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전산망 마비/AI생성 및 편집


국가정보자원관리원에서 발생한 리튬배터리 화재로 정부 업무시스템 647개가 일제히 중단되면서 대한민국이 사실상의 디지털 블랙아웃 상태에 빠졌다. 정부는 27일 위기경보를 최고 단계인 '심각'으로 격상하고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를 가동했지만, 완전 복구까지는 상당한 시일이 걸릴 것으로 전망된다.

26일 오후 8시 15분경 대전광역시 유성구 화암동 국가정보자원관리원 대전 본원 5층 전산실에서 리튬이온 배터리 폭발로 인한 화재가 발생했다. 현장에서 배터리 전원 차단 작업을 수행하던 40대 도급업체 직원 1명이 얼굴과 팔에 1도 화상을 입었으며, 사무실 직원 약 100명이 긴급 대피했다.

화재는 무정전 전원 장치(UPS)에 전력을 공급하는 LG에너지솔루션 제조 192개 배터리 팩에서 시작됐다. 리튬이온 배터리의 '열 폭주' 현상으로 소방당국은 진화에 극심한 어려움을 겪었으며, 27일 오전 6시 30분이 돼서야 10시간여 만에 초진에 성공했다.

화재 진압 과정에서 물을 대량 사용할 경우 인접 서버 장비에 치명적 손상을 입힐 수 있어 소방관들은 제한적인 양의 물로 냉각하는 방식을 택할 수밖에 없었다. 불길과 핵심 서버 랙 사이 거리는 불과 60cm에 불과했다.

정부는 당초 '정부24', '국민신문고' 등 약 70개 서비스 장애가 발생했다고 발표했으나, 항온항습기 기능 고장으로 서버 과열 위험이 제기되자 추가 하드웨어 손상을 막기 위해 대전 본원 모든 시스템을 선제적으로 차단했다. 이로 인해 장애 시스템은 647개로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화재가 발생한 배터리는 2022년 SK C&C 판교 데이터센터 리튬배터리 화재로 카카오 서비스가 마비된 교훈을 반영해 서버와 분리하기 위한 이전 작업 중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과거 재난의 교훈을 실행하는 과정에서 더 큰 재앙이 발생한 것이다.

행정안전부는 26일 밤 10시경 재난 위기경보를 '경계' 단계로 발령했으나, 사태 심각성이 확인되자 27일 오전 8시 '심각' 단계로 격상하고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로 대응 체계를 전환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도 자체 위기경보를 '심각'으로 상향했다.

이는 2023년 개정된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이 '정보시스템 장애'를 '사회재난'으로 규정한 이후 중대본이 가동된 최초 사례다.

김민석 국무총리는 중대본 회의를 직접 주재하며 대국민 사과와 함께 △우체국 금융·우편 등 국민 파급효과가 큰 서비스 우선 복구 △투명하고 신속한 대국민 소통 △세금 납부 및 서류 제출 기한 연장 △각 부처별 비상 계획 수립 등을 지시했다.

시스템 마비로 인한 피해는 전방위적으로 확산됐다. 우체국 예금·이체·카드 결제 등 모든 금융서비스가 동결되면서 민생회복 소비쿠폰을 우체국 카드로 지급받은 시민들의 결제가 불가능해졌다. 현금자동입출금기(ATM) 이용도 중단됐다.

추석 명절을 앞둔 배송 성수기에 인터넷 우체국 시스템이 멈추면서 '물류 대란'이 현실화했다. 공공 조달을 총괄하는 '나라장터' 시스템 마비로 새로운 입찰 공고와 계약 체결이 불가능해져 공공 부문 경제가 사실상 정지됐다.

119 긴급신고 시스템은 전화 신고는 가능했지만 문자나 영상을 통한 신고 접수가 불가능해져 청각 장애인 등 사회적 약자의 안전에 공백이 발생했다. 전국 화장장 예약 시스템인 'e하늘 장사정보시스템'까지 마비돼 유가족들이 장례 절차를 진행하는 데 큰 불편을 겪었다.

모바일 신분증 서비스 중단으로 공항 신원 확인이 불가능해졌고, 금융기관 비대면 본인 인증 절차가 막혔다. 국가정보자원관리원의 신원 확인 시스템 마비로 시중 은행들은 비대면 계좌 개설이나 인증서 발급에 필요한 주민등록증 진위 확인 서비스를 제공할 수 없게 됐다.

다자녀 가구나 국가유공자의 철도·버스 할인 혜택 신규 신청이 불가능해지는 등 교통 약자의 이동권도 제약됐다. 차량 등록, 건축 인허가, 복지 서비스 신청과 같은 주요 행정 절차들이 기약 없이 중단됐다.

정부는 국민들에게 행정기관 방문 전 수기 업무 가능 여부를 전화로 확인하라고 안내했지만, 이는 디지털 시대에 아날로그 방식으로 회귀하라는 요구에 가까웠다.

이번 사태는 대한민국의 반복되는 실패 패턴을 드러냈다. 2022년 SK C&C 판교 데이터센터 화재로 카카오 서비스가 마비된 데 이어, 2023년에는 네트워크 장비 포트 불량으로 '정부24'와 공무원 내부 행정 시스템인 '새올'이 수십 시간 마비됐다.

정부는 카카오 사태 후 '카카오 먹통 방지법'을 통과시키고, 2023년 행정망 마비 후에는 정보시스템 장애를 '사회재난'으로 규정하며 1등급 시스템은 2시간, 2등급은 3시간 내 복구하는 서비스 수준 협약(SLA) 표준안을 마련했지만, 이번 사태로 이러한 정책적 노력이 현실 문제 해결에 실패했음이 드러났다.

최근 5년간 대한민국에서 발생한 리튬이온 배터리 관련 화재는 2,400건이 넘으며, 재산 피해액만 1,343억 원에 달한다. 리튬이온 배터리가 언제든 터질 수 있는 '시한폭탄' 같다는 경고가 이미 존재했음에도 근본적 대책 마련에는 실패한 것으로 보인다.

대한민국은 OECD 디지털 정부 평가 1위, UN 전자정부 평가 7회 연속 3위를 기록하며 'K-디지털' 모델의 우수성을 자랑해왔다. 그러나 2023년 행정망 마비로 "세계 최고 수준의 디지털 정부가 동네 구멍가게만도 못하게 된 것이 언제부터인가?"라는 비판을 받은 데 이어, 이번 사태로 디지털 강국 명성에 치명타를 입게 됐다.

복구 작업은 난항을 겪고 있다. 정부는 우체국 금융·우편 서비스 등 국민 생활 직결 서비스부터 단계적으로 정상화한다는 방침이지만, 완전 복구까지는 "상당한 시일"이 걸릴 것으로 전망된다고 밝혔다.

복구 첫 단계는 서버 재가동이 아니라 화재와 진화 작업으로 불안정해진 전산실 내부 온도와 습도를 제어하는 항온항습 시스템을 안정시키는 것이다. 이는 데이터센터 재난 복구가 얼마나 물리적 제약에 묶여 있는지를 보여준다.

정부는 임시방편으로 일부 서비스 이용 가능한 대체 사이트 목록을 배포했지만, 이들 사이트 역시 접속이 원활하지 않을 수 있다는 단서를 달았다.

이번 사태는 단순한 화재가 국가 차원의 디지털 마비로 이어질 수 있음을 보여주며, 중앙집중식 시스템의 취약성과 재난 복구 전략의 한계를 드러냈다. 전문가들은 단순 이중화를 넘어 진정한 분산 아키텍처로의 전환과 선제적 위험 관리 체계 구축이 필요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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