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노(John Noh) 국방부 인도·태평양 안보 담당 차관보 지명자/executivegov.com 자료
워싱턴의 안보 시계가 18일(현지시간)을 기점으로 급박하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미 상원이 존 노(John Noh) 국방부 인도·태평양 안보 담당 차관보 지명자에 대한 인준안을 찬성 53표, 반대 43표로 가결하면서다. 한국계 미국인으로서 펜타곤의 아시아 정책을 총괄하는 자리에 오른 그의 등장은 단순한 인사의 변화가 아니다. 이는 제2기 트럼프 행정부의 ‘힘을 통한 평화(Peace Through Strength)’ 기조가 한반도와 인도·태평양 지역에 본격적으로 투사됨을 알리는 신호탄이자, 한미동맹이 구조적인 ‘전환점(Inflection Point)’을 맞이했음을 의미한다.
존 노 차관보의 인준 과정에서 나타난 43표의 반대표는 그의 강경한 대중국 견제 노선과 동맹에 대한 거래적(transactional) 접근이 가져올 파장에 대한 워싱턴 정가의 우려를 반영한다. 그는 미 하원 ‘미국과 중국공산당 간의 전략적 경쟁에 관한 특별위원회(Select Committee on the CCP)’의 부수석변호인(Deputy General Counsel) 출신으로, 중국을 실존적 위협으로 규정하고 전방위적인 압박 전략을 설계해 온 인물이다. 아프가니스탄 전투 파병 경력을 가진 그는 책상 위의 이론가가 아닌, 현장의 불확실성과 물리적 억제력의 중요성을 누구보다 잘 아는 ‘매파(Hawk)’로 분류된다.
◆ ‘노 독트린’의 핵심: 서해 회색지대의 파고
존 노 차관보가 제시한 안보 구상, 이른바 ‘노 독트린(Noh Doctrine)’의 핵심은 동맹의 역할을 재정의하고 중국의 회색지대(Gray Zone) 도발에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것이다. 가장 우려되는 지점은 바로 서해(Yellow Sea)다. 그는 청문회에서 “서해 잠정조치수역(PMZ) 내 중국 구조물은 한국을 위협하려는 목적”이라고 규정하며, 인준 시 “적절한 대응을 제안하겠다”고 명언했다. 이는 그동안 한국 정부가 유지해 온 ‘조용한 외교’를 폐기하고, 물리적·작전적 대응을 불사하겠다는 의지로 풀이된다.
중국은 2018년 이후 서해 PMZ 인근에 대형 해양 관측 부표와 고정식 플랫폼을 설치해왔다. 전문가들은 이를 군사적 목적으로 전용 가능한 ‘이중 용도(Dual-Use)’ 자산으로 보고 있다. 이 구조물들이 미군과 한국군의 잠수함 이동 경로와 소음 패턴(Acoustic Signature)을 수집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존 노 차관보의 구상대로라면 향후 서해상에서 미 해안경비대(USCG)나 해군 함정이 진입해 연합 항행의 자유 작전(FONOPs)을 펼칠 가능성이 있으며, 이는 서해를 평화의 바다로 유지하고자 하는 한국의 바람과는 달리 군사적 긴장의 파고를 높일 수 있다.
◆ 방위비 청구서와 주한미군의 역할 변경
동맹의 경제학적 측면에서도 변화는 불가피하다. 한미 양국은 지난 11월 4일, 2026년부터 적용될 제12차 방위비분담특별협정(SMA)에 서명하며 분담금을 전년 대비 8.3% 인상했다. 그러나 존 노 차관보는 “동맹국과 파트너들은 더 많은 비용을 지출하고 자신의 역할을 다해야 한다”며 한국의 국방비 지출 증액을 지속적으로 압박하고 있다. 이는 최근 트럼프 대통령과 이재명 대통령이 합의한 ‘한미 전략 무역 투자 딜’의 일환으로 대한항공이 360억 달러 규모의 보잉 항공기를 구매하기로 한 것과 무관하지 않다. 안보 비용이 단순한 분담금을 넘어 무역과 투자의 영역으로 확장되고 있는 것이다.
더욱 민감한 문제는 주한미군(USFK)의 ‘전략적 유연성(Strategic Flexibility)’ 확대다. 존 노 차관보는 “한국은 대북 억제에 집중해야 하지만, 많은 역량이 중국 억제에도 기여할 수 있다”고 언급하며, 한반도 주둔 미군의 태세 조정을 시사했다. 이는 주한미군이 대만 사태나 남중국해 분쟁 시 투입될 수 있는 기동군으로 변화함을 의미하며, “주한미군은 오직 대북 억제용”이라는 안규백 국방부 장관의 입장과 정면으로 충돌한다. 우리의 의지와 상관없이 미중 분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릴 수 있는 구조적 위험이 커지고 있는 셈이다.
◆ 자주국방과 동맹 사이, 고차방정식 풀어야
한편으로는 기회의 창도 열려 있다. 미국은 중국 해군의 팽창을 견제하기 위해 한국의 원자력 추진 잠수함(SSN) 보유를 용인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국방부는 현재 미국과 원자력 잠수함 연료 확보 협상을 진행 중이며 2년 내 타결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는 한국 해군이 서태평양에서 중국 잠수함을 견제하는 역할을 분담하는 대가로, 숙원 사업인 핵 추진 기술을 확보하는 ‘빅 딜’의 성격을 띤다.
존 노의 등장은 한국 외교에 ‘전략적 모호성’의 공간이 소멸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이재명 정부는 평화와 주권을 지키는 민주주의적 가치와, 국익을 극대화해야 하는 현실적 과제 사이에서 고도의 외교적 균형 감각을 발휘해야 할 때다. 강대국의 패권 논리에 휩쓸리지 않고, 한반도의 평화와 해양 주권을 지켜내기 위한 지혜로운 ‘연미화중(聯美和中)’의 새로운 해법이 절실히 요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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