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일 파리에 모인 시위대 모습/보도영상 캡춰


프랑스가 2023년부터 올해까지 연금 개혁 시위, 대규모 도시 폭동, 조기 총선으로 인한 정치적 마비에 이르기까지 일련의 심각한 사회적·정치적 불안정 사태를 연속적으로 겪으며 유럽연합(EU) 내 리더십 공백 우려가 커지고 있다.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의 강경한 개혁 추진 방식과 의회 내 다수 기반 상실, 제5공화국 헌정 체제의 구조적 취약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로, 프랑스의 재정 건전성과 국제적 입지에 심각한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2023년 연금 개혁: 헌정적 충돌의 시작

2023년 초 프랑스를 강타한 연금 개혁 반대 시위는 마크롱 대통령의 국내 개혁 의지를 시험하는 리트머스 시험지였다. 프랑스는 국내총생산(GDP) 대비 약 14%를 연금 지출에 사용하고 있으며, 이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인 9%보다 훨씬 높은 수준으로 그리스와 이탈리아에 이어 세 번째로 높은 수치다.

정부는 법정 최소 정년을 62세에서 64세로 2030년까지 단계적으로 상향하고, 완전 연금을 받기 위한 기여 기간을 2035년이 아닌 2027년부터 43년으로 앞당기는 개혁을 추진했다. 그러나 여론조사 결과 대다수의 프랑스 국민이 이 정책에 반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시위 규모와 분노를 극대화시킨 결정적 요인은 마크롱 정부가 법안 통과를 위해 헌법 49.3조를 발동하여 의회의 표결 없이 법안을 강제로 통과시킨 것이다. 2022년 총선에서 마크롱의 집권당이 의회의 절대다수를 상실하면서 정부는 연금 개혁안이 단순 다수로도 통과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이러한 강제적인 조치는 야당으로부터 정부의 '약점 고백'이자 '총체적 실패'로 규정되었으며, 광범위하게 '권위주의적' 통치 방식으로 인식되었다. 49.3조 발동 이후 정부는 두 차례의 내각 불신임 투표에 직면했으나, 주요 불신임 투표에서 단 9표 차이로 간신히 위기를 모면했다.

연금 개혁 반대 시위는 2023년 1월 19일 첫 시위 이후 10차례 이상의 전국적인 동원일이 이어지며 프랑스 전역을 마비시켰다. 특히 3월 7일에는 내무부 추산 128만 명, 노동조합(CGT) 추산 280만 명이 참가하여 수십 년 만에 기록적인 규모를 보였다. 노조들은 강력하게 연대하여 쓰레기 수거 중단, 유류 공급 차단, 철도 및 항공 교통 마비 등 광범위한 경제 활동 혼란을 유발했다.

시위 과정에서 발생한 경찰의 과잉 진압은 국제적인 논란을 낳았다. 유럽평의회와 유엔 인권 전문가들은 프랑스 당국이 시위 진압 과정에서 과도하게 무력을 사용했다고 비판했다. 특히 경찰이 최루탄과 스턴 수류탄 등 군용 등급의 무기를 사용하는 것은 유럽 국가 중 프랑스만이 공공 질서 유지 작전에 사용하는 것으로 알려져 더욱 우려를 낳았다.

이러한 정치적 위기는 재정적 결과로 곧바로 이어졌다. 마크롱 대통령이 재정 건전화를 위해 개혁을 강행했음에도 불구하고, 사회적 분열과 불안정이 지속되면서 신용 평가 기관인 피치(Fitch)는 프랑스의 신용 등급을 강등했다.

나헬 M. 폭동: 사회 통합의 실패

2023년 6월 27일 파리 외곽 난테르에서 17세의 북아프리카계 청년 나헬 M.이 교통 검문 중 경찰의 총격으로 사망한 사건을 기폭제로 8일간 전국적인 폭동이 발생했다. 인권 단체들은 2017년 이후 경찰 검문 중 사망한 피해자의 대부분이 흑인 또는 아랍계 출신이었다는 점을 지적하며, 프랑스 법 집행 기관 내에 제도적 인종차별 문제가 존재함을 강조했다.

폭동은 파리 외곽의 교외 지역을 넘어 툴루즈, 릴 등 프랑스 전역으로 빠르게 확산되었으며, 방화, 약탈, 대규모 기물 파손 등 극심한 도시 폭력의 형태를 띠었다. 짧은 8일 동안 3,300명 이상이 체포되었고, 808명의 경찰관이 부상을 입었다. 재산 피해액은 약 6억 5천만 유로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되었으며, 5,662대의 차량이 불에 탔고 1,000개 이상의 건물이 파손되었다.

정부는 폭력을 진압하기 위해 4만 명의 경찰력을 전국에 배치하고, 심지어 RAID(특수 기동 부대)나 GIGN(헌병대 특수 수색 구조 부대)과 같은 대테러 특수 부대까지 동원하는 강경책을 펼쳤다.

유엔 인권최고대표사무소(OHCHR)는 나헬 M.의 총격 사건이 프랑스가 법 집행 내 인종차별 문제를 심각하게 다룰 '계기'가 되어야 한다고 공개적으로 비판했다. 국제 인권 전문가들은 프랑스 경찰의 치안 전략이 "무질서하고, 공격적이며, 잔혹하다"고 지적했다.

2024년 조기 총선: 헝 의회의 탄생

2023년의 연이은 사회 불안정과 2024년 유럽의회 선거에서 극우 정당인 국민연합(RN)에 마크롱의 집권당이 대패하자, 대통령은 정치적 돌파구를 찾기 위해 의회를 전격적으로 해산하고 2024년 6월과 7월에 조기 총선을 단행했다.

