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르기스스탄 토크토굴(Toktogul) 수력 발전소
키르기스스탄이 심각한 전력난에 직면하면서 중앙아시아 역내 국가들이 긴급 협력체제에 돌입했다. 기후 변화로 인한 수력발전 위기가 역내 전체의 에너지 안보를 위협하는 상황에서, 물과 전력을 맞교환하는 이례적인 자원 협력 구도가 형성됐다.
키르기스 당국은 10월 13일 전력 부족 사태에 대응하기 위해 전국적인 비상 절전 조치를 발동했다. 이 조치에 따라 레스토랑 등 상업 시설은 오후 10시에 영업을 종료해야 하며, 모든 공공 시설물은 오후 6시부로 강제 소등에 들어갔다.
위기의 진원지는 국가 전체 전력 생산의 약 40%를 담당하는 토크토굴(Toktogul) 수력발전소다. 10월 17일 기준 토크토굴 댐의 저수량은 작년 동기 대비 20억 세제곱미터, 약 20%가 감소한 것으로 파악됐다. 이는 댐 수위가 발전을 지속할 수 없는 임계 수위에 근접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이에 앞서 키르기스스탄,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3국 에너지부 장관들은 9월 7일 키르기스 이식쿨주 촐폰아타에서 만나 2025년 가을부터 2026년 봄까지의 전력 공급에 관한 의정서에 서명했다. 의정서의 핵심 목표는 "토크토굴 저수지의 물을 보존하고 합리적으로 사용하는 것"이다.
의정서에 따르면 카자흐스탄과 우즈베키스탄은 가을부터 겨울 동안 키르기스스탄에 전력을 공급할 의무를 진다. 3국은 또한 러시아에서 카자흐스탄을 경유해, 그리고 투르크메니스탄에서 우즈베키스탄을 경유해 키르기스스탄으로 전력을 보내는 조건에도 합의했다.
타알레이벡 이브라예프(Taalaibek Ibraev) 키르기스 에너지부 장관은 "우즈베키스탄과 카자흐스탄이 의정서에 따라 전력 공급 일정을 준수해줄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이번 협정은 사실상 하류국이 상류국에 겨울철 전력을 제공하고 여름철 농업용수를 보장받는 물-에너지 맞교환 체제다. 키르기스스탄이 하류국으로부터 전력을 공급받으면 토크토굴 댐의 물을 겨울에 방류하지 않고 보존할 수 있게 되며, 이렇게 보존된 물은 다음 해 여름 하류국의 농업용수로 사용된다.
전문가들은 이번 위기의 근본 원인으로 기후 변화를 지목한다. 지구 온난화로 인한 급격한 빙하 해빙과 강우 패턴의 변화로 파미르와 톈산산맥의 만년설과 빙하가 예측 불가능하게 녹아내리고 있다. 키르기스스탄과 타지키스탄은 전력의 90% 이상을 수력발전에 의존하는 반면, 우즈베키스탄과 카자흐스탄은 화석연료에 90% 이상 의존하는 극단적인 에너지 믹스 대비를 보이고 있다.
타지키스탄도 유사한 위기에 노출돼 있다. 세계에서 가장 높은 댐인 누렉(Nurek) 댐을 포함해 전력의 90% 이상을 수력발전에 의존하고 있어, 키르기스스탄보다 더 심각한 단일 에너지원 의존 리스크를 안고 있다.
이번 협력 체제는 키르기스스탄의 에너지 주권이 다수의 외부 행위자에게 분할되는 다층적 의존 구조를 형성했다는 평가다. 키르기스스탄의 에너지 안보는 이제 카자흐스탄과 우즈베키스탄의 공급 일정 준수 의지, 러시아-카자흐스탄 간 관계, 투르크메니스탄-우즈베키스탄 간 관계, 그리고 러시아의 대중앙아시아 에너지 정책 전반에 연동되게 됐다.
한편 우즈베키스탄은 에너지 자급률 감소와 심각한 대기 오염이라는 이중고를 타개하기 위해 2030년까지 신재생에너지 비중을 54%로 늘린다는 목표를 세웠다. 카자흐스탄 역시 2030년까지 15%, 2050년까지 50%를 목표로 하고 있다. 그러나 경제성 부족, 기술 및 인력 부재, 기존 국영 에너지 기업들의 정치적 저항 등이 신재생에너지 전환의 주요 장애물로 지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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