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gnage at China Vanke Co’s Qibao Vanke Plaza in Shanghai, China. /Bloomberg


중국의 대표적 국영 배경 부동산 개발업체인 완커(China Vanke Co., Ltd.)가 12월 15일 20억 위안(약 4,200억 원) 규모의 중기유동성지원증권(MTN) 만기 연장에 실패하면서 디폴트 위기에 직면했다. 이번 사태는 중국 정부의 '화이트 리스트' 정책과 국영 기업 지원으로도 부동산 위기를 막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 사건으로 해석된다.

완커는 '22 완커 MTN004' 채권의 만기를 1년 연장해달라고 채권단에 요청했으나, 12일까지 진행된 투표에서 필요한 가결 요건을 충족하지 못했다. 회사는 단순 연장안, 담보 제공 연장안, 신용 보강 연장안 등 세 가지 제안을 제시했지만 모두 부결됐다. 담보 제공안이 83.40%의 지지를 받았으나 중국은행간시장거래상협회(NAFMII) 규정상 필요한 90% 이상 동의를 얻지 못했다.

이번 연장 실패로 완커는 영업일 기준 5일간의 유예 기간을 갖게 된다. 이 기간 내에 20억 위안을 상환하지 못하면 공식적인 채무불이행 상태가 되며, 이는 회사가 발행한 다른 채권의 크로스 디폴트 조항을 발동시켜 총 3,640억 위안(약 76조 원)에 달하는 전체 부채에 상환 압력이 가해질 수 있다.

완커의 위기는 재무 상태 악화가 장기간 누적된 결과다. 피치(Fitch)에 따르면 회사의 가용 현금은 6월 말 690억 위안에서 9월 말 600억 위안으로 3개월 만에 13% 감소했다. 단기 부채 대비 현금 비율도 1.0배 미만으로 떨어져 중국 정부의 '3대 레드라인' 규제를 위반했다. 2025년 3분기에만 161억 위안의 순손실을 기록했으며, 1~3분기 누적 순손실은 281억 위안에 달했다.

문제는 12월 15일 채권이 시작에 불과하다는 점이다. 완커는 12월 28일 37억 위안 규모의 '22 완커 MTN005' 채권 만기를 앞두고 있으며, 2026년 중반까지 약 134억 위안 규모의 공모 채권이 만기 도래한다. 2026년 한 해 동안 갚아야 할 국내 채권은 120억 위안, 해외 채권은 70억 위안에 이른다.

완커가 다른 민영 부동산사들과 차별화됐던 점은 선전지하철그룹(Shenzhen Metro Group)이 지분 약 27~30%를 보유한 최대 주주라는 사실이었다. 선전시 국유자산감독관리위원회 산하 기업인 선전지하철그룹의 존재는 시장에서 암묵적인 정부 지급 보증으로 받아들여졌다. 그러나 이번 사태는 이러한 믿음이 오판이었음을 드러냈다.

선전지하철그룹은 2023년 초부터 완커에 약 314억 6천만 위안을 13차례에 걸쳐 지원해왔다. 하지만 11월 들어 기존 무담보 대출 약 200억 위안에 대해 담보 제공을 요구하며 방어적 태도로 돌아섰다. 선전지하철그룹 자체도 2024년 연결 기준 334억 6천만 위안의 손실을 기록하는 등 재무 상황이 악화됐기 때문이다.

중국 정부가 2024년부터 도입한 '화이트 리스트' 제도도 완커의 위기를 막지 못했다. 이 제도는 우량 프로젝트에 대한 은행 대출을 독려하지만, 자금이 프로젝트 완공에만 쓰이도록 제한돼 있어 본사의 채무 상환 재원으로 전용할 수 없다. 완커는 11월 말 주요 국영 은행들에게 45억 위안 규모의 역외 대출을 요청했으나 거절당했다.

국제 신용평가사들은 신속히 등급을 조정했다. S&P 글로벌 레이팅스는 11월 5일 완커의 신용등급을 'B-'에서 'CCC-'로 3단계 강등했다. 이는 향후 6개월 내 채무 재조정이나 불이행 가능성이 매우 높음을 의미한다. 피치는 완커를 부정적 관찰 대상에 등재하며 주주 지원 없이는 부채 상환이 불가능하다고 평가했다.

이번 사태는 12월 10~11일 베이징에서 열린 중앙경제공작회의 직후 발생해 정부 정책 의지와 시장 현실 간 괴리를 보여줬다. 시진핑 주석이 2026년 경제 안정과 부동산 시장 리스크 해소를 최우선 과제로 제시했지만, 현장에서는 대표 기업의 부도가 방치되고 있는 상황이다.

시장 전문가인 레이팅독(RatingDog)의 야오 위(Yao Yu)는 완커가 유예 기간을 30일로 연장하는 방안을 제안할 수 있다고 언급했으나, 이미 90% 지지 확보에 실패한 상황에서 단기간 내 채권단의 마음을 돌리기는 쉽지 않을 전망이다. 모건스탠리는 채무 연장이 시간을 버는 미봉책일 뿐이며 결국 포괄적인 채무 재조정이 불가피하다고 분석했다.

완커의 위기는 헝다(Evergrande)나 비구이위안(Country Garden) 같은 민영 부동산사들과는 성격이 다르다. 부채 규모는 헝다의 약 2조 위안, 비구이위안의 약 1.43조 위안보다 작은 3,643억 위안이지만, 건전 경영의 상징이자 국영 배경을 가진 기업이라는 점에서 시장에 주는 충격은 더 크다. 헝다의 몰락이 탐욕의 대가라면, 완커의 몰락은 시스템의 한계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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