간과 상호작용하거나 환경을 변화시키는 기술을 의미한다. 이는 스크린 속에 머물던 AI가 로봇, 자율주행차, 공장 자동화 기기 등을 통해 현실 세계에서 직접 작업을 수행하는 단계로 진화했음을 뜻한다.
엔비디아 GPU 공급과 피지컬 AI 강국 경쟁
엔비디아가 한국에 26만장의 그래픽처리장치(GPU)를 공급하기로 하면서, 한국이 로봇과 자율주행 등 '피지컬 AI' 분야에서 세계 3대 강국으로 도약할 수 있다는 전망이 제기되고 있다. 정부도 AI 3대 강국 달성과 피지컬 AI 선도국 지위를 목표로 예산안에 10조원이 넘는 투자를 편성하며 기반 다지기에 나섰다.
엔비디아는 로봇의 두뇌 역할을 하는 AI 모델부터 현장에서 로봇이 움직일 연료를 제공하는 로봇용 컴퓨팅 보드까지 제공한다. 대표적으로 엔비디아의 옴니버스 플랫폼 아이작 심은 AI 기반 로봇 솔루션을 시뮬레이션하고 테스트할 수 있는 풀 스택 역량을 제공한다.
한국의 피지컬 AI 산업을 선도하는 기업은 삼성전자와 현대차그룹이 대표적이다. 현대차그룹은 보스턴 다이내믹스 인수 후 휴머노이드 로봇(ATLAS)을 공개했으며, 삼성전자는 레인보우로보틱스의 최대 주주에 등극하고 미래로봇추진단을 신설하는 등 지능형 휴머노이드 개발을 가속화하고 있다.
중국의 산업용 로봇 시장은 빠르게 성장하며 2024년 기준 전 세계 신규 설치량의 54%를 차지한다. 휴머노이드 로봇 분야에서도 중국은 전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상용화 단계로 진입하고 있으며, 2025년 기준 중국 휴머노이드 로봇 시장 규모는 82억위안으로 추정된다.
디지털 트윈과 산업 현장 혁신
업종을 막론하고 AI 시뮬레이션을 통한 디지털 트윈이 가속화될 전망이다. 디지털 트윈은 현실 세계의 사물·시스템·공정을 디지털 공간에 동일하게 구현해 실시간으로 모니터링·예측·최적화할 수 있도록 하는 가상 복제 기술이다.
제조업에서는 설계, 제조, 검사 등을 하나의 공장 트윈으로 묶고 로봇, 고정 노선 운송 로봇(AGV), 설비에 대한 통합 시뮬레이션을 돌릴 수 있다. AI 시뮬레이션으로 신규 설비 시험 기간을 30∼50% 단축할 수 있고, 설비 간 병목을 제거해 생산성을 높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물류업에서는 AI 시뮬레이션으로 창고 지도를 디지털 트윈으로 재현한 뒤 자율주행 운송 로봇(AMR), 파킹 스테이션을 최적화할 수 있다. 헬스케어 업계에서는 AI 시뮬레이션으로 수술 시나리오를 영상이나 컴퓨터단층촬영(CT)을 디지털 트윈에서 리허설하고 로봇 보조 동작을 사전 검증할 수 있다.
카운터포인트리서치는 활용 범위 확장, 하드웨어 비용 절감, AI 역량 진보 등에 힘입어 2030년 전세계 휴머노이드 로봇 출하량이 25만 6천 대에 이를 것으로 전망했다.
일자리 대체, 과도한 우려인가 현실인가
한국은행은 챗GPT가 출시된 2022년 7월∼2025년 7월 청년층 일자리가 21만1천개 감소했는데, 그중 20만8천개가 AI 노출도가 큰 업종에서 발생했다고 발표했다. AI로 대체하기 쉬운 정형화된 업무가 챗GPT에 대체됐다는 분석이다.
옥스퍼드대 연구팀은 2013년 향후 20년 이내에 미국 일자리의 약 47%가 컴퓨터에 의해 대체 및 자동화되거나 직업의 형태가 크게 변화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자동화 위험이 높은 직업은 주로 반복적이고 복잡하지 않은 업무였다.
