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연방대법원 전경/홈페이지 자료


미국 연방대법원이 9일(현지시간)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국제비상경제권한법(IEEPA) 기반 관세 정책에 대한 판결을 연기했다. 이는 단순한 사법 절차의 지연이 아니라, 세계 무역 질서와 민주주의 원칙, 그리고 한국 외교의 향방을 가르는 중대한 분수령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해 4월 2일 행정명령 14257호를 통해 “만성적 무역 적자는 국가 안보 위협”이라 선언하며 전 세계 수입품에 10%의 보편 관세와 상호관세를 부과했다. 그러나 이는 의회의 고유 권한인 조세권을 침해한다는 비판을 불러왔다. 미국 국제무역법원(CIT)은 “IEEPA는 관세 부과 권한을 포함하지 않는다”고 판결했으며, 대법원 구두 변론에서도 다수의 대법관들이 행정부 논리에 회의적 반응을 보였다.

이번 판결 연기는 미국 민주주의의 근본적 위기를 드러낸다. 헌법 제1조가 명시한 ‘대표 없는 과세는 없다’는 원칙이 흔들리고 있다. 의회가 정치적 부담을 피하기 위해 포괄적 위임 입법을 남발한 결과, 대통령은 언제든 ‘비상사태’를 선포해 무제한적 과세 권한을 행사할 수 있는 상황에 이르렀다. 이는 권력 분립의 붕괴를 의미하며, 대법원의 판결은 단순히 트럼프 개인의 정책을 넘어 미국 민주주의의 복원 여부를 가늠하는 시험대다.

경제적 측면에서 관세는 미국 소비자와 노동자에게 직접적인 부담을 안겼다. 세인트루이스 연방준비은행은 관세가 개인소비지출(PCE) 인플레이션을 연율 기준 0.5%포인트 상승시켰다고 분석했다. 예일대 연구소는 미국 가구당 평균 3,800달러의 추가 비용이 발생했다고 추산했다. 이는 관세가 외국 기업이 아닌 미국 서민의 주머니에서 나온 ‘숨은 세금’임을 보여준다.

한국은 지난해 미국과 3,500억 달러 규모의 투자 딜을 체결하며 관세 압박을 피했다. 그러나 대법원이 관세를 무효화할 경우, 이 투자 약속은 ‘승자의 저주’로 변할 수 있다. 관세가 사라지면 15% 우대 세율의 의미는 사라지고, 한국은 막대한 투자 부담만 떠안게 된다. 빅터 차 미국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석좌는 “법원 판결로 관세가 0%가 되더라도 한국의 투자 약속은 유효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는 한국 외교가 직면한 딜레마를 잘 보여준다.

자연주의적 관점에서 관세는 공급망을 왜곡시켜 환경 비용을 증가시켰다. 기업들은 관세를 회피하기 위해 우회 수출 경로를 택했고, 이는 운송 거리와 탄소 배출을 늘렸다. 시에라 클럽은 “관세가 청정 에너지 제품을 막고 환경 규제가 느슨한 국가로 공장을 이전하게 만들었다”고 비판했다. 보호무역주의가 지구 환경에 돌이킬 수 없는 부채를 쌓고 있는 것이다.

한국 외교는 이제 냉철한 선택을 해야 한다. 미국의 압박에 수동적으로 대응하는 거래적 접근을 넘어, 국제법과 자유무역 규범을 지키는 원칙 기반 접근이 필요하다. 대법원 판결이 어느 방향으로 나든, 한국은 이를 협상력 강화의 기회로 삼아야 한다. 투자 약속의 재조정과 새로운 국익 확보 전략을 마련하는 것이 지금 가장 시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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