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현 외교부 장관이 12일 한국국제정치학회(KAIS) 총회 기조연설을 통해 재래식 무장 원자력 추진 잠수함(SSN) 보유의 필요성을 공식 천명했다. 조 장관은 이 자리에서 '실용주의(Pragmatism)'를 한국 외교의 핵심 기조로 제시하며, 북한의 고도화된 핵·미사일 위협에 대응하기 위한 실질적 억제 수단으로 원자력 잠수함 확보와 우라늄 농축 및 재처리 권한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이번 연설은 지난 10월 경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계기에 열린 한미 정상회담에서 도출된 '공동 팩트 시트(Joint Fact Sheet)'의 구체적 이행 의지를 담은 것으로 평가된다. 조 장관은 "동맹은 계속되지만 미래지향적이고 전략적인 방향으로 진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미 양국은 10월 정상회담에서 미국이 한국의 원자력 추진 공격 잠수함 건조를 승인하고, 연료 공급 방안을 포함한 조선 프로젝트 요구사항을 진전시키기 위해 긴밀히 협력하기로 합의했다. 이는 미국이 비확산 원칙의 예외를 적용한 사례로, 영국과 호주에 이어 세 번째이자 아시아 동맹국으로서는 최초다.
북한은 2023년 9월 전술핵공격잠수함 '김군옥영웅함(제841호)'을 진수하며 수중 핵 위협을 현실화했다. 로미오급 잠수함을 개조해 10개의 수직발사관(VLS)을 탑재한 이 잠수함은 전술핵 탄두를 장착한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이나 순항미사일을 운용할 수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전문가들은 디젤-전기 추진 방식의 기존 한국 해군 잠수함으로는 북한의 SLBM 잠수함을 효과적으로 추적·감시하는 데 한계가 있다고 지적한다. 디젤 잠수함은 배터리 충전을 위해 주기적으로 수면 근처로 부상해 스노클링을 해야 하며, 이 과정에서 소음이 발생하고 피탐지 확률이 급격히 증가한다. 반면 원자력 잠수함은 연료 재보급 없이 수개월간 잠항이 가능하고 고속 기동이 가능해 SLBM 탑재 잠수함을 상시 추적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으로 꼽힌다.
한미 공동 팩트 시트는 또한 미국이 한국의 "평화적 목적의 민간 우라늄 농축 및 사용후핵연료 재처리 과정"을 지지한다고 명시했다. 이는 기존 한미 원자력 협정(123 협정) 하에서 엄격히 금지되었던 농축과 재처리의 제약을 푸는 조치로 해석된다. 한국은 이를 통해 전량 수입에 의존하던 원전 연료의 자급자족 길을 열게 됐으며, 특히 원자력 잠수함의 연료가 될 저농축 우라늄(LEU)을 자체 생산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했다.
조 장관은 연설에서 이재명 정부의 대북 접근법인 'E.N.D. 이니셔티브(교류-정상화-비핵화)'도 소개했다. 이는 교류(Exchange), 정상화(Normalization), 비핵화(Denuclearization)의 약자로, 기존의 '선(先) 비핵화' 프레임을 탈피해 단계적이고 실용적인 접근을 지향한다. 조 장관은 이를 "핵 없는 한반도(Nuclear-free Korean Peninsula)"를 위한 과정이라고 설명하며, 강력한 억제력 확보와 대화가 병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의 원자력 잠수함 보유 추진에 대해 주변국들은 엇갈린 반응을 보이고 있다. 중국 외교부는 "비확산 의무 준수"와 "신중한 처리"를 당부하는 원론적 입장을 밝혔으나, 과거 사드(THAAD) 배치 당시와 달리 격렬한 반발은 자제하고 있다. 반면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전쟁 지원의 대가로 북한에 잠수함 관련 기술을 이전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돼, 한반도 안보의 불안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아산정책연구원의 여론조사에 따르면, 한국 국민의 76.2%가 독자적 핵무장을 지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원자력 잠수함은 핵무기가 아닌 '재래식 무장' 플랫폼이지만 전략적 자산으로서 한국이 미국의 허락 하에 가질 수 있는 최상위 수준의 억제 수단으로 평가된다.
한국은 이번 합의와 함께 국방비를 국내총생산(GDP)의 3.5%까지 증액하고, 2030년까지 250억 달러 규모의 미국산 군사 장비를 구매하기로 약속했다. 한화오션이 인수한 필라델피아 조선소(Philly Shipyard)에서 잠수함 건조 또는 모듈 제작이 이루어질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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