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6주간 전 세계 가상화폐 시장에서 1조2천억 달러(약 1,760조 원)가 증발하며,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통화정책 방향을 둘러싼 불확실성이 글로벌 금융 안정성을 위협하는 새로운 위험 요인으로 부상했다. 이는 전체 가상화폐 시가총액의 약 25%가 급락한 것으로, 가상화폐가 더 이상 독립적 자산이 아닌 거시경제 변수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금융 자산으로 자리매김했음을 보여준다.
가상화폐 데이터 제공업체 코인게코(CoinGecko)에 따르면, 비트코인(BTC)이 사상 최고치인 12만6천272.76달러를 기록했던 10월 6일 이후 급격한 하락세가 이어졌다. 11월 18일 기준 코인데스크 비트코인 가격 지수(CoinDesk Bitcoin Price Index)는 9만2천783.70달러를 기록해 최고점 대비 26.52% 하락했으며, 11월 21일 아시아 거래에서는 8만5천350.75달러까지 떨어지며 7개월 만의 최저치를 기록했다. 이더리움(ETH) 역시 2천777.39달러로 4개월 만의 최저 수준으로 하락했다.
이번 시장 붕괴의 핵심 원인은 연준의 금리 인하 기대감이 단기간에 극적으로 역전된 데 있다. 시카고상품거래소(CME) 페드워치 툴(FedWatch Tool) 데이터에 따르면, 10월 13일 95.46%에 달했던 12월 금리 인하 기대 확률은 11월 13일 49.6%로 급락했고, 11월 중순에는 41%까지 떨어졌다. 연준의 정책 방향에 대한 시장의 기대가 "동전 던지기(Coin Toss)" 수준으로 변하면서, 투자자들은 위험 자산에서 급격히 이탈했다.
미국 정부 셧다운으로 인한 경제 데이터 발표 지연도 시장 충격을 증폭시켰다. 6주간 지연되거나 누락된 주요 경제 지표가 한꺼번에 공개되자, 투자자들은 인플레이션 및 금리 기대치를 "거의 하룻밤 사이에 재조정"해야 했다는 분석이다. 이 과정에서 약 190억~200억 달러에 달하는 비트코인 거래 포지션이 강제 청산(liquidation)되며 하락세를 가속화했다.
특히 비트코인은 11월 들어 15.37% 하락하며 2019년 이후 가장 부진한 11월 실적을 기록할 전망이다. 이는 역사적으로 가장 강력한 성과를 보였던 11월이라는 전통적 패턴이 무너진 것으로, 가상화폐 시장이 고유의 계절적 패턴보다 거시경제 변수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가상화폐 시장의 급락은 고립된 현상이 아니라, 인공지능(AI) 관련 주식 폭락과 동시에 발생한 광범위한 위험 회피 현상의 일부였다. 구글의 모회사인 알파벳(Alphabet)의 최고경영자(CEO)는 현재의 AI 붐에 "비합리성(irrationality)"이 존재한다고 언급하며, 버블 붕괴 시 "우리 회사를 포함해 어떤 회사도 면역되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더욱 우려되는 것은 가상화폐 시장 붕괴가 전통 금융 시스템으로 전이될 위험이 커지고 있다는 점이다. 올해 3분기 기준 가상화폐 시가총액은 4조2천억 달러로, 미국 주식 시장의 약 7%, 부채 시장의 약 13%에 해당한다. 글로벌 상장사들은 총 1천200억 달러 규모의 비트코인을 보유하고 있어, 암호화폐 시장의 대규모 붕괴가 특정 기업의 재무 건전성 및 주식 시장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경로가 형성됐다.
특히 스테이블코인이 전통 금융 시장과 가상화폐 시장을 연결하는 새로운 시스템적 고리로 부상했다. 올해 2분기 스테이블코인 시가총액은 243억1천만 달러로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으며, 테더(USDT)와 서클(USDC) 같은 달러 기반 토큰이 성장을 주도했다. 이들 스테이블코인 발행사들은 준비금을 주로 미국 단기 국채와 머니마켓 상품에 보관하는데, 3월 기준 단기 국채 보유액이 1천140억 달러를 넘어섰다. 이는 일부 주요 외국인 투자자나 국내 머니마켓 펀드의 보유액을 능가하는 수준이다.
국제통화기금(IMF)과 유럽중앙은행(ECB)은 암호화폐와 전통 금융 시장 간 상호 연결성이 강화되면서 시스템 리스크가 "제한적이지만 최근 증가"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유럽 시스템 리스크 이사회(ESRB)는 글로벌 스테이블코인 시가총액의 99%가 달러 기반이라는 점을 우려하며, 이들이 복잡한 '다중 발행자(multi-issuer)' 구조를 통해 유럽연합(EU)의 가상자산시장규제법(MiCA) 규제를 우회하여 EU 시장에 리스크를 유입시키고 있다고 경고했다.
국제 규제 공조도 심각한 이행 격차를 보이고 있다. 금융안정위원회(FSB)는 10월 주요20개국(G20)에 제출한 보고서에서 회원국들의 암호화폐 및 글로벌 스테이블코인 관련 권고안 이행에 "상당한 격차와 불일치(significant gaps and inconsistencies)"가 있다고 밝혔다. FSB 의장은 11월 20일 G20 정상들에게 보낸 서한에서 글로벌 표준의 이행 강화를 촉구했다.
미국 내부에서는 규제 관할권 재편 움직임이 가속화되고 있다. 미국 상원 농업위원회는 11월 10일 상품선물거래위원회(CFTC)에 디지털 상품 시장에 대한 연방 감독 권한을 집중시키는 내용의 입법 초안을 발표했다. 이 법안은 증권거래위원회(SEC)의 관할권을 축소하고 가상화폐를 '증권(Securities)'이 아닌 '상품(Commodities)'으로 취급하려는 정책 의지를 담고 있다.
장기적으로는 기관 투자자의 참여 확대와 규제 환경 발전으로 비트코인의 전통적인 '4년 주기' 패턴이 종료되고, 변동성이 낮은 지속적 성장 궤도로 진입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2026년에는 스테이블코인이 기업 재무 관리와 국경 간 결제 시스템 등 전통 금융 거래에 보편적으로 사용될 것으로 예상된다.
전문가들은 이번 사태가 가상화폐 위험이 국경을 초월해 전통 금융 안정성을 위협할 수 있음을 확인시켰다며, FSB 권고안의 일관된 이행 의무화, 달러 스테이블코인에 대한 초국가적 감독체계 구축, 지정학적 리스크와 암호화폐 시장 연동 분석 강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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