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란드의 위치/위키백과 자료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베네수엘라 군사 개입에 이어 덴마크령 그린란드(Greenland)에 대한 병합 의사를 공식화하면서,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구축된 대서양 동맹이 심각한 시험대에 올랐다. 백악관은 그린란드 매입을 위해 "군사력 사용"도 배제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천명했고, 이에 덴마크는 1952년 수립된 교전수칙을 재확인하며 강력 반발에 나섰다.

덴마크 일간지 벨링스케는 7일 덴마크 국방부와 방위사령부가 냉전 초기 제정된 교전수칙의 현재 유효성을 공식 확인했다고 보도했다. 이 수칙은 "공격받은 부대는 명령을 기다리지 말고 즉시 반격해야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어, 미국의 물리적 강압이나 특수부대를 통한 기습 점거 시도가 있을 경우 자동적인 군사 충돌이 발생할 수 있음을 경고하는 것이다. 70여 년 만에 다시 소환된 이 수칙이 소련이 아닌 동맹국 미국을 향하고 있다는 점에서 사태의 심각성이 드러난다.

메테 프레데릭센(Mette Frederiksen) 덴마크 총리는 "미국이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회원국을 공격한다면, 그것은 나토의 종말이자 전후 안보 질서의 끝"이라고 경고했다. 나토 조약 제5조는 한 회원국에 대한 공격을 전체에 대한 공격으로 간주하지만, 공격 주체가 동맹의 핵심인 미국일 경우 이 조항은 논리적 모순에 빠질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유럽의 위기감은 7개 주요국의 긴급 공동성명으로 표출됐다. 영국,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폴란드, 스페인, 덴마크는 1월 6일 공동성명을 통해 "그린란드는 그린란드 국민에게 속하며, 그 미래를 결정할 권한은 오직 덴마크와 그린란드에 있다"고 밝혔다. 특히 러시아의 위협에 맞서 미국과 긴밀히 협력해온 폴란드의 도날드 투스크(Donald Tusk) 총리가 "어떤 회원국도 나토 회원국을 공격하거나 위협해서는 안 된다"며 동참한 것은 트럼프 행정부의 행보가 동맹 내부에서도 용인될 수 없는 수준임을 보여준다.

그린란드의 전략적 가치는 미사일 방어와 자원 확보라는 두 축으로 설명된다. 그린란드 북서부의 피투픽(Pituffik) 우주군 기지는 북극을 넘어오는 대륙간탄도미사일을 탐지하는 북미항공우주방위사령부(NORAD)의 핵심 시설이다. 동시에 그린란드는 중국이 독점한 희토류를 대체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대안으로, 미국 지질조사국은 그린란드의 희토류 매장량을 약 4천700만 톤으로 추정한다.

그린란드 내부에서도 반발이 거세다. 지난 3월 총선에서 제1당이 된 민주당 주도로 구성된 옌스 프레데리크 닐센(Jens-Frederik Nielsen) 총리의 연립정부는 의석의 75퍼센트를 차지하는 거국 내각을 구성했다. 닐센 총리는 "더 이상의 압박이나 병합 환상은 없어야 한다"며 미국의 베네수엘라 사태와 그린란드를 연결 짓는 것에 대해 "매우 무례하다"고 비판했다.

한반도 안보에도 파장이 예상된다. 트럼프 행정부가 1951년 미-덴마크 방위조약마저 무시하는 상황에서, 한미 간 방위비 분담금 협정 역시 재협상 압박에 직면할 가능성이 높다. 또한 미국이 그린란드 확보를 위해 전 세계 미군 재배치를 검토할 경우, 주한미군의 역할 변경이나 감축 논의가 불거질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한국은 2013년 북극이사회 정식 옵서버 자격을 획득하고 극지 연구와 자원 외교를 펼쳐왔다. 그러나 미-덴 갈등으로 북극이사회 기능이 마비되거나 그린란드가 분쟁 지역화될 경우, 한국의 입지는 크게 좁아질 수밖에 없다. 한국은 덴마크와 녹색성장 동맹을 맺고 풍력 및 에너지 분야에서 협력해왔는데, 미국이 덴마크를 배제하고 그린란드 자원을 독점하려 할 때 한국 기업들이 양자택일을 강요받는 딜레마에 빠질 수 있다.

덴마크 정보당국은 미국의 전략이 전 지구적 동맹 관리에서 '서반구 방어 및 패권 유지'로 축소되면서 북극 지역 동맹국 간 신뢰가 약화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는 미국이 더 이상 덴마크를 보호해야 할 동맹이 아닌, 미국 이익 실현을 위해 제거해야 할 장애물로 인식할 수 있음을 경고한 것이다.

전력 면에서 덴마크는 누크에 합동북극사령부를 운용하고 있지만, 미국의 원자력 잠수함과 항모강습단에 비해 소규모 초계함과 시리우스 썰매 순찰대 수준에 불과해 압도적인 비대칭 상황이다. 그럼에도 덴마크가 70년 전 교전수칙을 꺼내든 것은, 동맹국이라 할지라도 스스로를 지킬 의지와 능력이 없으면 강대국의 흥정 대상이 될 수 있다는 냉엄한 현실을 보여준다.

트럼프 행정부의 최측근인 스티븐 밀러 백악관 고문과 마코 루비오 국무장관, 피트 헤그세스 국방장관 등 강경파들은 "그린란드는 덴마크가 아닌 미국의 안보 자산"이라는 논리를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 밀러의 배우자이자 공화당 인사인 케이티 밀러는 성조기로 뒤덮인 그린란드 지도를 소셜미디어에 올리며 "곧"이라는 문구로 노골적인 병합 의지를 드러냈다.

이번 사태는 2019년 트럼프 1기 행정부 당시 제기된 부동산 거래 수준의 제안과는 질적으로 다르다. 베네수엘라 군사 작전 성공을 등에 업은 구체적이고 실존적인 위협으로 진화했기 때문이다. 규범에 기반한 국제 질서가 가장 심각한 도전에 직면한 가운데, 한국 외교 당국은 한미동맹의 불확실성에 대비한 대안을 마련하고 북극 정책을 재검토해야 할 시점에 놓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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