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과에 나선 핀란드 페테리 오르포(Petteri Orpo) 총리/사진=헬싱키 타임스
핀란드 페테리 오르포(Petteri Orpo) 총리가 집권 연립정부 소속 의원들의 인종차별 논란과 관련해 한국, 중국, 일본에 이례적으로 직접 사과했다. 17일(현지시간) 오르포 총리는 한국, 중국, 일본 주재 핀란드 대사관의 공식 소셜미디어 계정을 통해 각국 언어로 번역된 사과문을 게시했다.
이번 사태는 지난 11월 말 미스 핀란드 사라 자프체(Sarah Dzafce·22)가 소셜미디어에 눈꼬리를 위로 치켜올리는 제스처를 취한 사진을 "중국인과 식사 중(Kiinalaisen kaa syömäs)"이라는 캡션과 함께 게시하면서 촉발됐다. 미스 핀란드 조직위원회는 12월 8일 "평등과 포용이라는 가치에 위배된다"며 그녀의 타이틀을 박탈했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오르포 연립정부의 파트너인 극우 성향의 핀란드인당(Finns Party) 소속 의원들이 자프체를 옹호하며 유사한 제스처의 사진을 잇따라 게시했다. 유호 에롤라(Juho Eerola) 국회의원은 눈을 찢는 사진을 올렸다가 삭제 후 "불쾌감을 줬다면 사과한다"고 밝혔으나, 카이사 가레데브(Kaisa Garedew) 의원은 "사과할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며 거부 의사를 표명했다.
주한 핀란드 대사관은 인스타그램을 통해 한국어로 "일부 국회의원의 SNS 게시글로 인해 불쾌감을 드린 점에 대해 진심으로 사과드린다"며 "해당 게시글은 평등과 포용이라는 핀란드의 가치에 어긋난다"고 밝혔다. 일본에서는 미노루 키하라(Minoru Kihara) 관방장관이 핀란드 대사관을 통해 "이번 사건에 대한 우려와 적절한 대응에 대한 기대"를 공식 전달했다.
이번 논란은 경제적 파장으로도 이어지고 있다. 핀란드 국영 항공사 핀에어(Finnair)의 파이비트 탈키비스트(Päivyt Tallqvist) 커뮤니케이션 수석 부사장은 국영 방송 Yle 인터뷰에서 "이번 스캔들이 회사의 국제 운영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다"고 인정했다. 소셜미디어에서는 한국, 중국, 일본 네티즌들의 핀란드 여행 및 핀에어 탑승 거부 운동이 확산되고 있다.
핀란드 미디어 제작사 ICS 노르딕의 일카 하이니넨(Ilkka Hynninen)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는 일본 파트너사와의 신규 협력 프로젝트가 무기한 보류됐다고 밝혔다. 그는 "일본 파트너들과 지금은 협력할 적기가 아니라는 데 동의했다"고 말했다.
핀란드인당은 12월 18일 의원총회에서 해당 의원들에게 견책 조치를 내렸으나, 이는 정식 징계나 출당이 아닌 구두 경고 수준에 그쳤다. 야니 매켈래(Jani Mäkelä) 원내대표는 "문제의 사진들이 게시되지 말았어야 했다"면서도 이를 "부적절하지만 고의적이지 않은 실수"로 규정하며 인종차별 혐의를 전면 부인했다.
오르포 정부는 2023년 출범 직후에도 인종차별 스캔들로 불신임 투표를 겪은 바 있다. 당시 핀란드인당의 리카 푸라(Riikka Purra) 재무장관은 과거 블로그의 인종차별적 게시물로, 빌헬름 준닐라(Vilhelm Junnila) 전 경제장관은 나치 관련 농담으로 사임했다. 이번 사태는 연립정부의 구조적 취약성을 다시 드러낸 것으로 평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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