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현 외교부 장관/외교부 자료 캡춰


조현 외교부 장관이 26일 AP 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이재명 대통령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 한반도 평화 협상의 주도적인 '피스메이커(평화 중재자)' 역할을 요청했다고 밝혔다. 이는 과거 정부들이 추구했던 '한반도 운전자론'에서 벗어나 미국에 협상 주도권을 전적으로 위임하는 파격적인 외교 전략 전환을 의미한다.

조 장관은 "이 대통령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한반도 평화 협상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하는 피스메이커가 되어 달라고 요청했다"며 "이 대통령 자신은 전체적인 협상의 속도를 조율하고 지원하는 페이스메이커 역할에 만족하겠다는 의사를 전달했다"고 말했다.

이 구상은 지난 8월 한미정상회담에서 이 대통령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처음 제안했던 것으로, 이번 인터뷰를 통해 공식적으로 확인되었다. 조 장관은 이 대통령이 "스스로 '운전석'에 앉지 않겠다는 점을 트럼프 대통령에게 분명히 했다"고 거듭 강조했다.

그는 "우리는 (한국이 주도권을 잡지 못해도) 개의치 않는다. 오히려 트럼프 대통령이 그의 리더십을 발휘해 북한을 대화 테이블로 이끌어 주기를 원한다"고 말했다.

조 장관은 트럼프 대통령이 이 같은 요청에 대해 "환영했으며, 북한과 다시 대화에 나설 의향을 밝혔다"고 전했다. 다만 백악관의 즉각적인 공식 논평은 없었다.

우크라이나 사태를 대화 재개 명분으로 활용

조 장관은 이러한 정책 전환의 배경으로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전면 침공 이후 세계가 훨씬 더 불안정하고 예측 불가능해졌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한반도에서 발생할 수 있는 모든 군사적 충돌에 대해서도 똑같이 우려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인터뷰 당일인 26일 새벽 북한 상선 한 척이 서해 북방한계선(NLL)을 침범해 한국 군이 경고 사격을 가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조 장관은 이 사건에 대해 "전혀 놀랍지 않다"고 반응하며, "이번 사건이야말로 우리가 군 당국 간 핫라인을 만들고, 군사적 긴장을 줄이고, 서로 간의 신뢰를 구축해야 한다는 새 정부 정책의 필요성을 뒷받침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남북 군사 당국 간의 "최소한의 핫라인이라도 구축하기를 원한다"며 실용적인 긴장 완화 조치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트럼프-김정은 만남 환상적일 것"

조 장관은 북미 정상회담 재개에 대한 강한 기대감을 표명하며 "그들(트럼프와 김정은)이 가까운 미래에 만난다면 환상적일 것"이라고 말했다.

동시에 그는 대화를 강력히 주창하면서도 "한반도 비핵화는 필수적이며 포기할 수 없다"는 원칙을 분명히 했다. 이는 대화가 그 자체의 목적이 아니라 비핵화라는 장기적인 전략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필수적인 '수단'임을 강조한 것이다.

이번 인터뷰는 트럼프 대통령이 10월 30일부터 11월 1일까지 경주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한국을 방문할 예정이라는 배경 속에서 이뤄졌다. 언론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이 방한 기간 중 판문점에서 김정은 위원장을 다시 만날 수 있다는 관측이 제기되고 있다.

중국과는 협력-견제 병행 정책

조 장관은 중국과의 관계에 대해서는 매우 정교한 이중적 접근법을 선보였다. 그는 왕이 중국 외교부장과 "매우 건설적인 좋은 만남"을 가졌다고 언급하며 중국과의 관여 의지를 밝혔다.

하지만 동시에 중국이 서해에 설치한 구조물에 대해서는 "한국의 주권을 침해하는 것"이라고 규정하며 단호한 입장을 취했다. 그는 "그것이 제거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적절한 조치를 취하는 것을 고려할 것"이라고 명확히 밝혔다.

과거 정부와의 완전한 단절 선언

이재명 행정부는 윤석열 전 대통령이 2024년 12월 비상계엄 선포 시도 이후 탄핵됨에 따라 치러진 조기 선거를 통해 출범했다. 조 장관은 검사 출신이었던 윤석열 전 대통령이 당선되었을 때 "비정상이 될 것이라고 확신했다"는 매우 직설적인 발언을 했다.

조 장관은 취임사에서부터 과거 정부 하에서 외교가 "국내 정치적 목적으로 이용"되고 "흑백논리"로 접근되었다고 비판하며 대국민 사과를 한 바 있다. 그는 모든 외교 파트너들에게 새 정부가 "평화를 추구하기로 결심했다"는 점을 설명하는 것이 자신의 임무라고 밝혔다.

이재명 대통령도 앞서 UN 총회 연설에서 "국내적 혼란 이후 한국이 정상 국가로서 국제사회에 복귀했다"고 선언한 바 있다.

미국 내 한국인 근로자 문제도 논의

조 장관은 이번 뉴욕 방문 중 마르코 루비오 미 국무장관과 회담을 갖고 미국 조지아주 현대차 공장에서 발생한 대규모 이민 단속으로 한국인 근로자 475명이 구금된 사건을 논의했다. 그는 이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오랜 현안이었던 한국인 근로자들의 비자 문제를 본격적으로 논의하는 "실낱같은 희망"을 찾아냈다고 밝혔다.

조 장관은 또 장관 취임 후 일본을 방문하여 새 정부가 동북아의 평화를 추구할 결의를 가지고 있음을 설명했다고 말했다. 인터뷰와 같은 날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과도 회동했다.

이번 '피스메이커 구상'은 트럼프 대통령 개인의 외교 스타일과 성향에 맞춘 고위험 고수익 전략으로 평가된다. 북미 간의 신속한 대화 재개와 잠재적 돌파구를 마련할 기회를 제공하는 동시에, 협상 과정에서 한국의 영향력이 축소되고 국익에 반하는 합의가 도출될 수 있는 위험을 내포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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