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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대 경제대국 미국이 자국민의 생존권을 위협하는 의료 위기를 맞고 있다. 2026년 초 오바마케어(ACA) 보조금 만료와 보험사 독점 구조가 맞물리면서, 중산층 가정이 연간 5천만원이 넘는 보험료를 감당해야 하는 상황이 현실화되고 있다.

와이오밍주 알타(Alta)에 거주하는 스테이시 뉴턴(Stacy Newton) 씨는 남편과 두 자녀의 내년도 건강보험을 유지하기 위해 연간 4만3천 달러(약 5천600만원)라는 천문학적 보험료를 청구받았다. 이는 미국 중산층 가구 소득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금액으로, 주거비나 교육비를 상회하는 수준이다.

이 같은 비극적 상황은 2025년 12월31일 종료되는 강화된 보조금 제도와 지역 보험 시장의 독점 구조가 결합된 결과다. 2021년 미국 구조 계획법과 2022년 인플레이션 감축법을 통해 확대됐던 건강보험 보조금은 2천200만 명 이상의 미국인에게 생명줄 역할을 했으나, 의회의 연장 실패로 내년부터 사라지게 됐다.

◆ 주별 보험료 최대 1,376% 폭등 전망

의회예산국(CBO)과 카이저가족재단(KFF)은 보조금 만료 시 2026년 보험 가입자들의 월 보험료가 평균 114% 폭등할 것으로 분석했다. 미시시피주는 월 평균 보험료가 41달러에서 605달러로 1,376% 급등할 것으로 예상되며, 웨스트버지니아주도 1,058%의 인상이 예고됐다.

이러한 '보조금 절벽' 현상은 전국적으로 약 400만 명의 미국인을 무보험 상태로 내몰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공화당 우세 지역인 남부와 중서부 주들이 가장 큰 타격을 받을 것으로 분석돼, 트럼프 행정부의 정책 기조가 자신의 지지 기반에 역설적으로 피해를 줄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와이오밍주의 경우 블루크로스 블루실드(Blue Cross Blue Shield of Wyoming)가 91% 이상의 시장 점유율로 사실상 독점 지위를 누리고 있다. 알타 지역은 오바마케어 마켓플레이스를 통해 가입 가능한 보험 상품이 단 하나뿐이며, 유일한 대안이었던 마운틴 헬스 협동조합도 수익성 악화로 철수를 결정했다.

◆ 트럼프 '개인선택권' 정책, 위험 분산 체계 와해 우려

트럼프 대통령과 공화당은 오바마케어를 "최악의 의료제도"라 비판하며 '퍼스널 옵션(Personal Option)'을 새로운 대안으로 제시하고 있다. 이 정책은 보험사에 보조금을 지급하는 현 방식을 폐기하고, 환자에게 직접 자금을 지원해 원하는 의료 서비스를 선택하게 한다는 구상이다.

퍼스널 옵션은 건강저축계좌(HSA) 확대, 직접 일차 진료(Direct Primary Care) 장려, 원격의료 영구화 등의 규제 완화, 메디케어와 메디케이드의 바우처화를 주요 내용으로 한다. 헤리티지 재단과 공화당 연구위원회(RSC)는 기존 보조금의 주 정부 이관과 메디케어의 프리미엄 지원 전환을 제안하고 있다.

그러나 의료 전문가들은 이 정책이 보험의 기본 원리인 '위험 분산'을 해체해 만성질환자와 고령자를 더욱 어려운 처지로 몰아넣을 것이라 경고한다. 건강한 젊은 층은 저렴한 보험에 가입하고 차액을 챙기는 반면, 아픈 사람들은 지급받은 금액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높은 보험료에 직면하게 된다는 것이다.

◆ 관세 정책이 의료비 상승 부채질

트럼프 행정부의 보호무역 정책도 의료비 상승을 가속화하고 있다. 미국은 주사기, 의료용 장갑, MRI 기기 부품 등 필수 의료 물품의 상당 부분을 중국 등에서 수입하는데, 지난 5월부터 시행된 대중국 관세 인상으로 의료 공급망 비용이 급등했다.

2024년 주사기와 바늘에 50% 관세가 부과됐고, 2026년에는 의료용 고무장갑에 25% 관세가 추가된다. 의료 장비 필수 부품인 반도체 관세도 내년 50%로 인상된다. 딜로이트와 프라이스워터하우스쿠퍼스(PwC)는 2026년 의료비용 증가율이 7.5~8.5%에 달할 것으로 전망했다.

이러한 의료비 급등은 중산층의 가처분소득을 위축시키고 있다. 브루킹스 연구소는 미국 중산층의 3분의1이 이미 기본 생활비를 감당하기 어려운 상태라고 분석했다. 의료비 지출 증가로 내구재 소비는 감소하고 작은 사치재에 집중하는 '립스틱 효과'가 확산되고 있다.

◆ 한국 건보 체계와 대조...가치 외교 카드로 활용해야

한국의 국민건강보험(NHIS) 체계는 미국과 극명한 대조를 이룬다. 전 국민 의무 가입 방식의 단일 보험자 시스템인 한국은 소득 수준에 관계없이 필수 의료 서비스를 보장받으며, 미국과 같은 '의료 파산' 위험이 상대적으로 낮다.

한국의 의료비 지출은 국내총생산(GDP) 대비 비중이 미국보다 낮으면서도 기대 수명은 83.5세로 미국(77.5세 미만)보다 훨씬 높다. 다만 한국도 저출산과 지방 의료 인력 부족으로 산부인과가 없는 시·군·구가 65곳에 달하는 등 공급 측면의 위기에 직면해 있다.

미국의 시장 실패는 '생명은 상품이 아니다'라는 인본주의적 가치의 중요성을 재확인시킨다. 한국은 자국 건강보험 시스템을 'K-헬스' 브랜드로 확장해 '인권으로서의 의료'라는 가치를 전파하는 공공외교를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동시에 미국의 의료비 절감 요구에 부응해 한국산 고품질 제네릭 및 바이오시밀러 수출을 확대하고, 미국 의료 공급망 안정화를 위한 파트너십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다만 미국의 실패를 반면교사 삼아 의료 영리화나 민간보험 의존도 심화를 경계하고, 지방 의료 붕괴를 막기 위한 필수 공공재로서의 의료 인프라 투자를 확대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진정한 의료 개혁은 시장의 자유가 아닌 인간의 존엄을 중심에 둘 때 비로소 가능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견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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