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의 전격 사임으로 일본 정계가 요동치고 있다. 이번 사임은 단순한 지도자 교체를 넘어, 기시다 후미오 내각부터 이어진 자민당의 구조적 위기가 터져 나온 결과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고질적인 '정치와 돈' 문제, 즉 비자금 스캔들이 자민당의 신뢰를 뿌리째 흔들었고, 이는 총선 참패와 정권 교체 위기로 이어졌다. 이제 일본은 자민당의 차기 총리 선출이라는 중대한 기로에 섰다. 이 선택은 일본의 미래뿐 아니라, 한일관계의 향방을 결정할 중대한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무너진 자민당, '정치와 돈' 스캔들의 전말

이번 일본 정치 격변의 핵심에는 자민당의 뿌리 깊은 비자금 스캔들이 자리 잡고 있다. 이는 일부 의원의 일탈이 아닌, 아베파(세이와정책연구회)를 중심으로 수십 년간 이어진 구조적 관행이었다. 이들은 정치자금 모금 행사에서 할당액을 넘긴 수익금을 소속 의원들에게 돌려주는 '킥백' 방식으로 거액의 비자금을 조성해 금권 정치의 온상으로 활용했다.

이 사실이 드러나자 기시다 내각 지지율은 '위험 수위'인 20%대 아래로 곤두박질쳤고 , 고물가와 정책 실책까지 겹치며 민심은 등을 돌렸다. 결국 기시다 총리는 연임 도전을 포기했고 , 구원투수로 등판한 이시바 시게루 총리마저 개혁에 실패하며 총선 참패의 책임을 지고 단명으로 물러났다.

스캔들의 여파로 아베파, 기시다파 등 주요 파벌이 해산을 선언했지만 , 이는 파벌 정치의 종식을 의미하지 않는다. 비공식 그룹으로 여전히 영향력을 행사하며 차기 총재 선거 구도를 더욱 복잡하게 만들고 있다.

차기 주자 3인3색, 대한(對韓) 정책은?

차기 총리 자리를 놓고 다카이치 사나에 전 경제안보담당상, 고이즈미 신지로 농림수산상, 고노 다로 전 외무상 등 3명의 유력 주자가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이들의 성향은 향후 한일관계를 예측하는 핵심 변수다.

다카이치 사나에: 강경 우파의 귀환

다카이치 사나에 전 경제안보담당상은 아베 신조 전 총리의 정치 노선을 계승하는 대표적인 강경 우파 정치인이다. 그는 '국방군' 창설을 위한 헌법 개정을 주장하며 , 역사 문제에 대해 비타협적인 자세를 고수하고 있다. 특히 일본군 '위안부'와 강제징용 문제를 부정하고 , 총리가 되더라도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강행하겠다고 공언했다. 또한 "한국이 독도에 더는 구조물을 만들지 않게 하겠다"고 발언하는 등 노골적인 도발도 서슴지 않았다.

고이즈미 신지로: 예측 불가능한 포퓰리스트

고이즈미 신지로 농림수산상은 높은 대중적 인기를 누리는 차세대 주자다. 그의 대한(對韓) 정책은 '전략적 모호성'으로 요약된다. 최근 국립현충원을 참배하고 한국 문화에 대한 애정을 드러내는 등 유화적 제스처를 보였지만 , 한국 방문 불과 나흘 만인 15일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해 '뒤통수를 쳤다'는 비판을 받았다. 그의 행보는 일관된 외교 철학보다 국내 정치적 계산에 좌우될 가능성이 크다는 평가다.

고노 다로: 실용주의적 협상가

고노 다로 전 외무상은 자민당 내 대표적인 실용주의자로 꼽힌다. 그는 부친인 고노 요헤이 전 관방장관의 '고노 담화' 계승을 밝히면서도 , 국익을 최우선으로 하는 현실주의적 면모를 보인다. 김포-하네다 공항 사전입국심사제 도입 등 실질적인 협력 방안을 적극 제안하고 있지만 , 2019년 외무상 시절 강제징용 문제와 관련해 "극히 무례하다"며 한국 대사를 질책하는 등 강경한 협상가의 모습도 보인 바 있다.

세 가지 시나리오, 한일관계 어디로 가나

차기 총리 후보에 따라 한일관계는 세 가지 갈림길에 놓일 전망이다.

시나리오 1: 다카이치 총리 - 외교적 빙하기
다카이치 총리가 선출될 경우 한일관계는 즉각적인 경색이 불가피하다. 총리 자격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 역사 왜곡, 독도 영유권 주장 강화 등으로 양국 관계는 최악의 상황으로 치달을 수 있다. 강제징용 문제 해결 노력은 전면 중단되고, 한미일 안보 협력 체제에도 심각한 균열이 예상된다.

시나리오 2: 고이즈미 총리 - 안갯속 관계
고이즈미 총리 체제에서는 예측 불가능성이 가장 큰 위험 요소다. 국내 여론을 의식한 '매력 공세'와 돌발적인 강경 행보가 반복될 수 있다. 역사 문제 등 민감한 현안은 회피하고, 단기적 이익에 따른 거래적 관계에 머무를 가능성이 높다.

시나리오 3: 고노 총리 - 제한적 실용 협력
고노 총리가 집권하면 양국 관계는 가장 안정적인 궤도에 오를 가능성이 있다. 경제, 안보, 기술 등 기능적 분야에서의 협력은 빠르게 진전될 수 있다. 그러나 강제징용 등 역사 문제에 대해서는 1965년 협정으로 해결됐다는 기존 입장을 고수하며 한 치의 양보도 없을 것으로 보인다.

한국의 대응 전략은

어떤 시나리오가 펼쳐지든 한국 정부의 정교한 외교 전략이 요구된다. 현재 한일관계는 최악은 면했지만 여전히 취약하며 , 국내적으로 강제징용 '제3자 변제' 해법에 대한 반대 여론도 높은 상황이다.

따라서 차기 일본 총리의 성향에 맞춰 △피해 최소화(다카이치) △신중한 관여(고이즈미) △선제적 협력(고노) 등 맞춤형 비상 계획을 가동해야 한다. 이와 함께 기능적 협력과 역사 문제를 분리하는 '투트랙' 접근을 유지하되 , 한미일 삼각 안보 협력을 강화해 양자 관계의 마찰을 줄이는 '안전장치'로 활용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일본의 선택을 예의주시하며 모든 가능성에 철저히 대비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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