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금값이 22일 온스당 4천400달러를 돌파하며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다. 은 가격 역시 온스당 69.15달러까지 치솟으며 1980년 헌트 형제 사태 이후 45년 만에 최고가를 기록했다. 전문가들은 동시다발적으로 폭발한 지정학적 위기가 '초상품 슈퍼사이클'을 본격화시켰다고 분석한다.
귀금속 가격 급등의 직접적 촉발점은 트럼프 행정부의 베네수엘라 봉쇄 선언과 우크라이나의 지중해 유조선 공격이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2월 16일 베네수엘라에 대한 '완전하고 총체적인 봉쇄'를 선언하고, 사흘 뒤 우크라이나가 지중해 공해상에서 러시아의 그림자 선단 유조선을 드론으로 타격하면서 에너지 안보와 글로벌 공급망 붕괴에 대한 근원적 공포가 시장을 휩쓸었다.
투자자들은 전쟁과 봉쇄가 장기화될 것으로 예상하며 자금을 대거 실물 자산으로 이동시켰다. 특히 미 해안경비대와 해군이 카리브해에서 베네수엘라산 원유를 운송하는 선박들을 잇달아 나포하면서 국제 해운과 에너지 시장의 불확실성이 극대화됐다. 12월 20일에는 미국의 제재 명단에조차 포함되지 않았던 파나마 국적 유조선 '센추리스'호가 공해상에서 나포되며 미국의 봉쇄가 무차별적으로 확대되고 있음이 드러났다.
금 가격 상승을 견인한 또 다른 핵심 요인은 미국 연방준비제도의 통화정책 기대 변화다. 미국의 물가 상승률 둔화와 노동시장 냉각 신호는 2026년 추가 금리 인하에 대한 시장의 확신을 강화했다. 금리가 낮아지면 이자가 없는 자산인 금의 상대적 매력도가 높아진다. 트럼프 대통령의 공격적인 관세 정책과 예측 불가능한 외교 행보는 달러화의 장기적 가치에 대한 의구심을 키우며 중앙은행들과 기관 투자자들의 헤징 수요를 폭발시켰다.
은 가격은 금보다 더 가파른 상승세를 보였다. 월간 35퍼센트 상승하며 금의 상승률을 크게 웃돌았다. 은은 안전 자산으로서의 속성에 더해 태양광 패널과 첨단 전자기기 등 산업용 수요가 견조한 가운데 지정학적 매수세가 겹치며 높은 상승 탄력을 나타냈다. 시장 전문가들은 은의 이중적 특성이 현재의 위기 국면에서 투자자들에게 더욱 매력적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분석한다.
골드만삭스는 2026년 금 가격 목표치를 온스당 4천900달러로 상향 조정했다. 골드만삭스는 공급 부족과 정책 불확실성이 지속될 경우 추가 상승 여력이 충분하다고 분석하며, 지정학적 리스크가 해소되지 않는 한 강세장이 계속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기술적 분석상으로도 금과 은은 강력한 상승 추세에 진입해 있으며, 단기 조정이 오더라도 근본적인 상승 흐름은 꺾이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지정학적 긴장은 에너지 시장뿐 아니라 전 세계 공급망 전반에 걸친 불확실성을 증폭시키고 있다. 우크라이나가 지중해에서 러시아의 그림자 선단을 타격한 것은 전장이 흑해를 넘어 지중해 전역으로 확장됐음을 의미한다. 우크라이나 보안국은 12월 19일 몰타와 크레타섬 사이 해역에서 11만 5천 톤급 유조선 '켄딜'호를 장거리 드론으로 공격했다. 이는 우크라이나 국경에서 약 2천 킬로미터 떨어진 원거리 작전으로, 러시아의 주요 수출 항로 전체가 교전 지역으로 변모했음을 보여준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공격이 러시아 관련 선박에 대한 해상 보험료를 폭등시키고 선원들의 승선 거부를 유발해 러시아의 석유 수출 마진을 훼손할 것이라고 분석한다. 물리적 타격을 통해 수출 비용을 강제로 인상시키는 '운동학적 제재'가 본격화되면서 에너지 공급망의 구조적 불안정성은 더욱 심화될 전망이다.
역설적이게도 원유 시장은 상대적 안정세를 유지하고 있다. 브렌트유는 배럴당 60달러 선을, 서부텍사스산원유는 57달러대를 간신히 유지하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의 증산 정책으로 미국의 원유 생산량이 사상 최대치를 경신한 데다 브라질, 가이아나 등 비석유수출국기구 산유국들의 증산이 이어지면서 구조적 공급 과잉 상태가 지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현재의 유가 안정이 지정학적 블랙 스완 발생 시 급격히 무너질 수 있다고 경고한다.
중국 외교부는 미국의 베네수엘라 봉쇄에 대해 "유엔 헌장을 위반하는 일방적 괴롭힘"이라며 강력히 비난했다. 왕이 중국 외교부장은 베네수엘라 외무장관과의 통화에서 "베네수엘라가 주권과 존엄을 수호하는 것을 확고히 지지한다"고 밝혔다. 중국은 베네수엘라의 최대 채권국이자 주요 원유 수입국으로서 미국의 봉쇄가 자국의 에너지 안보와 경제적 이익을 직접 침해한다고 판단하고 있다.
러시아 역시 세르게이 라브로프 외무장관을 통해 "미국의 해상 봉쇄는 국제법 위반이며 용납될 수 없다"고 경고했다. 브라질의 룰라 다 실바 대통령과 멕시코의 클라우디아 셰인바움 대통령은 미국의 군사 개입 가능성에 깊은 우려를 표명하며 대화를 통한 해결을 촉구했다. 국제 사회는 힘에 의한 평화를 추구하는 트럼프 행정부와 이에 저항하는 반미 블록 간 충돌로 극도의 불확실성에 휩싸여 있다.
한국 외교부는 베네수엘라와 미국 간 군사적 긴장 고조에 따라 11월 21일 베네수엘라 접경 주에 대해 여행금지 조치를 발령했다. 한국 정부는 미국 주도의 '팍스 실리카' 이니셔티브에 참여해 핵심 광물 공급망 협력을 강화하고 있으나, 미중 갈등의 최전선에 휘말릴 위험도 함께 안고 있다. 에너지 수입선 다변화와 공급망 리스크 관리가 시급한 과제로 떠올랐다.
시장 분석가들은 금과 은이 불안정한 국제 정세 속에서 안전 자산으로서의 지위를 더욱 공고히 하며 상승세를 이어갈 것으로 전망한다. 지정학적 위기가 해소되지 않는 한 귀금속 시장의 강세장은 지속될 것이며, 초상품 슈퍼사이클이 본격화되는 신호로 해석된다. 투자자들은 전쟁과 봉쇄의 장기화 가능성에 대비해 실물 자산 배분을 늘리는 추세다.
#금값사상최고가 #은가격급등 #초상품슈퍼사이클 #지정학적리스크 #안전자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