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신문


10일 노르웨이 오슬로 시청에서 열린 노벨 평화상 시상식장에서 수상자 마리아 코리나 마차도(Maria Corina Machado)의 자리는 비어 있었다. 그가 베네수엘라를 탈출해 오슬로로 향하던 바로 그 시각, 카리브해에서는 민간 구조대가 주도한 극비 작전이 진행되고 있었다.

2024년 베네수엘라 대선에서 야권의 실질적 승리자로 평가받았으나 니콜라스 마두로(Nicolás Maduro) 정권의 탄압으로 올해 1월부터 은신 생활을 이어온 마차도는 미국 플로리다주 탬파에 본부를 둔 민간 구조 조직 '그레이 불 구조대(Grey Bull Rescue)'의 지원으로 베네수엘라를 빠져나왔다. 노르웨이 노벨 위원회는 그를 올해 노벨 평화상 수상자로 선정하며 "독재에서 민주주의로의 평화로운 전환을 위한 지칠 줄 모르는 투쟁"을 높이 평가했다.

작전을 지휘한 브라이언 스턴(Bryan Stern)은 미 육군과 해군에서 25년 이상 복무한 특수작전 전문가다. 그는 2001년 9·11 테러 당시 초기 대응 요원으로 활동했으며,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에서 인질 구출 및 대테러 작전을 수행한 경력을 보유하고 있다. 스턴은 미 육군 보병 지휘관으로부터 수여되는 '성 모리스 훈장(Order of Saint Maurice)'을 받은 유일한 미 해군 장교다.

마차도는 카라카스의 은신처를 출발해 해안가로 이동하는 과정에서 가발과 변장으로 신분을 숨기고 10개의 군사 검문소를 통과해야 했다. 스턴은 "파도가 높을수록 레이더가 탐지하기 어렵다"며 당시 거친 파도와 어두운 밤이 작전에 유리하게 작용했다고 설명했다. 마차도가 탑승한 보트는 야간 항해등을 모두 끈 채 약 13~14시간 동안 항해했으며, 일행은 바닷물에 흠뻑 젖고 추위에 떨어야 했다.

스턴은 미국 정부로부터 "단 1센트의 자금 지원도 받지 않았다"고 강조하면서도, 미군과 "비공식적으로 협력"했다고 밝혔다. 그는 "위치 정보와 계획"을 공유했으며, 이는 미군의 공습이나 오인 사격을 피하기 위한 조치였다고 설명했다. 작전 당시 미 해군은 마약 밀매 차단을 명분으로 한 대규모 군사작전인 '서던 스피어(Operation Southern Spear)'를 전개하고 있었다.

마차도는 베네수엘라 해안에서 북쪽으로 약 64km 떨어진 네덜란드령 퀴라소(Curaçao)에 도착한 뒤, 미국 마이애미를 경유해 메인주 뱅거를 거쳐 오슬로로 이동했다. 시상식 당일인 12월 10일에는 도착하지 못했으나, 다음 날인 11일 새벽 그랜드 호텔 발코니에 모습을 드러내며 지지자들에게 건재함을 알렸다. 시상식에서는 그의 딸 아나 코리나 소사(Ana Corina Sosa)가 어머니를 대신해 상패를 받았다.

오슬로에서 기자회견 중인 마차도/보도영상 캡춰


마차도는 오슬로 도착 후 기자회견에서 "미국 정부의 지원을 받았다"고 명확히 밝혔다. 블룸버그 통신과 가디언 등은 트럼프 행정부가 마차도의 탈출을 지원했다고 보도했다. 마차도는 트럼프 행정부의 유조선 나포 등 강경 조치가 마두로 정권을 약화시키는 데 결정적이었다고 평가하며 감사를 표했다.

마두로 대통령은 마차도의 노벨상 수상과 탈출에 격렬히 반응했다. 그는 노벨상을 "피로 얼룩진 상"이라고 폄하하고 마차도를 '도망자', '반역자'로 낙인찍었다. 베네수엘라 정부는 마차도의 탈출 직후 오슬로 주재 대사관을 전격 폐쇄하며 노르웨이와의 외교 관계를 사실상 동결했다.

러시아는 즉각적으로 마두로 정권에 대한 지지를 재확인했다. 블라디미르 푸틴(Vladimir Putin) 대통령은 마두로와의 통화에서 외부 압력에 맞서는 베네수엘라의 주권을 옹호한다고 밝혔다. 한편 유엔 인권 전문가들은 미국의 대(對)베네수엘라 비밀 작전과 무력 사용 위협이 유엔 헌장과 국제법을 위반하는 주권 침해라고 경고한 바 있다.

그레이 불 구조대는 약 70명 규모로 구성된 조직으로, 전직 특수부대와 정보기관 요원들로 이뤄져 있다. 이들은 아프가니스탄, 우크라이나, 수단, 가자 지구 등에서 7000명 이상을 구조한 실적을 보유하고 있다. 조직은 기부금으로 운영되는 비영리 재단과 정부나 기업의 특수 의뢰를 수행하는 영리 법인으로 이원화되어 있다.

스턴은 자신의 조직 철학을 베트남 전쟁 당시 특수부대 지휘관 아서 "불" 사이먼스(Arthur "Bull" Simons) 대령에게서 찾는다. 사이먼스 대령은 1970년 북베트남의 손 타이(Son Tay) 포로수용소 습격 작전을 지휘했던 인물이다. 스턴은 "희망이 필요한 곳에 희망을 전달하며, 정부가 갈 수 없는 곳에 간다"는 사이먼스의 정신을 계승하여 조직명을 '그레이 불'로 명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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