하지만 미국 MIT 연구팀은 2024년 1월 발표한 논문에서 대다수의 근로자를 기계로 대체하기에는 현재 경제적 효과가 부족하다며 AI에 의한 일자리 대체가 예상보다 점진적일 것이라고 전망했다. 한국직업능력연구원은 2030년의 전체 취업자의 58.2%가 AI의 영향을 받는 취업자로 분류되었으며, 전체 취업자 중 9.5%는 AI로 대체될 위험에 노출될 것으로 예측했다.
중요한 것은 새로운 일자리의 창출이다. 골드만삭스는 생성 AI로 인해 3억 개의 정규직 일자리가 AI 자동화에 노출될 수 있지만, 10년 후 글로벌 GDP를 7% 증가시킬 것으로 예측했다. 세계경제포럼(WEF)은 2023년 조사 결과에서 2027년까지 향후 5년간 8,300만 개의 일자리가 사라지고 6,900만 개의 일자리가 창출되어 순수하게 감소하는 일자리 수가 1,400만 개에 달할 것으로 전망했다.
세계경제포럼은 "2016년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아이들의 약 65%는 현존하지 않는 새로운 직업을 가지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AI와 데이터 관련 직군, 데이터 분석가 및 과학자, AI 및 기계 학습 전문가, 빅데이터 전문가 등의 일자리가 급속도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규제와 윤리적 과제
유럽연합(EU)은 AI 기술을 안전하고 윤리적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세계 최초로 AI 규제 법안을 제정, 위험 수준에 따라 AI 시스템에 대한 규제 수준을 달리했다. 미국도 AI 권리장전을 발표하며 AI 기술의 잠재적 위험으로부터 시민권을 보호한다는 내용을 강조했다.
우리나라는 2026년 1월 AI 기본법 시행을 앞두고 하위법령을 마련하고 있는데, EU의 인공지능법과 마찬가지로 사업자가 학습 데이터 출처를 공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결론: 적응과 공존의 시대
피지컬 AI 시대는 이미 시작되었다. 독일 인더스트리 4.0은 생산 기계·공정에 정보통신기술(ICT)을 접목하고 데이터를 교환해 최적화하는 것으로, 독일 민간 중심으로 2011년 수립된 국가 산업발전 전략이다. 일본은 2015년 1월 로봇 산업 경쟁력 강화를 위한 로봇 신전략을 수립하고 정부의 정책 목표에 힘입어 스마트 제조시장에서 2019∼2024년 연평균 10.2% 성장률을 기록했다.
AI가 인간의 일자리를 일정 부분 대체할 것이라는 점에는 이견이 없다. 다만 어떤 업종을 대체할지와 대체 속도에 대해선 아직도 의견이 갈리고 있어 과도한 경계보다는 AI를 어떻게 활용하고 적응할지에 대한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
AI와 자동화는 일부 직업을 대체할 수 있지만, 새로운 기술을 습득하고 변화에 적응하는 능력을 갖춘 개인과 기업에게는 새로운 기회가 될 것이다. 정부의 정교한 교육, 노동 및 산업 정책은 양질의 일자리 창출을 촉진할 수 있으며, AI시대에 무엇보다 중요한 정부의 사명은 개인과 기업이 변화에 적응하는데 필요한 역량을 갖추도록 지원하는 것이다.
로봇 개발이 본격화되면 고위험 전력설비 작업현장에 작업자 대신 투입되어 작업자 안전사고를 획기적으로 예방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또한 향후 발전소, 산업 플랜트, 터널 등 다양한 고위험 작업 현장에도 활용이 가능해 안전한 작업환경 구축의 전환점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AI는 더 이상 선택이 아닌 필수다. 중요한 것은 기술의 발전을 막는 것이 아니라, 그 변화에 적응하고 인간과 AI가 공존할 수 있는 사회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다. 교육 혁신, 직업 재교육, 사회안전망 강화 등 다각도의 정책적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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