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산에너빌리티 풍력 터빈/홈페이지 캡춰


두산에너빌리티가 풍력 사업을 독립된 사업 그룹(BG)으로 승격하고 본격적인 글로벌 시장 공략에 나섰다. 이번 조직 개편은 단순한 사내 구조 조정을 넘어, 한국 풍력 산업이 기술 종속에서 벗어나 자립적 생태계를 구축했다는 상징적 의미를 담고 있다.

두산에너빌리티는 12월 조직 개편을 통해 기존 파워서비스 BG 산하 사업부(BU)였던 풍력 부문을 독립 BG로 격상했다. 신임 풍력 BG장에는 송용진 전략·혁신부문 사장이 선임됐다. 송 사장은 발전설비 핵심 부품 개발과 소재 혁신 공로로 과학기술정보통신부로부터 과학기술 포장을 수상한 바 있다.

이번 개편의 핵심은 의사결정 체계의 독립성 확보다. 독립 BG 체제로 전환하면서 예산 집행과 인력 운용에 독자적 권한을 갖게 됐다. 회사는 풍력 사업에서 연 수주 1조 원 이상이라는 구체적 목표를 제시했다. 올해 1분기 재생에너지 수주액이 0.1조 원 수준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매우 공격적인 목표다.

두산에너빌리티의 이 같은 결단은 10MW급 해상풍력 터빈 독자 개발 성공에 기반한다. 7월 국제 형식인증을 취득한 DS205-10MW 모델은 로터 직경 205m로 한국 서남해안의 저풍속 환경에 최적화됐다. 평균 풍속 초속 6.5m에서도 이용률 30% 이상을 달성할 수 있도록 설계된 것이 특징이다.

특히 주목할 점은 부품 국산화율이다. 두산은 2005년 풍력 사업 시작 당시 30% 수준이었던 국산화율을 현재 70%까지 끌어올렸다. 블레이드, 타워, 발전기 등 핵심 부품을 국내 150여 개 협력사와 공동 개발하며 공급망 안보를 확보한 것이다. 이는 최근 팬데믹과 지정학적 갈등으로 부각된 공급망 리스크를 자체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역량을 갖췄음을 의미한다.

두산은 6월 부산 벡스코에서 열린 해상풍력 공급망 컨퍼런스에서 산일전기, 삼일씨엔에스, 신라정밀, 휴먼컴퍼지트 등 9개 주요 협력사와 상생협약을 체결했다. 협약에는 기술 공동 개발, 해외 시장 동반 진출, 금융 지원 등이 포함됐다. 대기업이 중소기업을 단순 하청업체로 대하는 것이 아니라, 운명 공동체로서 함께 성장하는 모델을 제시한 것이다.

해외 시장에서는 베트남을 전진 기지로 삼고 있다. 두산의 베트남 법인인 두산비나(Doosan Vina)는 일본 종합상사 마루베니(Marubeni), 덴마크 오스테드(Ørsted)와 각각 해상풍력 개발 및 하부구조물 공급 협약을 체결했다. 베트남은 2050년까지 70~91.5GW의 해상풍력을 설치하겠다는 목표를 가지고 있어, 한국 기술력과 베트남 생산력을 결합한 상생 모델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국제 인증기간 UL로부터 국내 최초로 형식인증을 취득한 두산에너빌리티 10MW 해상풍력발전기/두산에너빌리티 자료


국내에서는 제도적 뒷받침도 마련됐다. 2월 국회를 통과한 해상풍력 특별법은 인허가 기간을 기존 5~6년에서 2~3년으로 단축하는 계획 입지 제도를 도입했다. 제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은 2038년까지 재생에너지 설비 용량을 157.8GW까지 확충하겠다는 목표를 담았다. 국산 기자재 사용에 따른 신재생에너지 공급인증서(REC) 가중치 차등 부여 방안도 추진 중이다.

주민 참여형 이익 공유 모델도 주목받고 있다. 두산이 참여한 제주 한림 해상풍력(100MW) 프로젝트에서는 인근 수원리 주민들이 약 200억 원 규모의 지분 투자로 조합원이 됐다. 주민들은 발전 수익을 배당받는다. 에너지가 소수 자본의 전유물이 아니라 지역 공동체의 자산이 되는 에너지 민주주의의 실현이다.

서남해 해상풍력 실증단지에서는 풍력 하부구조물이 인공어초 역할을 하며 수산 자원을 증대시키는 효과도 확인됐다. 미역, 굴 양식장과 풍력 단지를 복합 운영하는 방식은 어민 생존권을 보장하면서 재생에너지가 환경 복원의 수단이 될 수 있음을 입증했다.

두산은 영국 신재생에너지 전문 연구기관 OREC(Offshore Renewable Energy Catapult)와 협업하며 기술 고도화에도 나섰다. 울산 반딧불이 부유식 해상풍력 프로젝트(750MW)에서는 지멘스 가메사(Siemens Gamesa)의 15MW급 터빈 나셀을 창원 공장에서 조립 공급하는 협약을 맺었다. 경쟁사와 협력하며 초대형 및 부유식 풍력 기술을 습득하는 전략이다.

글로벌 경쟁 환경도 변화하고 있다. 미국 트럼프 행정부의 청정에너지 세액 공제 축소 움직임과 중국산 기자재 제재 강화는 위기이자 기회다. 유럽연합의 탄소국경조정제도(CBAM)가 내년부터 본격 시행되면서, 한국 수출 기업들은 재생에너지 사용이 필수가 됐다. 두산의 대규모 해상풍력 단지는 국내 제조업에 청정 전력을 공급하는 에너지 안보 방패 역할을 하게 된다.

송용진 사장은 기술적 전문성과 경영 전략적 통찰을 겸비한 인물로 평가받는다. 그는 연구개발 단계의 기술적 난제와 시장 진입 단계의 전략적 장벽을 모두 이해하고 있으며, 10MW급 터빈 개발 과정에서 전략적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향후 15MW급 이상 초대형 터빈 개발과 부유식 해상풍력 기술 고도화를 이끌 적임자로 꼽힌다.

두산에너빌리티의 풍력 BG 신설은 기술 주권 확립, 산업 생태계 완성, 글로벌 에너지 안보 기여라는 세 축을 완성하기 위한 전략적 결단이다. 한국 풍력 산업이 내수 시장을 넘어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수출 산업으로 도약하는 분기점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두산에너빌리티 #해상풍력 #에너지전환 #공급망안보 #에너지민주주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