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20 leader’s summit at the Nasrec Expo Centre in Johannesburg © EMMANUEL CROSET/AFP
오는 22~23일 남아프리카공화국 요하네스버그에서 열리는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가 미국의 전면 보이콧과 합의 저지 요구로 전례 없는 외교 위기에 직면했다. 아프리카 대륙 최초로 개최되는 이번 G20 정상회의는 글로벌 거버넌스의 근본적인 제도적 균열을 드러내는 시험대가 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남아공 G20 정상회의에 대한 정부 차원의 보이콧을 선언했다. 당초 참석 예정이었던 부통령을 포함해 국무장관, 재무장관 등 고위 관료들도 준비 회의에 불참하는 등 전면적인 보이콧이 확인됐다. 주남아공 미국 대사관은 정상회의를 불과 며칠 앞둔 지난 15일 남아공 정부에 공식 외교 문서를 전달해 G20이 '정상 선언(Leaders' Declaration)'을 채택하는 것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명확히 했다.
미국 측은 남아공의 G20 우선순위가 "미국의 정책 입장과 상충한다"고 주장하며, 미국 동의 없이는 합의된 G20 입장을 전제로 하는 어떠한 결과 문서도 채택해서는 안 된다고 경고했다. 만약 결과 문서가 발표된다면 "합의 부재를 정확히 반영하기 위해 오직 의장국 성명(Chair's Statement)으로만 구성되어야 한다"고 요구했다.
남아공 정부는 미국의 요구에 대해 단호한 거부 입장을 밝혔다. 남아공 국제관계협력부(외무부) 대변인 크리스핀 피리(Chrispin Phiri)는 남아공이 "강압에 굴복하지 않을 것"이라고 천명했다. 피리 대변인은 "미국이 회의에 불참하기 때문에 G20의 결과에 대해 아무런 역할도 할 수 없다"며 "부재를 통한 강압(coercion by absentia)이 실행 가능한 전술이 되도록 허용할 수 없다. 이는 제도적 마비와 집단 행동 붕괴를 초래하는 조리법"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보이콧을 정당화한 공개적 근거는 남아공 내 백인 아프리카너(Afrikaner) 농민들에 대한 폭력적인 박해와 토지 불법 몰수 주장이다. 트럼프 행정부는 남아공 정부가 소수 백인 농민들의 인권 침해를 허용하고 있다고 비난해 왔다. 이에 대해 남아공 외무부는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을 "유감스럽다"고 표현하며, 아프리카너들을 배타적인 백인 그룹으로 규정하는 것은 "비역사적(ahistorical)"이며 이 공동체가 박해를 받고 있다는 주장은 "사실로 입증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남아공의 G20 의제는 '연대(Solidarity), 평등(Equality), 지속 가능성(Sustainability)'이라는 주제를 중심으로 한다. 핵심 우선순위는 저소득 국가의 부채 지속 가능성을 보장하기 위한 조치로, 개발도상국의 차입 비용 문제를 종합적으로 검토할 자본 비용 위원회(Cost of Capital Commission) 설립 제안이 포함됐다. 또한 국제 불평등 패널(International Panel on Inequality) 설립과 초부유층 과세를 포함한 공정한 국제 조세 제도 발전을 추진하고 있다.
미국 트럼프 행정부는 "미국 우선주의"를 표방하며, 선진국에 막대한 재정적 공약을 요구하거나 미국의 영향력을 약화시키는 글로벌 거버넌스 구조 개혁에 반대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미 국무장관은 남아공의 의제를 "반(反)미국적(anti-American)"이라고 비난한 바 있다. 미국의 반대 입장은 기존 금융 아키텍처와 서구 민간 채권자들에게 이익이 되는 높은 자본 비용 시스템을 방어하려는 의도로 해석된다.
이번 정상회의는 미국의 완전한 보이콧 외에도 주요 강대국들의 정상 부재가 두드러진다. 블라디미르 푸틴(Vladimir Putin) 러시아 대통령은 국제형사재판소(ICC)의 체포 영장 때문에 불참했다. 남아공은 로마 규정 서명국으로서 푸틴 대통령이 남아공 영토에 발을 디딜 경우 체포할 법적 의무가 있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 대신 리창(李强) 총리가 참석할 예정이다.
G20 마찰의 시기는 아프리카 성장 및 기회법(AGOA) 갱신 협상과 맞물려 있어 남아공에 극도로 민감한 상황이다. AGOA는 남아공 상품에 미국 시장에 대한 우대 접근권을 제공하며 남아공 경제에 필수적이다. 전문가들은 트럼프 행정부가 "남아공에 대한 AGOA 갱신을 할 가능성이 낮다"고 경고했다. 이는 무역과 지정학적 충성도가 명확하게 연결되고 있음을 시사한다.
남아공은 지난해 12월 1일 G20 의장국을 수임했으며, 이는 인도네시아, 인도, 브라질에 이어 글로벌 사우스(Global South) 국가들이 연이어 의장국을 맡는 흐름의 정점을 찍는 것이었다. 이번 G20 정상회의는 20번째 회의이자 아프리카 대륙에서 개최되는 최초의 정상회의라는 점에서 큰 의미를 지닌다.
남아공은 올해 말 G20 의장국 지위를 미국에 인계할 예정이다. 미국은 내년 G20 정상회의를 플로리다주 마이애미에서 개최할 예정이며, 미국 행정부는 "기본으로 돌아가는 접근 방식... 정상회의 및 관련 업무 흐름을 간소화하고 의제를 G20의 창립 목표인 경제 성장 및 금융 안정과 일치시키는 것"이라고 밝혔다. 참석자 명단이 "최근 G20 정상회의보다 더 작아질 것"이라고도 예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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