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 가능성을 언급하는 트럼프/보도영상 캡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베네수엘라와의 전쟁 가능성을 공개적으로 언급하면서, 단순한 외교적 수사를 넘어 실제 군사 충돌 시나리오가 구체화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19일(현지시간) NBC 방송 인터뷰에서 "배제하지 않는다"고 밝힌 트럼프의 발언은, 이미 진행 중인 일련의 초강경 조치들과 맞물려 카리브해를 냉전 이후 최대 군사적 긴장 지역으로 변모시키고 있다.

주목할 점은 트럼프 행정부가 전통적인 국가 간 전쟁이 아닌, '대테러 작전'이라는 비전통적 안보 프레임을 구축하고 있다는 것이다. 11월 24일 베네수엘라 정권 핵심 인사들이 연루된 '태양의 카르텔'을 외국 테러 단체로 지정한 것은 단순한 상징적 조치가 아니다. 이는 미국 이민법 제219조에 근거해 해당 단체에 대한 군사적 대응을 '대테러 작전'으로 전환시키는 법적 근거를 마련한 것이다.

이로써 미국은 베네수엘라 정부를 주권 국가의 통치 주체가 아닌 제거해야 할 '비국가 범죄 집단'으로 재정의했다. 이는 의회의 선전포고 없이도 군사력을 사용할 수 있는 우회로를 확보한 셈이다. 실제로 미 하원은 17일 민주당 주도의 전쟁권한결의안을 부결시켰다. 행정부의 일방적 전쟁 수행을 통제할 의회의 의지나 능력이 작동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마두로 정권 제거 목표를 직접 언급하지 않으면서도 "그는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정확히 알고 있다"고 말한 대목은 이번 갈등의 본질을 드러낸다. 그는 "그들이 우리로부터 훔쳐간 석유, 토지, 기타 자산을 미국에 반환할 때까지" 압박을 멈추지 않겠다고 공언했다. 이는 2007년 우고 차베스 정권이 엑슨모빌, 코노코필립스 등 미국 기업들의 석유 자산을 강제 국유화한 것에 대한 '자산 회수' 의지를 천명한 것이다.

스티븐 밀러 백악관 부비서실장은 이를 "미국 부와 자산에 대한 사상 최대의 절도"라고 규정했다. 국제투자분쟁해결센터는 베네수엘라 정부에 엑슨모빌에 16억 달러, 코노코필립스에 수십억 달러를 배상하라고 판결했으나 베네수엘라는 이행하지 않았다. 결국 이번 사태는 이념 대결을 넘어 자원과 자본을 둘러싼 실리적 분쟁의 성격을 강하게 띠고 있다.

미군의 베네수엘라 선박 공격/보도영상 캡춰


미군의 군사 전개 규모는 이번 사태의 심각성을 보여준다. '남부의 창 작전' 명칭 하에 최신예 항공모함 USS 제럴드 R. 포드호와 상륙준비전단 USS 이오지마호를 포함한 약 1만5천 명 규모의 병력이 카리브해에 배치됐다. 이는 냉전 이후 이 지역 최대 규모다. 12월 10일에는 이란 혁명수비대와 연계된 것으로 의심되는 유조선 '스키퍼'호를 헬기 강습으로 나포했으며, 9월부터 마약 밀매 선박으로 의심되는 표적에 20회 이상 치명적 타격을 가해 최소 90명 이상의 사망자가 발생했다.

16일 트럼프가 명령한 "완전한 봉쇄"는 국제법상 명백한 전쟁 행위다. 유엔 헌장 제2조 4항은 타국의 영토 보전이나 정치적 독립에 반하는 무력의 위협이나 행사를 금지한다. 그러나 트럼프 행정부는 이를 '범죄 수익 차단을 위한 법 집행'으로 프레임화하며 국제법 위반 논란을 회피하려 한다. 이는 국제 질서를 '법의 지배'에서 '힘의 지배'로 되돌리는 위험한 선례가 될 수 있다.

베네수엘라는 재래식 전력에서 미군에 압도적으로 열세지만 러시아와 이란으로부터 도입한 비대칭 전력을 보유하고 있다. 러시아제 S-300VM, Buk-M2 등 장거리 지대공 미사일은 미군 항공기 접근을 거부하는 반접근·지역거부 능력을 제공한다. 약 5천 기로 추정되는 휴대용 대공미사일 이글라-S는 저고도 비행 헬기와 드론에 위협이 된다. 베네수엘라는 450만 명 규모의 민병대를 동원해 미군 상륙 시 게릴라전을 벌이겠다고 위협한다. 분쟁이 장기화될 경우 미군에 상당한 부담이 될 수 있다.

