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말릴란드 공화국 위치도/위키백과


이스라엘이 26일 아프리카 동부의 미승인 독립국 소말릴란드 공화국(Republic of Somaliland)을 주권 국가로 공식 승인했다. 1991년 소말릴란드가 소말리아로부터 분리 독립을 선언한 이래 유엔 회원국이 공식 승인한 첫 사례다. 베냐민 네타냐후(Benjamin Netanyahu) 총리는 이날 기드온 사르(Gideon Sa'ar) 외무장관과 압디라흐만 모하메드 압둘라히(Abdirahman Mohamed Abdullahi) 소말릴란드 대통령 간 공동 선언을 통해 양국의 농업·기술·안보 협력을 천명했다.

네타냐후 총리는 이번 결정을 "아브라함 협정(Abraham Accords)의 정신을 계승하는 역사적 결단"이라고 규정했다. 그러나 외교가에서는 가자지구 전쟁 이후 예멘 후티 반군의 홍해 봉쇄에 직면한 이스라엘이 베르베라(Berbera) 항구를 군사 거점으로 활용하려는 안보 전략이 배경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소말릴란드는 아덴만과 홍해를 잇는 길목에 위치해 후티 반군을 감시하고 이란의 영향력을 견제할 수 있는 전략적 요충지다.

소말리아 연방 정부는 즉각 "자국 영토에 대한 명백한 주권 침해이자 공격 행위"라며 반발했다. 이집트, 튀르키예, 지부티 등 주변국과 아프리카연합(AU), 이슬람협력기구(OIC)도 이스라엘의 결정을 강력히 규탄했다. 특히 이번 수교가 가자지구 팔레스타인 난민을 소말릴란드로 강제 이주시키려는 은밀한 계획과 연동돼 있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인도주의 논란으로 비화하고 있다.

소말릴란드의 베르베라시/위키백과


소말릴란드는 1960년 6월 26일 영국으로부터 독립해 당시 미국과 이스라엘을 포함한 35개국의 승인을 받았으나, 5일 후 남부의 이탈리아령 소말리아와 자발적으로 통합했다. 1991년 시아드 바레(Siad Barre) 독재 정권 붕괴 후 재독립을 선언한 이래 자체 헌법과 통화, 군대를 갖추고 평화적 정권 교체를 이뤄온 '사실상의 국가'로 기능해왔다.

지난 11월 13일 실시된 대통령 선거에서 야당 와다니(Waddani) 당의 압둘라히 후보가 63.92%를 득표해 현직 대통령을 누르고 당선됐다. 프리덤 하우스(Freedom House) 2024년 보고서에 따르면 소말릴란드는 100점 만점에 43점으로 '부분적 자유' 국가로 분류된 반면, 소말리아는 8점으로 '부자유' 등급에 머물렀다. 이스라엘은 이러한 민주적 정당성을 승인의 주요 명분으로 제시했다.

이스라엘 정보기관 모사드(Mossad)의 다비드 바르네아(David Barnea) 국장은 수개월간 비밀리에 소말리란드 지도부와 접촉하며 이번 수교를 주도한 것으로 알려졌다. 네타냐후 총리는 공식 성명에서 모사드의 기여에 특별한 감사를 표했다. 소말릴란드의 베르베라 항구는 아랍에미리트(UAE)의 DP 월드(DP World)가 운영하며 연간 50만 TEU 처리 능력을 갖췄고, 향후 200만 TEU로 확장될 예정이다.

에티오피아는 지난 1월 1일 소말릴란드와 양해각서를 체결하고 해안선 20킬로미터를 임차해 해군 기지를 건설하기로 합의한 바 있다. 내륙국인 에티오피아에게 이스라엘의 선제적 승인은 자신들의 소말릴란드 승인에 대한 외교적 부담을 덜어주는 계기가 될 전망이다. 반면 중국은 '하나의 중국' 원칙과 유사한 논리로 소말리아의 주권을 강력히 지지하며 유엔 안보리에서 소말릴란드 승인 저지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소말릴란드 수도 하르게이사 전경/위키백과


도널드 트럼프(Donald Trump) 미국 대통령 당선인은 뉴욕포스트와의 인터뷰에서 소말릴란드에 대해 "누가 거기를 아느냐"며 즉각적인 승인 의사가 없음을 시사했다. 그러나 미 국방부와 공화당 일각에서는 중국의 지부티 기지를 견제하기 위해 소말릴란드의 전략적 가치를 높이 평가하고 있다. 대만은 이스라엘의 결정을 환영하며 "민주주의와 자유를 공유하는 파트너"로서 3자 협력 가능성을 시사했다.

한국은 대유럽 수출입 물량의 상당수가 홍해를 통과하는 만큼 이번 사태에 전략적 대응이 요구된다. 홍해 위기로 인한 물류비 상승이 수출 기업에 부담이 되는 상황에서 베르베라 항구의 안정화는 물류 다변화 기회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섣불리 이스라엘 편을 들 경우 아프리카연합 및 아랍 국가들과의 관계가 훼손될 위험이 있어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외교 전문가들은 한국이 공식 승인보다는 영국이나 UAE처럼 대표사무소 수준의 '기능적 관여'를 확대하는 실리적 접근이 바람직하다고 조언한다. 아덴만 해역에서 작전 중인 청해부대를 활용해 소말릴란드 해안경비대와 비공식 정보 공유 채널을 구축하고, 베르베라 항만 인프라 개발에 한국 기업의 참여를 검토하는 방안도 제시됐다. 유엔 안보리 긴급회의가 소집될 경우 한국은 당사자 간 평화적 대화를 촉구하는 균형 잡힌 입장을 견지해야 한다는 의견이다.

이번 사태는 기존의 '하나의 소말리아' 정책이 현장의 실체적 진실과 부합하지 않음을 국제사회에 각인시켰다. 팔레스타인 이주설 논란에도 불구하고 소말릴란드의 지정학적 가치와 민주적 성취는 더 이상 무시할 수 없는 외교 변수로 떠올랐다. 홍해 안보 환경이 요동치는 지금, 한국 외교는 가치와 이익 사이에서 정교한 균형추를 찾아야 하는 과제에 직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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