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독 시민단체 코리아협의회는 베를린 미테구청이 17일 오전 7시(현지시간) 전문업체를 동원해 관내 공공부지에 있던 소녀상을 들어내 옮겼다고 밝혔다. 베를린 평화의 소녀상이 철거된 부지. /코리아협의회 제공


독일 베를린시 미테구청이 17일 오전 7시경(현지시간) 관내 모아비트(Moabit) 지역 공공부지에 설치돼 있던 '평화의 소녀상'을 전문 업체를 동원해 강제 철거했다. 2020년 9월 설치된 지 5년 1개월 만이다.

이번 철거는 일본군 성노예 피해자를 기리는 동상을 둘러싼 5년간의 외교적·법적 공방이 독일 지방 행정부의 최종 집행으로 막을 내린 것으로, 일본 정부의 지속적인 외교 압박이 결실을 본 사례로 평가된다.

유럽 최초 공공부지 소녀상, 설치 직후부터 논란

재독 시민단체인 코리아협의회(Korea Verband e.V.)는 2020년 9월 미테구청으로부터 1년 기한의 허가를 받아 이 소녀상을 설치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군 성노예 피해자들을 기리고 전시 성폭력 및 여성 인권 침해에 반대하는 메시지를 담은 이 동상은 유럽 내 주요 도시 공공부지에 세워진 최초의 평화의 소녀상으로 큰 주목을 받았다.

그러나 설치 직후인 2020년 10월, 일본 정부가 독일 연방정부와 베를린 주정부에 강력히 항의하면서 갈등이 시작됐다. 일본 정부는 동상의 비문에 담긴 '성노예' 등의 표현이 "일방적인(one-sided)" 시각을 반영하며 한일 관계 및 독일-일본 관계에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고 주장했다.

법원 가처분으로 5년간 존치, 올해 판결 뒤집혀

미테구청은 일본의 압력을 받아 2020년 10월 14일까지 철거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이에 코리아협의회가 법원에 철거명령 효력정지 가처분을 신청했고, 독일 예술가 단체(bbk) 등이 "예술과 표현의 자유 침해"라며 철거 반대 성명을 냈다. 법원이 가처분 신청을 인용하면서 철거는 무기한 보류됐다.

2021년부터 2023년까지 미테구 의회는 수차례 소녀상 영구 존치 결의안을 통과시켰으나, 구청 행정부는 이를 이행하지 않고 '용인(tolerated)' 상태로 유지했다.

지난해 5월에는 카이 베그너(Kai Wegner) 베를린 시장이 일본 방문 중 소녀상을 "일방적"이라고 비판하며 "해결책을 찾겠다"고 발언해 논란을 재점화시켰다. 베그너 시장은 기민당(CDU) 소속이다.

"2년 규정 위반" vs "표현의 자유", 법적 공방 끝에 철거

올해 9월 미테구청은 "임시 예술 작품의 최장 설치 기간은 2년"이라는 규정을 근거로 코리아협의회에 10월 7일 또는 14일까지 철거하라는 최종 명령을 내렸다. 코리아협의회가 이에 불복해 다시 가처분 신청을 냈으나, 이번에는 베를린 행정법원이 이를 기각했다.

법원은 "다른 예술가들에게도 공공 도로를 이용할 기회를 보장해야 한다"며 미테구청의 철거 명령이 "정당하다(justifiable)"고 판결했다. 이 판결이 나온 지 불과 며칠 만에 강제 철거가 집행됐다.

코리아협의회는 소녀상이 전시 성폭력이라는 보편적 인권 문제를 다루고 있어 반드시 공공 영역에 존재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협의회 측은 사유지로 이전할 경우 집회와 시위의 자유가 제한되고 동상의 정치적·예술적 효과가 약화된다는 입장이다.

독일 시민사회 반발 속 외교적 파장 주목

이번 철거는 '표현의 자유'와 '역사적 기억'이라는 가치보다 '행정 절차'와 '외교 관계'를 우선시한 결정이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일본 정부의 5년간에 걸친 집요한 외교적 압박이 결국 독일 지방 행정에 영향을 미친 사례로 분석된다.

코리아협의회는 법적 대응을 예고한 바 있어, 철거 이후에도 법적·외교적 갈등은 지속될 전망이다. 독일 내 시민사회와 예술계의 반응, 그리고 이번 사태가 한일 관계 및 독일의 과거사 인식에 미칠 영향이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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