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트코인이 등장한 지 15년이 지났다. 처음 '탈중앙화 화폐'라는 이상적 비전을 내걸었던 이 디지털 자산은 이제 범죄와 탐욕의 상징으로 변질되고 있다. 2024년 한 해 동안 전 세계에서 발생한 암호화폐 관련 불법 거래액은 최소 447억 달러, 약 750억 달러에 달할 것으로 추정된다. 비트코인 가격이 오를 때마다 해킹, 사기, 심지어 살인까지 동반 상승하는 기이한 상관관계가 나타나고 있다.
캄보디아 프린스그룹 회장 천즈가 보유한 12만7천여 개의 비트코인을 둘러싼 미국과 중국의 갈등은 비트코인이 단순한 투자 자산을 넘어 국가 간 패권 다툼의 대상이 되었음을 보여준다. 35억 달러에서 시작해 현재 약 150억 달러(약 20조원)로 불어난 이 비트코인은 미국 법무부에 의해 압수됐다.
중국은 미국이 2020년 중국계 채굴풀 루비안을 해킹했다고 주장한다. 중국 국가컴퓨터바이러스비상대응센터는 2시간 동안 12만 개 이상의 비트코인이 외부로 빠져나갔고, 4년간 동결됐다가 2024년 미국 정부 지갑으로 이동했다고 밝혔다. 미국은 전신사기와 강제노동 범죄 수익을 몰수했을 뿐이라며 수사 방법 공개를 거부하고 있다.
천즈는 '청년 기업가'와 '자선가' 이미지로 위장했지만, 실제로는 강제노동과 온라인 사기단 운영의 배후로 지목받고 있다. 미국, 영국, 대만, 싱가포르 등 여러 국가가 그의 자산을 동결했다. 이 사건은 비트코인이 범죄 수익의 은닉처이자 국가 간 사이버 전쟁의 무기가 되었음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두바이 사막에 묻힌 꿈: 러시아 암호화폐 부부 살해 사건
로만 노박과 안나 노박 부부는 암호화폐로 백만장자가 된 후 소셜미디어에 고급차, 개인 제트기, 호화 휴가 사진을 올리며 부를 과시했다. 하지만 그들의 화려한 삶은 비극으로 끝났다. 투자 제안을 받고 두바이 하타 마을 호수 근처에서 신원 미상의 투자자를 만나러 갔다가 납치됐다.
납치범들은 노박의 암호화폐 지갑 비밀번호를 요구했지만, 예상과 달리 지갑이 비어 있자 부부를 살해하고 시신을 훼손한 뒤 사막에 묻었다. 러시아인 8명이 체포됐는데, 그 중에는 노박에게 사기를 당한 전 투자자와 러시아 내무부 전직 직원이 포함됐다.
노박은 암호화폐 송금 플랫폼 '핀토피오'를 설립해 투자자들로부터 자금을 모았지만, 오랫동안 암호화폐 사기에 연루되어 왔다. 그는 투자자들에게서 약 10만 달러를 갈취한 혐의로 징역 6년을 선고받았다가 조기 출소한 전력이 있다. 비트코인은 이처럼 탐욕을 부추기고, 탐욕은 폭력을 낳는다.
암호화폐 관련 범죄의 황금기
비트코인과 암호화폐 관련 범죄는 해를 거듭할수록 대담해지고 정교해지고 있다.
2025년 2월, 두바이 거래소 바이비트에서 약 15억 달러(약 2조원) 탈취. 북한 해킹 조직 라자루스가 배후로 추정된다.
2024년 한 해 동안 암호화폐 해킹으로 인한 피해액은 최소 447억 달러에서 최대 750억 달러로 추정된다.
2025년 상반기에만 전 세계 암호화폐 해킹 피해액이 약 21억 달러(약 2조 9천억원)에 달했으며, 이 중 80% 이상이 소셜 엔지니어링과 심리 조작을 통해 발생했다.
지능화되는 범죄 수법
2024년 8월, 미국에서는 18~22세 청년들로 구성된 조직이 2억 6천3백만 달러(약 3,840억원) 규모의 비트코인을 탈취했다. 이들은 한 건의 범행만으로 2억 3천만 달러를 빼돌렸다.
범죄 수익은 클럽의 초호화 파티(최대 50만 달러), 슈퍼카 28대(최고 380만 달러), 명품 구매에 사용됐다.
