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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독일 경제가 구조적 침체의 늪에 빠져들며 '유럽의 엔진' 지위를 상실하고 있다. 2년 연속 0% 미만의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을 기록한 데 이어 올해 역시 0.2~0.3% 성장에 그칠 것으로 전망되면서, 유로존 평균 성장률 1.3~1.5%에 한참 못 미치는 성적표를 받아들게 됐다. 특히 과거 하청 기지로 여겨졌던 폴란드의 약진과 반도체 공급망 갈등이 독일 제조업의 심장부를 강타하며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다.

킬 세계경제연구소(IfW Kiel)와 독일 경제연구소(DIW)는 독일의 저성장이 일시적 외부 충격을 넘어 노동 생산성 저하와 투자 부진이라는 내부의 구조적 병폐에서 기인한다고 진단했다. 독일 경제전문가위원회(GCEE)는 2025/26 연례보고서에서 독일의 잠재 성장률 자체가 하락하고 있다며, 구조 개혁 없이는 장기 침체 터널을 빠져나오기 힘들 것이라고 경고했다.

독일과 폴란드의 경제 격차가 급격히 좁혀지면서 지정학적 위상 변화가 가속화되고 있다. 폴란드는 2019년 이후 누적 경제 생산량이 15% 이상 증가하며 유럽 내 가장 역동적인 성장세를 보이는 반면, 독일은 사실상 제자리걸음을 반복하고 있다. 폴란드의 올해 GDP 성장률 전망치는 3.2~3.7%로, 독일의 10배 이상에 달한다.

더욱 충격적인 것은 2024년 통계 작성 이래 최초로 독일에서 폴란드로 이주하는 인구가 역방향 이주를 추월하는 '순유출' 현상이 발생했다는 점이다. 독일 연방통계청(Destatis) 데이터에 따르면 2024년 한 해 동안 90,807명이 독일을 떠나 폴란드로 이주한 반면, 독일로 유입된 인구는 82,082명에 그쳐 마이너스 8,725명의 순이동을 기록했다. 바르샤바 등 주요 도시의 구매력 기준 임금이 베를린 수준에 근접하면서 젊은 폴란드 인재들이 자국으로 회귀하고 있다.

반도체 공급망을 둘러싼 지정학적 갈등은 독일 제조업에 치명타를 입히고 있다. 9월 30일 네덜란드 정부가 중국 윙텍(Wingtech) 소유의 반도체 기업 넥스페리아(Nexperia)에 대해 국가 안보를 이유로 통제권 행사를 선언하자, 중국은 즉각 보복 조치로 넥스페리아 중국 공장의 대유럽 수출을 금지했다. 네덜란드 경제부 장관 빈센트 카레만스(Vincent Karremans)는 이를 "유럽 내 생산 및 공급의 연속성을 보장하기 위한 조치"라고 설명했다.

넥스페리아는 자동차 전장 시스템과 브레이크 제어 장치 등에 필수적인 범용 반도체를 공급하는 핵심 기업이다. 중국의 수출 금지 조치로 보쉬(Bosch), ZF 프리드리히스하펜(ZF Friedrichshafen), 폭스바겐(VW) 등 독일 주요 자동차 기업들이 생산 중단 위기에 직면했다. 보쉬는 안스바흐(Ansbach), 잘츠기터(Salzgitter) 공장에서 수천 명의 직원을 대상으로 휴직 조치를 시행해야 했다.

독일 제약·화학업계 연구 기반 협회(VFA)와 주요 경제 연구소들은 이번 사태가 연말까지 해결되지 않을 경우 2025년 독일 경제성장률을 최대 0.48%포인트 낮출 수 있다고 경고했다. 0.2% 성장이 예상되는 상황에서 이는 독일 경제를 사상 첫 3년 연속 역성장으로 밀어 넣을 수 있는 결정타가 될 수 있다.

2월 조기 총선에서 승리한 프리드리히 메르츠(Friedrich Merz) 총리의 정책은 전문가들의 신랄한 비판에 직면해 있다. 메르츠 총리는 "독일을 전진하게 한다"는 슬로건을 내걸고 기민당(CDU/CSU)을 이끌어 약 29% 득표율로 승리했으나, 극우 정당 독일을 위한 대안(AfD)이 21%를 득표하며 제2당으로 부상했다.

메르츠 정부가 추진하는 1,000억 유로 규모의 인프라 및 기후 중립 특별기금(SVIK)은 헌법상 부채 브레이크(Schuldenbremse) 규정을 우회한다는 논란에 휩싸였다. 경제전문가위원회는 2025/26 연례보고서에서 "미래를 위한 투자가 아닌, 현재의 불만을 잠재우기 위한 소비성 지출에 나랏빚을 쓰고 있다"며 메르츠 정부를 강도 높게 비판했다.

특히 통근 거리에 따라 세금을 공제해 주는 '펜들러파우샬레(Pendlerpauschale)' 확대 정책은 대표적인 반환경적·반경제적 정책으로 지목됐다. 위원회는 이러한 선심성 공약이 내년도 경제 성장률을 고작 0.2% 높이는 데 그칠 것이라며, 빚을 내서 얻은 결과치고는 초라한 성적표라고 꼬집었다. 취임 6개월 만에 메르츠 총리에 대한 국민 지지율은 급락해 55% 이상이 현 정부 업무 수행에 불만족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앙겔라 메르켈(Angela Merkel) 전 총리에 대한 사회적 평가도 급격히 악화되고 있다.시베이(Civey) 여론조사 결과 "메르켈 전 총리가 그리운가"라는 질문에 "그렇다"고 답한 비율은 25%에 불과했고, "그립지 않다"는 응답은 52%에 달했다. 현재 독일이 겪는 위기의 뿌리가 메르켈 집권 16년(2005-2021)에 있다는 인식이 주류를 형성하고 있다.

값싼 러시아산 천연가스에 의존했던 에너지 정책은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독일 산업의 비용 구조를 붕괴시켰고, 국방비 축소로 독일 연방군(Bundeswehr)은 안보 위기 상황에서 무력화됐다는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디지털 전환과 인프라 투자를 소홀히 한 채 수출 호황에 안주하며 구조 개혁을 미룬 대가를 지금의 자유낙하로 치르고 있다는 분석이다.

2025년 상반기 독일의 대폴란드 수출액(494억 유로)이 대중국 수출액(414억 유로)을 넘어선 것은 공급망 지도의 구조적 변화를 보여준다. 2004년 EU 가입 당시 독일 경제 규모의 10분의 1에 불과했던 폴란드 경제는 2024년 기준 약 5분의 1 수준까지 성장하며 격차를 좁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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