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를 불과 몇 주 앞두고 미국과 중국이 희토류와 관세를 무기로 전면전 양상을 보이면서 글로벌 공급망 전체가 요동치고 있다. 중국의 기습적인 희토류 수출 통제 강화에 미국이 100% 추가 관세로 맞불을 놓으면서, 양국 간 지정경제적 대결이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다.
지난 5월 양국이 관세를 일부 인하하며 타결한 '휴전'과 9월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열린 무역 회담은 갈등이 관리될 수 있다는 기대를 낳았다. 이 휴전의 핵심은 미국이 관세를 인하하는 대가로 중국이 희토류 자석 등의 흐름을 방해하지 않는다는 암묵적 합의에 기반한 것으로 보였다.
그러나 이 취약한 평화는 오래가지 못했다. 시진핑 주석은 휴전을 핵심 물품에 대한 새로운 규제나 기업 제재를 양측 모두 동결하는 것으로 이해한 반면, 미국은 관세 인하의 대가로 희토류 자석의 원활한 흐름만을 확보하는 제한적인 합의로 간주했다. 이러한 인식의 불일치가 결국 폭발했다.
중국의 전격적 희토류 통제 강화
9일 중국 상무부는 기존 규제를 훨씬 뛰어넘는 포괄적인 희토류 수출 통제 조치를 발표했다. 기존에 규제에서 제외됐던 홀뮴, 에르븀, 툴륨, 유로퓸, 이터븀 등 5종의 희토류 원소를 새롭게 통제 대상에 포함시켰을 뿐만 아니라, 디스프로슘, 이트륨, 사마륨 등 이미 통제 중이던 7종을 포함한 광물과 그 합금, 산화물까지 포괄했다. 희토류 채굴, 제련, 분리, 재활용과 관련된 모든 기술 역시 중국 당국의 허가 없이는 수출할 수 없게 됐다.
가장 주목할 만한 변화는 '역외 적용' 조항의 도입이다. 새 규정은 해외에서 중국산 희토류와 관련 기술을 이용해 생산하는 제품까지 규제 범위에 포함시켰다. 중국산 희토류가 0.1% 이상 포함되거나 중국 기술이 적용된 경우, 해당 제품을 수출하려면 중국 정부의 군용·민간용 이중용도 수출 허가증을 받아야 한다. 이는 첨단 기술 분야에서 미국의 대중국 제재 방식인 '해외직접생산품규칙(FDPR)'을 그대로 차용한 것으로, 중국이 미국의 전략을 학습하고 역으로 적용하기 시작했음을 보여준다.
중국 정부는 일부 해외 기관과 개인이 중국산 희토류를 군사적 목적 등 민감 분야에 사용해 중국의 국가 안보에 잠재적 위협을 끼치고 있다는 판단에 따른 조치라고 설명했다. 또한 희토류 관련 품목이 군용과 민간용 이중용도 성격을 가지고 있어 수출 통제는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방식이라며 법규에 근거한 정상적인 행위임을 강조했다.
트럼프의 초강경 대응
중국의 조치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분노 버튼'을 눌렀다.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의 조치를 "놀라운 일", "본 적 없는 조치"라며 강한 실망감을 표출하고, "갑작스러운 무역 적대행위"이자 "전 세계를 인질로 잡는 것"이라며 전례 없이 강도 높은 비난을 쏟아냈다.
워싱턴은 즉각 초강경 맞불 카드를 꺼냈다. 트럼프 대통령은 11월 1일부터 모든 중국산 제품에 대해 기존 관세에 더해 100%의 추가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위협했다. 현재 미국의 대중국 평균 관세율이 약 55% 수준임을 감안하면, 이는 실효 관세율을 155%에 가까운 초고율로 끌어올리는 조치다. 블룸버그 이코노믹스는 이러한 수준의 관세가 단순히 비용을 높이는 것을 넘어 사실상 무역 흐름 자체를 차단하는 효과를 낳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관세 폭탄과 더불어 트럼프 행정부는 "모든 핵심 소프트웨어(any and all critical software)"의 대중국 수출을 통제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이 조치는 반도체 설계, 인공지능, 산업 자동화 등 중국의 기술 발전에 필수적인 소프트웨어 전반을 겨냥할 수 있다는 점에서 그 파급력이 엄청날 것으로 예상된다.
이러한 초강경 대응은 즉각적으로 글로벌 금융 시장에 충격을 줬다. 미중 무역전쟁 재점화에 대한 우려가 확산되면서 뉴욕 증시는 급락했고, 미국 주식 시장은 6개월 만에 최악의 매도세를 겪으며 하루 만에 막대한 시가총액이 증발했다. 콩, 밀, 구리 등 원자재 가격도 일제히 하락했다.
중국의 정교한 이중 전략
중국 상무부는 10월 12일 "싸움을 원치 않지만 두려워하지도 않는다"는 공식 입장을 발표했다. 중국은 미국의 행동을 '전형적인 이중 잣대'와 '수출 통제 남용'으로 규정했다. 중국의 희토류 통제가 자국의 법규에 따라 수출 통제 체계를 완비하는 '정상적인 행위'인 반면, 미국의 고율 관세 위협과 광범위한 기술 통제는 '중국과 공존하는 올바른 길이 아니'라고 비판했다.
