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아연 온산제련소 내부 아연 제품이 적재된 모습/사진=고려아연
고려아연(Korea Zinc)이 미국 국방부와 손잡고 추진하는 74억 달러(약 10조 9천억 원) 규모의 테네시주 제련소 건설이 대주주 간 경영권 분쟁으로 좌초 위기에 놓였다. 최대주주인 영풍과 MBK파트너스(MBK Partners) 연합은 이번 사업이 최윤범 회장의 경영권 방어를 위한 편법이며, 회사를 담보로 한 위험천만한 도박이라고 강력 반발하고 있다.
영풍·MBK 연합은 16일 서울중앙지방법원에 신주발행금지 가처분 신청을 제기했다. 이들은 "경영권 분쟁 상황에서 제3자에게 신주를 배정하는 것은 기존 주주의 지분 가치를 부당하게 희석시키는 행위"라며 "대법원 판례상 무효"라고 주장했다. 특히 고려아연이 이미 충분한 유동성을 보유하고 있어 긴급한 자금 조달의 필요성이 없다는 점을 강조했다.
가장 큰 쟁점은 고려아연이 미국 현지 법인의 차입금 전액에 대해 제공하는 8조 4천억 원 규모의 채무보증이다. 이는 고려아연 연결 자기자본 7조 6천억 원의 110%에 달하는 과도한 수준이다. 영풍·MBK 측은 "통상적인 프로젝트 파이낸싱은 모기업의 상환 의무를 제한하는데, 고려아연 본사가 모든 위험을 떠안는 구조"라고 비판했다.
더욱이 미국 국방부가 요구한 보증 조건은 보증 비율 128%, 만기 15년으로 일반 민간 은행보다 훨씬 가혹한 것으로 알려졌다. 영풍·MBK 연합은 "팍스 실리카 동맹의 비용과 리스크를 한국 기업에 전가하는 것"이라며 "사업 실패 시 고려아연 본사의 존립마저 위협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들은 또한 신주 배정 대상인 '크루시블 JV(Crucible JV LLC)'가 사실상 최윤범 회장의 '백기사(White Knight)' 역할을 하도록 설계됐다고 주장한다. 미국 국방부가 크루시블 JV의 지분 약 40%를 보유한 최대 주주가 되지만, 실제로는 최 회장 우호 세력에게 지분을 넘겨 의결권을 확보하려는 의도라는 것이다. 현재 최윤범 회장 측은 약 30% 초반, MBK 연합은 약 44%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어, 크루시블 JV가 확보하는 10% 지분이 경영권의 캐스팅 보트가 될 수 있다.
절차적 정당성도 문제로 제기됐다. 영풍 측은 "최대주주인 영풍 측 이사들이 이사회 논의 과정에서 철저히 배제됐다"며 "11조 원 규모의 초대형 프로젝트가 이사회에서 졸속으로 통과됐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최 회장이 미국 정부라는 명분을 내세워 경영권 방어 목적의 제3자 배정을 정당화하려 한다고 비판했다.
고려아연은 11일 미국 국무부가 개최한 '팍스 실리카(Pax Silica) 정상회의'를 계기로 이번 프로젝트를 발표했다. 팍스 실리카는 반도체와 핵심 광물의 안정적 공급망 구축을 위한 미국 주도의 경제 안보 독트린으로, 한국을 포함한 8개국이 참여한다. 고려아연은 테네시주 클락스빌(Clarksville)에 2029년까지 아연, 안티모니(Antimony), 게르마늄(Germanium) 등 13종의 핵심 광물을 생산하는 제련소를 건설할 예정이다.
자금 조달 구조는 자기자본 19억 4천만 달러, 차입금 47억 달러, 보조금 2억 1천만 달러로 구성된다. 고려아연은 전체 주식의 약 10%에 해당하는 신주를 발행해 미국 정부와 전략적 투자자들이 참여하는 크루시블 JV에 배정한다. 미국 상무부는 칩스법(CHIPS and Science Act)에 근거해 2억 1천만 달러의 직접 보조금을 지급한다.
고려아연 측은 "미국 정부와의 합작은 국가 안보 차원의 불가피한 선택"이라며 "기업가치가 22조 원일 때 정상 가격으로 권리를 행사하는 약정으로, 헐값 매각이 아니다"고 반박했다. 또한 "크루시블 JV의 의결권 행사는 독립적으로 이루어질 것"이라고 해명했다. 고려아연은 록히드마틴(Lockheed Martin) 등 미국 방산 기업들과 핵심 광물 우선 공급 양해각서(MOU)를 체결한 상태다.
법원의 가처분 결정이 이번 분쟁의 향방을 가를 전망이다. 만약 가처분이 인용되면 유상증자가 막히면서 테네시 프로젝트의 자금 조달 계획이 전면 수정될 수밖에 없다. 반대로 기각되면 최윤범 회장 측이 경영권 방어에 결정적 우위를 점하게 된다. 미국 정부가 직접 챙기는 프로젝트를 한국 법원이 어떻게 판단할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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