메타마스크 지갑 이용자를 겨냥한 해킹이 급증해, 하루 최대 500명이 피해를 입었으며, 6월 6일 하루에만 226개 지갑이 해킹당했다.
물리적 폭력의 증가
'렌치 어택'이라 불리는 물리적 강요 범죄가 전례 없이 급증하고 있다. 범죄자들이 폭행이나 협박을 통해 피해자의 암호화폐 지갑 정보를 빼앗는 방식이다.
한국에서는 하루인베스트 출금 정지 사태로 80억원 상당의 비트코인이 묶이자, 50대 투자자가 법정에서 대표를 흉기로 찌르는 사건이 발생했다.
사기와 폰지의 끝없는 반복
비트코인은 합법적 투자 수단이라기보다 사기의 도구로 악용되는 경우가 더 많다.
테라-루나 사태: 2022년 권도형이 주도한 테라-루나 프로젝트는 약 20%의 수익을 약속하며 수십만 명의 투자자를 끌어모았다. IMF 총재는 이를 "다단계 피라미드 사기"라고 규정했다. 권도형은 시세 조종과 자금세탁을 일삼았으며, 2025년 8월 미국 법정에서 사기 혐의를 인정하고 최대 12년형을 구형받았다.
금융 그루밍 사기(돼지도살 사기): 2024년 최소 25억 달러의 피해가 발생했다. 2023년에 비해 58% 감소했지만, 여전히 막대한 규모다. 피해 사실을 신고하지 않는 피해자가 많아 실제 규모는 더 클 것으로 추정된다.
2024년 사기로 송금된 자금은 최소 107억 달러로 2023년 대비 40% 감소했지만, 여전히 천문학적 규모다. 비트코인은 사기꾼들이 가장 많이 요청하는 결제 수단이다.
랜섬웨어와 범죄 인프라
비트코인은 랜섬웨어 공격의 결제 수단으로 선호된다. 2024년 랜섬웨어 결제액은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범죄자들은 익명성을 보장받기 위해 가상자산 믹서 사용을 줄이고, 대신 크로스체인 브리지를 활용해 추적을 회피한다.
북한은 가상자산 해킹의 주요 행위자로 지목된다. 2024년 한 해 동안 북한과 연계된 해킹으로 약 8억 달러의 암호화폐가 도난당했다. 2016년 200만 달러였던 북한의 암호화폐 해킹 피해액은 2023년 10억 달러로 급증했다.
국가 차원의 개입, 그러나 역부족
각국 정부와 법집행 기관은 암호화폐 범죄에 대응하고 있지만, 범죄의 속도와 규모를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 미국 법무부는 조직범죄처벌법(RICO)을 적용해 대규모 암호화폐 범죄자들을 기소하고 있지만, 범죄자들은 두바이, 아랍에미리트 등 규제가 느슨한 국가로 도피한다.
한국은 하루인베스트 사태로 약 1만6천 명이 피해를 입었지만, 투자자 보호 장치는 여전히 미흡하다. 전 세계적으로 강화된 법 집행 노력에도 불구하고, 암호화폐의 익명성과 국경을 초월하는 특성 때문에 범죄 차단은 쉽지 않다.
탐욕의 끝은 어디까지 일까.
비트코인은 '탈중앙화'와 '금융 자유'라는 이상을 내걸고 등장했지만, 현실은 범죄의 온상이 되었다. 20조원 규모의 국제 분쟁, 살인, 해킹, 사기가 끊임없이 발생하고 있다. 비트코인 가격이 오를 때마다 범죄 발생률도 함께 상승하는 기이한 상관관계는 이 자산의 본질이 무엇인지 묻게 만든다.
익명성과 추적 불가능성은 범죄자들에게 완벽한 도구를 제공한다. 국가 간 협력이 미흡하고, 규제의 공백이 존재하는 한 비트코인은 계속해서 탐욕의 원천으로 남을 것이다. 우리는 지금 기술의 발전이 인간의 탐욕을 통제할 수 있는지, 아니면 오히려 탐욕을 증폭시키는지를 목격하고 있다.
비트코인의 미래는 투자자들의 손에 달려 있지 않다. 그것은 범죄자들, 정부, 그리고 국제 사회가 얼마나 효과적으로 협력하느냐에 달려 있다. 지금까지의 증거는 비관적이다. 탐욕의 불길은 꺼지지 않고, 비트코인은 그 불길에 기름을 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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