특히 중국은 9월 마드리드 회담 이후 불과 20여일 만에 미국이 다수의 중국 기업을 수출 통제 리스트와 특별지정제재대상에 추가하고, 통제 기업의 자회사까지 제재 범위를 확대해 수천 개의 중국 기업에 영향을 미쳤다는 점을 집중적으로 부각했다.
중국 상무부는 미국의 상무부 통제 리스트에는 3,000개가 넘는 품목이 포함되어 있지만 중국의 통제 리스트에는 900여 개에 불과하다고 구체적인 수치를 제시하며, 양적으로 미국이 훨씬 더 광범위한 수출 통제를 시행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중국은 위협과 함께 항상 '외교적 퇴로'를 제시했다. "만약 미국이 고집대로 잘못된 길을 간다면 중국 또한 단호히 상응 조치를 취해 자신의 정당한 권익을 수호할 것"이라고 경고하면서도, 미국이 "조속히 잘못된 처사를 바로잡고, 양국 정상이 통화에서 한 합의를 가이드로 삼아 어렵게 온 협상 성과를 지켜야 한다"고 촉구했다. 또한 "대화를 통해 각자의 우려를 해결하고 분쟁을 관리하자"며 협상의 문이 열려 있음을 분명히 했다.
글로벌 공급망 마비 우려
미중 충돌의 파장은 양국을 넘어 전 세계로 확산되고 있다. 특히 반도체 공급망에 직접적인 위협이 가해지고 있다. 세계 유일의 EUV 노광장비 생산 업체인 네덜란드의 ASML은 장비 생산에 중국산 희토류를 사용하기 때문에 중국의 수출 허가가 지연될 경우 장비 출하에 차질을 빚을 수 있다. 이는 삼성전자, SK하이닉스, TSMC 등 모든 최첨단 반도체 제조사들의 생산 계획에 연쇄적인 타격을 줄 수 있다.
중국은 14나노미터 이하 시스템 반도체나 256단 이상 메모리 반도체 등 첨단 반도체 제조 및 장비에 사용되는 희토류 수출 신청을 개별 심사하겠다고 명시했다. 업계 관계자들은 아주 작은 부품이라도 중국산 희토류가 포함되어 있다면 수출 허가 지연으로 생산 라인 가동률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미국의 국방 산업도 타격을 받을 전망이다. F-35 스텔스 전투기의 전기 모터, 토마호크 미사일의 유도 시스템, 이지스함의 레이더 등 핵심 무기체계는 희토류 영구자석 없이는 생산이 불가능하다. 과거에도 중국의 희토류 통제로 록히드 마틴의 F-35 생산이 중단된 사례가 있었다. 채텀 하우스는 중국의 희토류 통제가 장기적으로 미국의 군사적 우위를 심각하게 훼손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한국의 고민 깊어져
한국은 이번 미중 갈등에서 가장 어려운 처지에 놓인 국가 중 하나다. 한국은 희토류 금속 수입의 약 80%, 희토류 화합물 수입의 약 48%를 중국에 의존하고 있으며, 반도체 6대 핵심 원재료 중 실리콘, 텅스텐 등 5개 품목의 대중국 의존도가 매우 높다. 중국이 희토류 공급을 무기화할 경우 한국의 주력 산업인 반도체와 배터리 생산은 그 기반부터 흔들릴 수 있다.
동시에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중국 시안과 우시 등에서 대규모 반도체 공장을 운영하고 있는데, 이 공장들은 미국의 대중국 반도체 장비 수출 통제 조치의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다. 미국 정부는 이들 공장에 대해 '검증된 최종 사용자(VEU)' 지위를 부여해 한시적으로 장비 반입을 허용해왔지만 이 허가의 연장 여부는 불투명한 상황이다. 미국이 중국과의 희토류 협상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한 카드로 한국 기업들의 VEU 지정을 활용할 수 있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예측 불가능한 미래
전문가들은 미국이 100% 추가 관세를 실제로 부과할 경우 예상되는 무역 단절과 같은 최악의 시나리오는 양측 모두에게 엄청난 비용을 초래하기에 실현 가능성이 높지는 않다고 보고 있다. 그러나 기술 패권을 둘러싼 양국의 근본적인 경쟁은 일시적인 봉합이나 타협으로 해결될 수 없는 구조적이고 장기적인 문제다.
중국은 과거 6월 런던 회담에서 희토류 수출 통제를 6개월간 유예하는 대가로 미국으로부터 엔비디아의 H20 AI 칩에 대한 수출 제한 조치를 해제하는 양보를 얻어낸 바 있다. 이번에도 희토류 접근성을 보장하는 대가로 미국의 반도체 및 첨단 기술 제재 완화를 얻어내려는 시도를 할 것으로 보인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는 "글로벌 칩 경쟁에서 중국의 핵심 광물 대응이 수세에서 공세로 전환되고 있다"고 평가했다. 중국은 전 세계 희토류 채굴의 약 70%, 가공 및 정제 단계에서는 90% 이상을 장악하고 있다. 이 희토류는 미국의 군사적·경제적 패권을 지탱하는 거의 모든 핵심 산업에 필수불가결한 요소다.
현재의 위기는 더 깊은 갈등의 한 단면에 불과하다. 앞으로 양국 간에 긴장 완화 국면이 오더라도 그것은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이 아닌 더 큰 충돌을 앞둔 일시적인 휴전일 가능성이 크다. 국제 사회는 이제 미중 간의 지속적인 지정경제적 마찰과 전략적 불확실성이 상수가 된 새로운 시대에 적응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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