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 전국 시위 모습 (9일차) /사진=NCRI(National Council of Resistance of Iran)
이란 전역을 뒤흔든 반정부 시위가 12일째를 맞으면서 최소 45명이 사망하고 2천여 명이 체포되는 등 유혈 사태로 번지고 있다. 지난달 28일 테헤란 대바자(Grand Bazaar) 상인들의 파업으로 시작된 시위는 경제난에 대한 항의를 넘어 체제 전복을 요구하는 정치적 봉기로 급속히 확산됐다.
노르웨이에 본부를 둔 이란인권단체(IHR)는 9일 현재까지 최소 45명이 사망했으며, 이 중 8명이 미성년자라고 밝혔다. 미국 기반 인권활동가뉴스통신(HRANA)도 42명의 사망자와 2천277명의 체포자를 확인했다고 발표했다. 반면 이란 정부는 사망자를 21명으로 축소 발표하며 "폭도에 의한 보안군 사망"을 강조하고 있다.
시위는 불과 2주 만에 이란 31개 주 348개 도시로 확산됐다. 1979년 이슬람 혁명 이후 가장 광범위한 저항 운동으로 기록되고 있다. 테헤란을 비롯해 쿠르디스탄, 파르스, 부셰르 등 전국 각지에서 대학생, 노동자, 상인, 여성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이번 시위의 직접적 도화선은 리알화의 폭락이다. 지난 1월 초 달러당 147만 리알이라는 사상 최저치를 기록하며 식용유와 유제품, 육류 등 생필품 가격이 하루 만에 두 배로 치솟았다. 여기에 정부가 2026/27년 예산안에서 생필품 보조금을 폐지하고 세금 인상을 예고하면서 민심이 폭발했다.
주목할 점은 이슬람 정권의 전통적 지지 기반이었던 대바자 상인들이 시위를 주도했다는 사실이다. 바자리스(Bazaaris)로 불리는 시장 상인 계층은 1979년 혁명 당시 호메이니를 지지하며 팔레비 왕조 붕괴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 그러나 이들은 이번에 "무능한 정권 퇴진"을 외치며 신정 체제와 결별을 선언했다.
시위대의 구호도 급진화되고 있다. 초기 "물가를 잡으라"는 경제적 요구는 "독재자에게 죽음을", "이슬람 공화국을 원치 않는다"는 체제 전복 구호로 바뀌었다. 특히 "팔레비의 귀환", "레자 샤, 당신의 영혼에 축복을"과 같은 왕정 복고 구호가 등장한 것은 현 체제에 대한 극심한 환멸을 보여준다. 망명 중인 레자 팔레비 왕세자가 8일과 9일 저녁 8시 시위를 독려하자 수많은 시민들이 이에 호응했다.
이란 당국은 8일부터 전면적인 인터넷 차단을 단행했다. 넷블록스(NetBlocks)에 따르면 이란의 인터넷 연결률이 100%에서 5% 수준으로 급락했다. 국제 전화선까지 차단돼 외부와의 소통이 불가능해진 상태다. 넷블록스는 이를 "국제 인권법 위반"이자 "정보에 대한 권리 침해"로 규정했다.
보안군의 진압은 갈수록 잔혹해지고 있다. 국제앰네스티는 보안군이 최루탄과 물대포를 넘어 산탄총과 군용 실탄을 시위대를 향해 직사하고 있다고 밝혔다. 로레스탄주 아즈나 시에서는 17세 소년 레자 모라디(Reza Moradi)가 보안군의 조준 사격을 받고 머리와 몸통에 총상을 입어 사망했다. 당국은 유족에게 시신 인도를 거부하고 그를 바시지(Basij, 민병대) 대원이라고 허위 선전하라고 압박한 것으로 알려졌다.
더욱 충격적인 것은 보안군이 부상당한 시위대를 체포하기 위해 병원까지 급습하고 있다는 점이다. 일람의 이맘 호메이니 병원과 테헤란의 시나 병원 등에서 보안군이 최루탄을 발사하고 응급실에 난입해 치료 중인 환자들을 끌고 가는 만행이 자행됐다. 이는 전시 국제법상으로도 금지된 행위다.
전국 36개 이상의 대학에서 학생들이 시위를 주도했다. 아미르 카비르 공과대학은 시위 참여 열기로 인해 기말고사를 일주일 연기하는 초유의 사태를 맞았다. 칸간 석유화학 단지와 사우스 파스 가스전 노동조합도 파업을 선언했다. 에너지 수출이 국가 재정의 핵심인 상황에서 석유 노동자들의 파업은 정권에 치명적 위협이 되고 있다.
서부 쿠르디스탄 지역에서는 7개 쿠르드 정치 단체의 호소에 따라 총파업이 단행됐다. 시위대는 "여성, 생명, 자유" 구호와 함께 자치권과 생존권을 요구하며 가장 격렬하게 저항했다. 남부 파르스 주에서는 정권의 영웅으로 추앙받는 가셈 솔레이마니(Qassem Soleimani) 사령관의 동상이 시위대에 의해 끌어내려지고 불태워지는 상징적 사건도 발생했다.
마수드 페제시키안(Masoud Pezeshkian) 대통령은 "어떠한 폭력이나 강압적인 행동도 피해야 한다"며 보안군의 자제를 촉구했지만, 현장에서는 전혀 작동하지 않고 있다. 페제시키안 대통령은 "정부 혼자서는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며 자신의 무력감을 공개적으로 토로하기도 했다. 이는 이란의 이원적 권력 구조에서 대통령이 실질적인 군 통수권과 치안 통제권이 없음을 보여준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이란 정권이 평화적인 시위대를 살해한다면 미국은 그들을 매우 강력하게 타격할 것(hit them very hard)"이라며 군사적 개입 가능성까지 열어뒀다. 미 국무부는 "이란 국민의 분노는 정당하다"며 시위를 공식 지지했다. 반면 이란 정보부와 외무부는 시위 배후에 미국과 이스라엘 등 "적대 세력"이 있다고 주장하며 외세 개입설을 퍼뜨리고 있다.
한국 외교부는 이란 내 시위 격화에 따라 재외국민 보호를 최우선 과제로 삼고 있다. 주이란 한국대사관은 교민들에게 외출 자제와 신변 안전 유의를 거듭 공지했다. 한편 2025년 11월 기준 한국의 대이란 수출은 약 888만 달러, 수입은 20만8천 달러에 불과해 양국 교역은 사실상 붕괴 상태다.
이번 시위는 2009년 녹색운동, 2019년 연료가격 시위, 2022년 마흐사 아미니 시위와 달리 경제적 생존의 절박함과 정치적 대안에 대한 열망이 결합된 형태로, 전통적 지지 기반인 상인 계층의 이탈과 석유 노동자의 파업이 정권에 전례 없는 실질적 위협이 되고 있다. 1979년 이슬람 혁명 이후 가장 광범위한 이 저항 운동이 이란 신정 체제의 운명을 어떻게 바꿀지 국제사회가 주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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