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겔 디아스카넬(Miguel Díaz-Canel) 쿠바 대통령/사진=인스타그램 캡춰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의 베네수엘라 니콜라스 마두로(Nicolás Maduro) 대통령 체포 작전을 계기로 카리브해 지정학적 긴장이 최고조에 달하고 있다. 쿠바 정부가 미국의 군사 개입을 강도 높게 비난하며 나선 가운데, 베네수엘라산 석유 공급 중단 위기에 직면한 쿠바의 정권 생존 문제가 국제사회의 주목을 받고 있다.
미겔 디아스카넬(Miguel Díaz-Canel) 쿠바 대통령은 11일(현지시간) 소셜미디어 엑스(X)를 통해 "모든 것을, 심지어 인간의 생명마저도 사업화하려는 자들은 쿠바에 대해 지적할 도덕적 자격을 갖고 있지 않다"며 미국을 맹비난했다. 이는 마두로 체포에 5천만 달러의 현상금을 건 미국의 행태와, 경제 봉쇄를 통해 쿠바 국민의 생존권을 위협하는 전략을 '비도덕적 상업주의'로 규정한 것으로 풀이된다.
미국은 3일 새벽 '절대적 해결(Operation Absolute Resolve)' 작전을 통해 베네수엘라 수도 카라카스에서 마두로 대통령을 체포해 뉴욕으로 압송했다. 미 법무부는 마두로를 '나르코 테러리즘' 혐의로 기소하며, 그가 25년간 마약 밀매 조직 '카르텔 데 로스 솔레스(Cartel of the Suns)'를 운영했다고 주장했다. 미군은 150대 이상의 항공기를 동원해 대통령궁을 타격했으며, 미측은 미군 사상자 7명의 부상자만 발생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베네수엘라 당국은 군인 23명, 쿠바 보안요원 32명을 포함해 최소 80명 이상이 사망했다고 반박했다.
쿠바의 격렬한 반응 배경에는 실존적 경제 위기가 자리하고 있다. 쿠바는 에너지 수요의 60% 이상을 화력발전에 의존하며, 그 연료 대부분을 베네수엘라에서 공급받아왔다. 2025년 9월 베네수엘라는 일일 5만2천 배럴의 원유를 쿠바에 지원했으나, 마두로 체포 이후 이 공급망은 즉각적인 차단 위기에 직면했다. 쿠바는 이미 2024년부터 2025년까지 노후 발전소 고장으로 국가적 대정전 사태를 겪었으며, 2025년 10월에는 인구의 3분의 1이 전력 공급을 받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했다.
경제 위기도 심각하다. 2025년 1월 기준 쿠바의 월간 물가상승률은 2.06%로 연율 27.7%에 달했으며, 암시장에서 페소화 가치가 폭락하면서 국영 상점의 물품이 고갈됐다. 최근 4년간 인구의 25%가 감소해 전체 인구가 800만 명 아래로 떨어졌다는 분석도 제기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11일 자신의 소셜미디어 '트루스 소셜(Truth Social)'을 통해 "쿠바는 수년간 베네수엘라의 석유와 돈으로 연명하며 그 대가로 독재자를 위한 보안 서비스를 제공했다"며 "이제 그 연결고리는 끊어졌다. 더 이상의 석유도, 돈도 없다. 너무 늦기 전에 거래(Deal)를 하라"고 압박했다. 이는 쿠바가 베네수엘라에 파견한 군사·정보 고문단을 철수하고 마두로 세력 지원을 중단하라는 최후통첩으로 해석된다.
국제사회의 반응은 엇갈렸다. 중국 외교부 린젠(Lin Jian) 대변인은 "미국은 국제법을 위반하는 일방적 군사 행동을 즉각 중단하고 마두로 대통령을 무조건 석방하라"고 촉구했다. 러시아의 바실리 네벤자(Vasily Nebenzya) 유엔 대사는 안보리 긴급회의에서 "미국이 스스로를 세계의 대법관이자 경찰로 착각하고 있다"고 규탄했다. 안토니오 구테흐스(António Guterres) 유엔 사무총장은 "주권 국가에 대한 무력 행사는 위험한 선례"라며 우려를 표명했다.
라틴아메리카 국가들도 강하게 반발했다. 멕시코의 클라우디아 셰인바움(Claudia Sheinbaum) 대통령은 "개입은 결코 민주주의를 가져오지 않는다"고 비난했으며, 브라질의 룰라 다 실바(Lula da Silva) 대통령은 "넘어서는 안 될 선을 넘었다"고 경고했다. 콜롬비아의 구스타보 페트로(Gustavo Petro) 대통령은 자신이 다음 타깃이 될 수 있다는 위기감 속에 국경 지역에 군대를 배치했다.
한국 정부는 4일과 5일 외교부 대변인 성명을 통해 "베네수엘라의 최근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으며, 역내 긴장 완화를 위해 관련 당사국들이 최선의 노력을 다할 것을 촉구한다"며 신중한 입장을 표명했다. 한국은 2024년 2월 쿠바와 수교한 이후 2025년 2월 하바나에, 6월 서울에 각각 대사관을 개설했으나, 트럼프 행정부의 제재 강화로 경제 협력은 사실상 중단 위기에 처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해 취임 첫날인 1월 20일 행정명령을 통해 바이든 행정부가 해제하려던 쿠바의 테러지원국 지정을 재지정했다. 또한 1996년 제정된 헬름스-버튼법(Helms-Burton Act) 제3조를 재가동해 쿠바 내 국유화된 자산과 관련된 외국 기업에 대한 소송을 허용했다. 이로써 한국 기업들의 쿠바 진출은 법적 리스크에 직면하게 됐다.
한국 외교부는 베네수엘라 체류 한국민 70여 명에 대해 비상 연락망을 점검하고 대피소를 확보했으며, 쿠바 전역에 대해서는 뎅기열 확산 등을 이유로 2025년 11월부터 '여행 유의(1단계)' 경보를 발령 중이다. 외교 전문가들은 한국이 한미 동맹을 유지하면서도 중남미 국가들과의 관계를 훼손하지 않는 정교한 외교 전략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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