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중계 영상 캡춰


지난 12일 정부부처 업무보고 생중계 중 이재명 대통령이 박지향 동북아역사재단 이사장에게 던진 질문이 한국 역사학계의 구조적 문제를 수면 위로 끌어올렸다. 이 대통령은 "단군, 환단고기, 그 주장하고 연구하는 사람들을 비하해서 '환빠'라고 부르잖아요"라며, 주류 학계가 특정 역사관을 가진 집단을 조직적으로 배척하는 태도에 대해 근본적인 문제를 제기했다.

박 이사장이 "전문 연구자들의 이론과 주장이 훨씬 더 설득력이 있다"고 원론적으로 답변하자, 대통령은 "증거가 없는 건 역사가 아니다?"라고 반문했다. 이는 실증주의를 앞세운 주류 사학계가 사료 부재를 명분으로 고대사 연구의 가능성 자체를 차단해온 관행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 제기로 해석된다. 특히 일제 강점기에 조작되거나 소실된 사료를 근거로 우리 고대사를 축소·왜곡해온 학계의 태도를 겨냥한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이번 논란의 중심에 선 박지향 이사장은 서울대 서양사학과 교수 출신으로, 뉴라이트 성향 학자들과의 긴밀한 교류로 오랫동안 논란의 대상이 되어왔다. 그는 교과서포럼의 '한국근현대사' 교과서에 추천사를 작성했으며, 이 교과서는 헌법이 규정한 대한민국 임시정부 법통을 부정하고 1948년을 건국 시점으로 주장하는 뉴라이트 역사관의 핵심 산물로 비판받았다.

더욱 심각한 것은 박 이사장의 국민을 향한 일련의 비하 발언들이다. 그는 2023년 한 인터뷰에서 "한국 국민 수준은 1940년대 영국보다 못하다"고 발언했으며, 세월호 참사와 이태원 핼러윈 참사에 대해 "정부 탓만 하는 정신 상태"라고 비난했다. 이는 국가적 재난을 국민 탓으로 돌리고, 역사 기관장으로서 국민을 계몽의 대상으로 보는 엘리트주의적 시각을 드러낸 것으로 지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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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이사장은 과거 논문에서 "제국주의 협력자에 대해 구조적 차원의 분석 필요"하다며 친일 행위에 면죄부를 주는 듯한 주장을 펼쳤고, "해방 후 자유민주주의와 국제관계 관점 해석 중요"하다며 식민지 근대화론을 옹호하는 발언을 해왔다. 이러한 역사관을 가진 인물이 중국의 동북공정과 일본의 역사 왜곡에 맞서야 할 동북아역사재단의 수장을 맡고 있다는 것 자체가 재단 설립 취지를 무색하게 만든다는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이번 사태는 해방 80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청산되지 못한 '식민사학'의 문제를 정치권이 정면으로 다루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이덕일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장 등 재야 사학계는 한국 주류 사학계가 이병도-신석호로 이어지는 학맥을 통해 서울대 등 주요 대학을 장악하고, 일제 식민사학의 핵심 논리를 그대로 답습하며 학문 권력을 독점해왔다고 지속적으로 비판해왔다.

이병도는 일제 강점기 조선사편수회에서 활동한 인물로, 해방 후 한국 사학계의 태두로 군림하며 서울대 사학과를 중심으로 막강한 학맥을 형성했다. 그의 제자 신석호와 그 후학들이 주요 대학의 사학과를 장악하면서, 일제가 우리 역사를 축소·왜곡하기 위해 만든 '낙랑군 평양설'과 '임나일본부설'이 해방 후에도 한국 사학계의 정설로 자리 잡게 됐다는 것이 재야 학계의 주장이다.

주류 학계는 평양 일대에서 발굴된 '낙랑예관'이 찍힌 봉니(진흙 도장), 점제현 신사비, 다수의 고분군을 근거로 한나라의 낙랑군이 평양에 있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재야 사학계는 이러한 유물들이 일제 강점기 조선총독부 주도로 조작되거나 외부에서 이입됐을 가능성을 제기한다. 그들은 중국의 고대 문헌인 『사기』, 『한서』 등을 재해석하면 낙랑군이 요동이나 요서 지역에 있었다는 결론이 나온다며, 낙랑군을 평양에 인정하는 것이 "한반도 북부가 중국의 식민지였다"는 중국 동북공정의 논리를 스스로 인정하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임나일본부설 논란은 더욱 첨예하다. 『일본서기』에 등장하는 '임나일본부'는 4~6세기 야마토 왜가 한반도 남부를 지배했다는 일제의 한반도 침략 정당화 논리였다. 현대 한일 역사학계에서는 공식적으로 폐기됐지만, 재야 학계는 주류 학계가 가야사 연구에서 『일본서기』의 지명을 그대로 차용함으로써 사실상 임나일본부설을 부활시키고 있다고 비판한다.

