멕시코 의회가 10일(현지시간)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하지 않은 국가로부터 수입되는 1,463개 전략 품목에 최대 50%의 고율 관세를 부과하는 일반수출입세법(LIGIE) 개정안을 가결했다. 이번 조치로 한국과 중국, 인도, 대만 등 비FTA 국가들이 직격탄을 맞게 됐다.

하원은 이날 오전 본회의에서 찬성 281표, 반대 24표, 기권 149표로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집권 여당인 국가재건운동(MORENA)과 녹색생태당(PVEM) 소속 의원들이 대거 찬성표를 던졌다. 리카르도 몬레알(Ricardo Monreal) 하원 여당 원내대표는 소셜미디어를 통해 "이번 관세 조치는 멕시코 내수 시장을 강화하고 고용을 보호하기 위한 필수적인 조치"라고 밝혔다.

주목할 점은 149표에 달하는 대규모 기권표다. 제1야당인 국민행동당(PAN)과 제도혁명당(PRI)뿐 아니라, 여당의 핵심 연립 파트너인 노동당(PT) 소속 의원들도 대거 기권했다. 전통적으로 중국과 우호 관계를 유지해 온 노동당이 중국을 주 타깃으로 하는 이번 법안에 '침묵의 저항'을 행사한 것으로 분석된다.

하원을 통과한 법안은 당일 저녁 상원으로 이송돼 찬성 76표, 반대 5표, 기권 35표로 신속히 처리됐다. 법안은 클라우디아 셰인바움(Claudia Sheinbaum) 대통령의 서명을 거쳐 관보에 게재된 후 내년 1월 1일부터 효력을 발휘할 예정이다.

개정안은 자동차 및 자동차 부품, 철강 및 알루미늄, 전자·전기기기, 섬유·의류 등 17개 산업 분야에 걸쳐 1,463개 품목을 '전략 품목'으로 지정했다. 관세율은 품목의 민감도와 국내 생산 역량에 따라 5%에서 50%까지 차등 적용된다. 완성차와 특정 철강 제품 등에는 최고 세율인 50%가, 대부분의 품목에는 20~35%의 관세가 부과될 전망이다.

한국은 멕시코와 FTA를 체결하지 않은 상태로, 2024년 3분기까지 대멕시코 무역에서 120억 9,800만 달러(약 17조 7,000억 원)의 누적 흑자를 기록했다. 이러한 무역 불균형은 멕시코 정부가 한국을 보호무역의 타깃으로 삼는 명분이 됐다.

한국 자동차 산업은 특히 큰 타격이 예상된다. 기아(Kia)는 멕시코 누에보레온주 페스케리아(Pesquería)에서 K3, K4 등을 생산하며 한국에서 엔진, 변속기, 주요 전장 부품을 수입해 조립하고 있다. SK증권 분석에 따르면, 관세율이 15~35% 수준으로 인상될 경우 기아는 연간 약 3조 1,000억 원의 추가 관세 비용을 부담하게 된다.

철강 산업도 직격탄을 맞는다. POSCO는 멕시코 내 다수의 가공 센터를 운영하며 자동차 강판을 공급하는데, 철강 품목에 대해 25~50%의 고율 관세가 부과되면 미국산이나 멕시코산 대비 가격 경쟁력을 상실하게 된다.

삼성전자와 LG전자도 타격이 불가피하다. 양사는 티후아나, 레이노사, 케레타로 등지에 TV 및 생활가전 생산 거점을 보유하고 있다. 반도체, 디스플레이 모듈 등 핵심 자재에 대한 관세 인상으로 제조 원가가 급등하면서, 멕시코 생산 물량 중 일부를 미국으로 이전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조치의 최대 표적인 중국은 즉각 반발했다. 중국 상무부는 멕시코의 조치가 세계무역기구(WTO)의 최혜국 대우 원칙을 위반한다고 비판하며 "신중한 처신"을 촉구했다. 중국은 멕시코산 농산물에 대한 보복 관세 부과를 검토하는 한편, 멕시코의 조치에 대한 무역 조사를 개시했다.

이번 관세 인상은 2026년으로 예정된 미국-멕시코-캐나다 협정(USMCA) 이행 검토를 앞두고, 대미 무역 관계의 불확실성을 해소하려는 셰인바움 행정부의 전략으로 풀이된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멕시코가 중국의 뒷문으로 전락했다"고 비난하며 멕시코산 제품에 25%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위협해 온 상황에서, 멕시코는 아시아산 제품에 선제적으로 고율 관세를 부과해 북미 공급망 보호 의지를 보이려는 것이다.

법안은 현재 2026년 12월 31일까지 한시적으로 적용되는 것으로 명시돼 있으나, 미중 갈등이 지속되는 한 영구적인 조치로 굳어질 가능성이 높다. 멕시코 재무부는 이번 조치로 2026년 약 520억 페소(약 28억 달러)의 추가 세수가 발생할 것으로 추산했다.

한국 정부는 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을 중심으로 대응책 마련에 나섰다. 한국무역협회는 긴급 분석 보고서를 통해 자동차 부품과 철강 등 주력 수출 품목의 타격이 불가피하다고 경고했다. 정부는 멕시코 측에 한국 기업의 기여도를 강조하며 산업진흥프로그램(PROSEC) 등을 통한 예외 인정을 요청하고 있으나, 협상이 난항을 겪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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