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네시아 수마트라섬을 강타한 열대성 사이클론과 집중호우로 인한 사망자가 13일 기준 1,003명을 넘어서며, 지난 2018년 술라웨시 지진·쓰나미 이후 최악의 자연재해로 기록됐다. 인도네시아 국가재난방지청(BNPB)에 따르면 실종자는 218명에서 293명 사이로 추정되며, 부상자는 5,400명 이상, 이재민은 105만7,482명에 달한다.

이번 재난은 11월 말 말라카 해협 인근에서 발생한 열대성 사이클론 '세냐르(Senyar)'가 촉발했다. 전통적으로 적도 인근은 전향력이 약해 강력한 사이클론이 형성되기 어려운 '태풍 안전지대'로 여겨져 왔으나, 이번 사이클론은 이러한 통념을 깨뜨렸다. 세계기상기구(World Weather Attribution)는 기후 변화가 이번 사이클론 영향권 내 5일간의 강우 강도를 28%에서 최대 160%까지 증가시킨 것으로 분석했다.

피해는 아체(Aceh), 북수마트라(North Sumatra), 서수마트라(West Sumatra) 3개 주에 집중됐다. 아체주는 415명의 사망자와 약 99만 명의 이재민이 발생해 최대 피해 지역으로 기록됐으며, 150kV 송전탑 붕괴로 대규모 정전이 발생했다. 북수마트라주는 347명이 사망했고, 특히 타파눌리 텡아(Tapanuli Tengah) 지역에서 110명이 목숨을 잃었다. 서수마트라주 아감(Agam) 지역에서는 181명이 사망했는데, 이는 2024년 5월 마라피 화산 폭발 이후 쌓인 화산재가 빗물과 섞여 흘러내린 '냉이류(Cold Lahar)' 때문이었다.

물적 피해도 막대하다. 주택 15만9,000채 이상이 전파·반파·침수되었고, 교량 497개가 유실되거나 파손돼 산간 오지 마을들이 고립됐다. 학교 시설은 아체 1,060개소, 북수마트라 1,155개소, 서수마트라 583개소 등이 파손돼 학생 23만 명 이상의 교육이 중단됐다. 의료 시설 219개소, 종교 시설 425개소도 피해를 입었다. 총 재산 피해액은 약 86조9,000억 루피아(미화 52억3,000만 달러)로 추산된다.

홍수피해를 입은 모습/보도영상 캡춰


인도네시아 정부는 재건에 약 51조8,200억 루피아(미화 31억1,000만 달러)가 필요할 것으로 추산했다. 프라보워 수비안토(Prabowo Subianto) 대통령은 파키스탄과 러시아 순방 직후 귀국해 재난 현장으로 직행했으며, 피해 가구당 6,000만 루피아(약 3,600달러)의 주택 복구 지원금을 승인했다. 정부는 국유지 및 국영전력공사(PLN) 유휴 부지를 활용한 대규모 이주 단지 건설도 추진 중이다.

이번 홍수는 생태계에도 치명적 타격을 입혔다. 북수마트라 바탕 토루(Batang Toru) 숲의 산사태로 전 세계에 800마리 미만만 남아있는 타파눌리 오랑우탄(Tapanuli Orangutan)의 서식지 중 서부 블록 약 4,800~7,200헥타르가 유실됐다. 전문가들은 이를 '멸종 수준의 교란(Extinction-level disturbance)'으로 규정했다. 인도네시아 산림부는 상류 지역의 불법 벌목이 홍수를 악화시킨 주원인으로 보고 11개 벌목 및 채굴 기업에 대한 범죄 수사에 착수했다.

한편 수마트라의 피해가 진정되기도 전인 3월 초, 수도 자카르타에서도 메조스케일 대류 복합체(MCC)로 인한 대규모 홍수가 발생해 최소 9명이 사망하고 12만600명 이상이 이재민이 됐다. 직접적인 재산 피해만 최소 2억5,800만 달러(약 5조 루피아)로 추산됐다. 이번 자카르타 홍수는 정부가 수색구조청, 기상기후지질청, 국가재난방지청 등 재난 관련 기관의 예산을 약 2조5,000억 루피아(약 1억5,400만 달러) 삭감한 직후 발생해 정책 실패 논란을 낳았다.

국제사회의 지원도 이어지고 있다. 한국 정부는 외교부를 통해 50만 달러 규모의 긴급 인도적 지원을 결정했다. 현대자동차 인도네시아(HMMI)는 피해 차량 부품 10%, 수리비 50% 할인을 제공하고 1억5,000만 루피아 상당의 구호 물품을 전달했다. 삼성전자는 '삼성 러브 앤 케어(Love & Care)' 프로그램을 통해 구호 키트와 위생 용품을 지원했으며, LG전자는 침수 가전 무상 세척 및 수리 서비스를 제공했다. 플랜 인터내셔널 코리아는 한국 시민 후원금으로 23톤 규모의 긴급 구호 물품을 아체와 서수마트라 지역에 배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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