최근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과정에서 전북 남원 지역을 『일본서기』의 '기문국', 경남 합천을 '다라국'으로 비정한 것에 대해, 이덕일 소장 등은 "가야 강역을 전라도까지 확장하여 임나의 지배 영역을 넓혀주는 매국 행위"라고 맹비난했다. 이들은 김현구, 김태식 교수 등을 중심으로 한 주류 학계가 '임나=가야'라는 등식을 고착화시켜 일본 극우 세력의 역사 왜곡을 돕고 있다고 주장한다.

재야 학계가 주장하는 '식민사학 카르텔'은 단순히 학설의 일치를 넘어, 교수 임용, 연구비 지원, 교과서 편찬 등 학문 권력의 독점 구조를 의미한다. 이병도-신석호로 이어지는 학맥이 서울대 등 주요 대학을 장악하고, 자신들의 학설에 반대하는 연구자를 조직적으로 배제해왔다는 것이다. 실제로 동북아역사재단이 하버드대와 추진했던 영문 서적 발간 사업이 식민사학 논란으로 중단된 사례는, 학계의 폐쇄적 권위주의가 낳은 참사로 지적된다.

주류 학계는 『환단고기』를 1979년 이전 판본이 없고 '문화', '남녀평권' 등 근대 용어가 사용됐다는 점을 들어 위서(僞書)로 단정한다. 그러나 재야 학계는 일제의 탄압을 피해 숨겨진 비전(秘傳)이며, 오성취루 같은 천문 기록이 현대 천문학으로 검증되고 만주 홍산 문화 등이 이를 뒷받침한다고 주장한다. 이들은 주류 학계가 학문적 엄밀성을 명분으로 내세우지만, 실제로는 일제가 만든 논리 틀 안에서만 역사를 해석하며 그 틀을 벗어나는 모든 시도를 '유사역사학'으로 매도해 탄압한다고 비판한다.

이재명 대통령의 이번 발언은 표면적으로는 고대사를 묻고 있지만, 실질적으로는 박지향 이사장으로 대표되는 뉴라이트 역사관이 대한민국 헌법 정신(임시정부 법통 계승)과 민족 정체성에 부합하는지를 묻는 본질적 질문이다. 또한 해방 80년이 지나도록 청산되지 못한 식민사학의 잔재를, 그리고 이를 대물림하며 학문 권력을 독점해온 카르텔 구조를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다는 문제의식의 표현으로 읽힌다.

동북아역사재단은 2006년 중국의 동북공정과 일본의 역사 교과서 왜곡에 대응하기 위해 노무현 정부가 설립한 국가 차원의 전략 기구다. 법적으로 재단은 "바른 역사를 정립하고 동북아시아 지역의 평화 및 번영의 기반을 마련"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그러나 재단은 출범 직후부터 '정치적 대응'과 '학술적 연구' 사이에서 딜레마에 빠져, 학술적 신중함을 보이면 "저자세 외교", "식민사학 옹호"라는 비난을 받고, 민족주의적 입장을 취하면 국제 학계에서 고립되는 표류를 거듭해왔다.

한국 사회가 내부의 역사 논쟁에 골몰하는 사이, 중국은 만리장성을 한반도 내부까지 연장하고 한국 전통문화를 중국 소수민족 문화로 편입시키는 '문화 공정'을 강화하고 있다. 일본 극우 세력은 한국 내 식민지 근대화론 논란을 자신들의 침략 역사 정당화에 악용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역사 주권 수호를 위한 국가 기구의 수장이 오히려 일본의 논리에 동조하는 듯한 인상을 주고, 국민을 비하하는 발언을 서슴지 않는다는 것은 재단의 존재 이유 자체를 의심케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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