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 반정부 시위 모습/Amu.tv 자료


지난해 12월 말 경제난을 배경으로 시작된 이란 반정부 시위가 체제 전복 요구로 확대되면서 사망자가 2000명에 달할 것이라는 충격적 추산이 나왔다. 60시간 이상 계속된 인터넷 전면 차단으로 정확한 피해 규모 파악이 어려운 가운데, 현지 의료진과 인권단체들은 이란 당국의 무차별 진압으로 2019년 '피의 11월' 당시 1500명 사망을 넘어서는 참사가 벌어지고 있다고 경고했다.

노르웨이 소재 인권단체 이란휴먼라이츠(IHR)는 11일(현지시간) 기준 확인된 사망자만 최소 192명이라고 밝혔다. 미국 기반 인권운동가통신(HRANA)은 시민 162명과 군경 41명 등 총 203명이 숨졌다고 집계했다. 그러나 타임지가 인용한 테헤란의 한 의사는 "테헤란 내 6개 병원에서만 최소 217명이 사망했다"고 증언했다. 이란 전역 31개 주 185개 도시에서 시위가 격화되고 있는 점을 고려하면 실제 희생자는 이보다 훨씬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란 당국은 시위대를 '모하레베(신에 대항하여 전쟁을 벌이는 자)'로 규정하고 강경 진압에 나섰다. 혁명수비대(IRGC)와 바시지 민병대는 1월 8일부터 시위대의 머리와 가슴 등 급소를 겨냥한 실탄 사격을 가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북부 도시 라슈트의 한 병원에서는 하루 만에 70구의 시신이 밀려들어 안치실이 포화 상태에 이르렀다는 증언도 나왔다.

더욱 충격적인 것은 병원까지 전장이 되고 있다는 점이다. 1월 3~4일 일람 시의 한 병원에서는 보안군이 병원 내부에 최루탄과 산탄총을 발사했다는 보고가 프랑스24에 의해 검증됐다. 테헤란 파라비 안과 병원 의사는 보안군이 시위대의 눈을 겨냥해 산탄총을 발사해 수많은 청년들이 실명 위기에 처했다고 밝혔다.

이번 시위는 리알화 폭락에서 촉발됐다. 1월 현재 비공식 환율은 1달러당 140만~150만 리알까지 치솟았다. 1979년 이슬람 혁명 당시 1달러당 70리알이었던 것과 비교하면 47년 만에 화폐 가치가 2만 배 이상 폭락한 셈이다. 2025년 12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전년 동기 대비 42.2%에 달했고, 식료품과 의료비는 각각 72%, 50% 급등했다.

경제 파탄의 이면에는 2025년 6월 발생한 이른바 '12일 전쟁'이 자리하고 있다. 이스라엘 및 서방 연합세력과의 단기 고강도 충돌로 군사 인프라뿐 아니라 경제 기초 체력이 심각하게 훼손됐다는 분석이다. 전쟁 비용 조달을 위한 수탈적 경제 정책이 국민 분노를 가중시켰다.

국제사회의 반응은 엇갈리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이란은 그 어느 때보다 자유를 보게 될 것이며 미국은 구원할 준비가 되어 있다"고 밝히며 시위대 지지 입장을 분명히 했다. 유럽연합(EU) 고위대표 카야 칼라스는 "이란 국민의 더 나은 삶과 자유 요구에 연대한다"며 당국의 폭력 진압을 규탄했다.

반면 중국과 러시아는 전략적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중국은 베네수엘라 사태에 대해서는 '내정 간섭'이라며 맹비난했지만 이란 시위에는 상대적으로 조용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이란의 정정 불안이 중국의 에너지 안보와 일대일로 프로젝트에 미칠 악영향을 우려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유엔 인권최고대표 폴커 투르크는 "독립적이고 투명한 조사가 필요하다"며 인터넷 차단이 인권 침해를 은폐하는 도구로 악용되고 있다고 비판했다. 국제앰네스티는 사망자 중 최소 어린이 3명이 포함됐다며 민간인 피해를 우려했다.

한국 외교부는 5일 윤주석 영사안전국장 주재로 긴급 점검 회의를 열고 교민 보호 대책을 논의했다. 현재 이란에는 기업 주재원, 유학생, 자영업자 등 소수의 교민이 체류 중이다. 정부는 2024~2025년 이스라엘-하마스 분쟁 당시 교민 56명을 투르크메니스탄 등으로 육로 대피시킨 경험을 바탕으로 비전투원 후송 작전을 준비하고 있다.

한국과 이란의 경제 관계는 미국의 대이란 제재 이후 사실상 단절됐다. 2025년 11월 기준 한국의 대이란 수출은 888만 달러로 전년 동월 대비 22.8% 감소했다. 한때 연간 교역액이 100억 달러를 상회했던 이란 시장은 이제 월 수출액 1000만 달러 미만의 미미한 시장으로 전락했다.

그러나 호르무즈 해협 안보는 여전히 한국의 핵심 이익이다. 이란 정권이 내부 위기를 외부로 돌리기 위해 호르무즈 해협을 봉쇄하거나 상선을 나포할 경우 한국의 원유 수급과 물류에 치명적 타격을 줄 수 있다. 2024년 한국 상선 '한국케미' 호 나포 사건 같은 일이 재발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2023년 합의에 따라 한국 내 묶여 있던 이란의 원유 수출 대금 약 60억 달러가 카타르 은행으로 이체됐으나, 이란은 여전히 이 자금에 자유롭게 접근하지 못하고 있다. 이란 강경파는 이를 '한국의 배신'으로 규정하며 반한 감정을 조장할 가능성이 있어 향후 양국 관계의 잠재적 뇌관으로 지목된다.

전문가들은 이란 사태가 세 가지 시나리오로 전개될 수 있다고 전망한다. 첫째는 무자비한 진압으로 일시적 안정을 되찾는 경우, 둘째는 군부 균열로 내전 양상으로 번지는 경우, 셋째는 급변 사태로 정권이 붕괴하는 경우다. 어떤 시나리오든 중동 정세 불안과 유가 변동성 확대로 한국의 에너지 안보에 직접적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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