선거 결과, 극우 RN의 승리 대신 좌파 연합인 신인민전선(NFP)이 193석으로 최다 의석을 확보했다. 마크롱의 르네상스당은 166석으로 2위에 머물렀고, RN은 142석을 차지했다. 어느 정당도 절대다수를 확보하지 못한 헝 의회(Hung Parliament)가 탄생했으며, 이는 프랑스 제5공화국 헌정 체제의 근간인 강력한 대통령 중심제가 의회 중심제로 변모하는 '제4공화국화'의 징후로 평가된다.

조기 총선 이후 마크롱 대통령의 권위는 크게 약화되었고, 정부 구성은 극심한 난항을 겪었다. 지난해 7월. 가브리엘 아탈 총리가 사임한 이후, 프랑스는 1년 사이에 세 명의 총리(아탈, 프랑수아 바이루, 세바스티앵 르코르뉘)를 임명해야 하는 극심한 리더십 불안정을 겪었다.

2025년 긴축 반대: 거리가 예산을 결정한다

프랑수아 바이루 총리는 9월, 정부가 높은 재정 적자를 해결하기 위해 제안한 2026년 예산안, 즉 440억 유로 규모의 대규모 긴축 정책을 둘러싼 불화로 의회 신임 투표에서 패배하여 정부가 붕괴했다. 이는 다수 의석을 확보하지 못한 정부가 핵심적인 재정 정책을 추진할 능력을 완전히 상실했음을 보여주었다.

바이루 내각의 붕괴 이후에도 프랑스의 재정 문제(2024년 GDP 대비 5.8% 적자)는 지속적인 긴축을 요구하는 외부 압력으로 작용했다. 마크롱은 새로운 총리 세바스티앵 르코르뉘를 임명했지만, 이 역시 대중의 분노를 잠재우지 못했다.

9월, 노동조합은 다시 전국적인 대규모 파업을 단행했다. 교사, 대중교통 종사자, 병원 직원, 심지어 약사들까지 파업에 동참하며 전국적으로 250개 이상의 시위가 조직되었다. 이 시위는 '모두 봉쇄하라(Bloquons tout)'는 풀뿌리 운동과 결합되었으며, 노동조합(CGT)의 수장인 소피 비네(Sophie Binet)는 "거리가 예산을 결정해야 한다"고 선언했다.

재정 건전성 압박과 국제적 위상 훼손

프랑스의 지속적인 불안정은 국가 경제의 근본적인 취약성을 노출시키고 있다. 프랑스의 공공 부채는 GDP 대비 112%로 EU 내에서 가장 높은 수준 중 하나이며, 2024년 예산 적자는 5.8%로 유로존 내 최고 수준이다.

시위와 폭동으로 인한 직접적인 경제적 손실도 상당하다. 2023년 나헬 M. 폭동만으로도 6억 5천만 유로에 달하는 물적 피해가 발생했으며, 연금 개혁 시위는 파업과 교통 마비를 통해 경제 활동 전반에 혼란을 초래하며 '분위기 불황'을 가속화시켰다.

프랑스의 반복되는 사회적·정치적 혼란은 유럽 내 핵심 파트너들에게 심각한 우려를 낳고 있다. 2024년 조기 총선 당시 독일 총리 올라프 숄츠는 프랑스 극우 정당의 승리 가능성에 대해 공개적으로 "우려한다"고 표명했다.

국내 불안정은 마크롱 대통령의 외교적 주도권을 약화시키는 결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한다. 마크롱 대통령은 외교 정책에서 여러 목표를 동시에 추진하며 합의를 모으는 '앙 멤므 탕(en même temps, 동시에)' 방법론을 추구해왔으나, 국내 정치에서 이 방식은 사회적 합의 없는 개혁 강행으로 변질되어 분열만을 낳았다.

마크롱 대통령의 관심과 자원이 국내 위기 관리에 집중될 가능성이 높다. 이는 프랑스가 EU 및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확대, 우크라이나 지원, 유럽 안보 이니셔티브와 같은 주요 외교적 의제에서 일관성과 추진력을 상실할 수 있다는 우려를 낳고 있다.

구조적 불안정의 고착화

프랑스가 2023년부터 올해까지 겪은 일련의 위기들은 단순한 정치적 격변이 아닌, 구조적 불안정의 고착화를 시사한다. 정부는 인구 통계학적 및 재정적 현실에 직면하여 연금 개혁이나 긴축 정책과 같은 필수적인 구조 개혁을 강행해야 하는 피할 수 없는 임무를 안고 있다.

그러나 마크롱 대통령의 통치 방식과 2024년 조기 총선으로 인한 헝 의회 상황은 이러한 필수 개혁이 사회적 합의와 민주적 정당성을 상실한 채 진행되도록 만들고 있다. 프랑스 정부는 재정 규율과 사회적 합의라는 양립하기 어려운 요구 사이에서 만성적인 딜레마에 빠져 있다.

프랑스의 정치적 마비는 유럽의 핵심 축이 국내 문제로 동력을 상실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마크롱 대통령의 권위 약화와 정부의 불안정은 프랑스가 EU 내에서 강력하게 추진해왔던 재정 통합 및 안보 정책에 대한 일관성과 신뢰도를 훼손할 수 있다.

장기적으로 마크롱 대통령의 잔여 임기는 국내 정치 위기 관리에 집중될 가능성이 높으며, 이는 프랑스의 외교적 야심에 제약을 가하고 유럽 리더십에 공백을 초래할 수 있다. 프랑스의 사례는 유럽 내 다른 국가들이 직면할 수 있는 재정 건전화 압력과 민주적 정당성 확보 간의 충돌을 예고하는 중요한 선행 지표로서, 유럽 통합의 미래에 대한 구조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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