국제 사회의 반응은 신냉전 구도를 선명하게 드러낸다. 중국 왕이 외교부장은 봉쇄를 "일방적 괴롭힘"이라 규정하며 강하게 반발했다. 베네수엘라 원유 수출의 76%가 중국으로 향하고 있어 중국의 에너지 안보가 직접 타격을 받는다. 러시아 외무부는 미국에 "치명적 실수"를 범하지 말라고 경고했다. 러시아는 베네수엘라에 군사 고문단을 파견하고 있어 미군 행동 시 우발적 충돌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반면 브라질의 룰라 대통령과 멕시코의 셰인바움 대통령은 미국의 군사 개입에 반대하며 대화를 통한 해결을 촉구한다. 이들은 미국의 봉쇄가 지역 전체의 불안정과 대규모 난민 사태를 초래할 것을 우려하며 중재자 역할을 자처하고 있다. 중남미 국가들의 이러한 입장은 미국의 일방주의에 대한 지역 내 반감을 보여준다.

한국은 미묘한 외교적 딜레마에 직면해 있다. 외교부는 11월 21일 베네수엘라 접경 지역 4개 주에 여행금지를 발령하며 자국민 보호에 주력하고 있다. 그러나 2019년 과이도를 임시 대통령으로 승인했던 것과 달리, 현재는 미국의 봉쇄 조치에 대해 직접적인 입장 표명을 자제하는 전략적 모호성을 유지한다. 이는 미중 갈등의 대리전 양상을 띠는 이번 사태에 섣불리 개입하지 않으려는 신중함으로 보인다.

그러나 한국은 에너지 수입 의존도가 높은 국가로서 '항행의 자유'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미국이 유엔 결의 없이 일방적으로 해상 봉쇄를 단행하는 선례가 굳어질 경우, 향후 호르무즈 해협이나 남중국해에서도 유사한 논리로 한국 선박이 차단될 수 있는 잠재적 위험이 존재한다. 국제법 준수와 평화적 분쟁 해결이라는 원칙을 지키는 것이 결국 한국의 국익과 직결된다.

인도적 측면에서도 우려가 크다. 베네수엘라는 수출의 90% 이상을 석유에 의존하며, 식량과 의약품 대부분을 수입한다. 유엔 식량계획에 따르면 이미 인구의 40%가 식량 안보 위기를 겪고 있다. 봉쇄가 장기화되면 외화가 고갈돼 식량 수입이 불가능해지고 기아와 질병이 창궐할 수밖에 없다. 특정 정권을 압박하기 위해 전체 국민의 생존권을 볼모로 잡는 것은 인본주의적 관점에서 정당화되기 어렵다.

환경 재앙도 예고된다. 교전 과정에서 유조선 사고가 발생하면 수십만 배럴의 원유가 카리브해로 유출될 수 있다. 이는 세계적으로 중요한 생물 다양성의 보고인 카리브해 산호초와 해양 생태계를 회복 불가능한 수준으로 파괴할 것이다. 자원을 둘러싼 인간의 탐욕이 얼마나 자연을 위협하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다.

한국의 대베네수엘라 직접 교역은 수출 약 4천239만 달러, 수입 150만 달러로 미미하다. 그러나 사태가 중남미 전체로 확산될 경우 해외 수주를 추진 중인 국내 건설사들이 타격을 받을 수 있다. 과거 베네수엘라에서 대규모 프로젝트를 수행했던 건설사들은 이미 미수금 회수가 사실상 불가능한 상황이다.

전망은 불투명하다. 트럼프 행정부가 실제 지상군을 투입할 가능성은 여전히 낮지만, 해상 봉쇄와 공습을 통한 '제한적 군사 행동'은 충분히 현실화될 수 있다. 미국은 대테러 작전이라는 명분으로 베네수엘라 석유 시설과 군사 기지에 정밀 타격을 가하면서도, 본격적인 점령이나 정권 교체는 중남미 국가들과 현지 민병대의 반발을 고려해 회피할 가능성이 크다.

오히려 미국의 전략은 봉쇄와 타격을 통해 마두로 정권을 경제적으로 질식시키고, 내부 쿠데타나 민중 봉기를 유도하는 '간접 접근'에 가까워 보인다. 그러나 이러한 시나리오는 베네수엘라 국민에게 막대한 고통을 안기면서도 정권 교체를 보장하지 못한다는 점에서 비효율적이고 비인도적이다.

국제 사회는 이번 사태를 주시해야 한다. 힘에 의한 일방주의가 법에 기반한 국제 질서를 압도하는 선례가 되어서는 안 된다. 한국은 한미 동맹을 유지하면서도, 무력 사용 자제와 평화적 해결을 촉구하는 국제 사회의 목소리에 동참해야 한다. 동시에 인도적 지원 가능성을 열어두고, 글로벌 중추 국가로서의 책임 있는 역할을 모색해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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