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 MOU 서명식/청와대 자료


이재명 대통령이 1월 4일부터 7일까지 중국을 국빈 방문하며 경색됐던 한중 관계 복원에 시동을 걸었다. 2017년 문재인 전 대통령 이후 9년 만의 단독 국빈 방중으로, 양국은 14개 분야 양해각서(MOU)를 체결하고 정상 간 셔틀 외교를 재개하기로 합의했다. 그러나 이 대통령이 제안한 북핵 '동결' 방안과 서해 중국 구조물에 대한 발언은 야당과 안보 전문가들의 거센 비판을 받으며 외교적 성과를 반감시키는 요인이 됐다.

이 대통령은 5일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과 90분간 정상회담을 갖고 한중 관계를 "되돌릴 수 없는 시대적 흐름"으로 발전시키기로 했다. 회담 후 만찬에서는 시 주석이 선물한 샤오미(小米) 스마트폰으로 함께 셀카를 찍는 파격적인 장면도 연출됐다. 시 주석은 "사진 찍는 기술이 나쁘지 않다"며 농담을 건넬 정도로 우호적인 분위기를 조성했다. 과거 일본과의 회담에서 '주머니 손' 논란을 일으킨 류진쑹(劉勁松) 외교부 아주사 사장도 이번 회담에서는 미소를 띠며 한국에 대한 예우를 보였다.

이재명 대통령과 한국 경제인 대표단/청와대 자료


경제 분야에서는 실질적 성과가 있었다. 양국은 공급망 안정화, 과학기술 협력, 식품 위생, 지식재산권 보호 등 14개 분야에서 협력 각서를 체결했다. 이번 경제 사절단에는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반도체 대기업보다 엔터테인먼트, 소비재, 스타트업 기업들이 대거 참여했다. 중국이 반도체 자립을 추진하는 상황에서 서비스와 소비재 분야로 협력 축을 이동하려는 전략적 선택이었다.

문화 교류에서도 긍정적 신호가 포착됐다. 이 대통령이 한류 콘텐츠 규제인 '한한령(限韓令)' 해제를 요청하자, 시 주석은 "살얼음이 한 번에 녹지 않고 과일은 때가 되면 익어서 떨어진다"는 우회적 표현으로 답했다. 즉각적인 해제 선언은 없었지만, 정치적 관계 개선에 따라 자연스럽게 해결될 것임을 시사한 것으로 해석된다. 간송미술관 소장 청나라 시대 돌사자상을 중국 국가문물국에 기증하는 문화외교도 진행됐다.

그러나 안보 분야에서는 논란이 불거졌다. 이 대통령은 7일 상하이에서 가진 기자 간담회에서 "현재 수준에서 북핵을 동결하는 것만으로도 이익"이라며 "이를 대가로 북한에 보상이나 반대급부가 가능하다"고 밝혔다. 비핵화를 장기 목표로 미루고 단기적으로는 추가 핵 생산과 이전 중단,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개발 중단에 초점을 맞추자는 제안이었다. 야당인 국민의힘은 이를 "북한의 핵 보유를 사실상 용인하는 안보 자해 발언"이라고 비판했다.

한·중 정상회담/청와대 자료


서해 잠정조치수역 내 중국 구조물 문제에 대한 대응도 도마에 올랐다. 이 대통령은 중국이 설치한 대형 구조물에 대해 "중국 쪽 경계에 살짝 넘어온 것"이라며 "양식장 관리 시설이라고 중국이 해명했고 철거하기로 합의했다"고 설명했다. 국민의힘 박성훈 수석대변인은 "중국의 불법 행위를 지적하고 사과를 요구하기는커녕 중국 측 해명을 대변해줬다"며 "비굴한 저자세 외교"라고 맹비난했다.

주목할 점은 국빈 방문임에도 불구하고 공동성명이나 공동기자회견이 없었다는 사실이다. 양국은 각자의 입장을 담은 보도자료만 배포했다. 한국은 북한 비핵화와 한반도 평화에 대한 중국의 약속을 원했고, 중국은 '하나의 중국' 원칙 지지와 미국 주도 공급망 배제 반대 등을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 측 발표문에는 '비핵화'나 '한반도'라는 단어조차 포함되지 않아 양국 간 시각차가 여전함을 보여줬다.

이 대통령은 이번 방중을 "2026년을 한중 관계 전면 복원의 원년으로 만드는 계기"로 규정했다.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사드 배치 이후 10년 가까이 지속된 갈등기를 종식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실제로 양국은 정상 간 셔틀 외교를 정례화하고 매년 1회 이상 상호 방문하기로 합의했다. 6일에는 중국 권력 서열 3위인 자오러지(趙樂際)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장과 2위인 리창(李強) 국무원 총리를 연쇄 접견하며 양국 관계의 깊이를 더했다.

중국 국빈방문 공식 환영식/청와대 자료


방중 기간 중 북한의 도발도 있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이 대통령 출국 당일인 4일 극초음속 미사일을 발사하며 "지정학적 위기에 대응한 전쟁 억제력 강화"를 과시했다. 이는 한국의 중재자 역할을 부정하고 미국, 중국과의 직접 거래를 선호하는 북한의 기존 입장을 재확인한 것으로 분석된다.

중국은 이번 방중을 전략적으로 활용했다. 일본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의 "대만 유사시 자위대 개입" 발언으로 중일 관계가 냉각된 상황에서, 한국을 일본과 분리 대응하려는 '연미(聯美)·포한(包韓)·제일(制日)' 전략의 일환으로 이 대통령을 극진히 환대했다. 중국 관영 신화통신과 글로벌타임스는 이번 방중을 대대적으로 보도하며 한국이 일본과 달리 중국과의 우호를 선택했다고 선전했다.

미국은 공식적으로 한중 관계 개선을 반대하지 않는다는 입장이지만, 국무부는 상황을 "엄중히 주시한다"고 밝혔다. 특히 이 대통령의 핵 동결 제안이 미국의 완전한 비핵화 원칙과 충돌할 가능성에 우려를 표명한 것으로 전해졌다. 한국이 대만 문제에서 '하나의 중국' 원칙을 존중한다는 입장을 명확히 한 것도 한미 동맹 차원에서 잠재적 부담 요인이 될 수 있다.

이번 방중은 한중 관계 정상화의 첫 단추를 끼웠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그러나 북핵 해법의 정교화, 서해 주권의 실질적 수호, 미중 균형의 관리라는 과제를 남겼다. 체결된 14개 각서가 단순한 종이 조각에 그치지 않도록 후속 조치를 점검하고, 엔터테인먼트와 스타트업 등 신산업 분야 진출을 위한 제도적 지원을 강화하는 것이 향후 과제로 남는다. '전면 복원'된 한중 관계가 진정한 전략적 협력으로 나아갈지, 아니면 형식적 수사에 그칠지는 이제부터의 실천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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