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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미국이 각각의 최상위 안보 문서에서 '한반도 비핵화' 문구를 동시에 삭제하면서 1991년 이후 유지돼 온 한반도 비핵화 체제가 사실상 종언을 고하게 됐다. 중국 국무원이 지난달 27일 발표한 『신시대 중국의 군비 통제, 군축 및 비확산(China's Arms Control, Disarmament, and Nonproliferation in the New Era)』 백서와 미국이 5일 공개한 『2025 국가안보전략(National Security Strategy, NSS)』에서 한반도 비핵화 관련 표현이 모두 사라진 것이다.

중국의 군비통제 백서는 2005년 이후 19년 만에 발간된 것으로, 과거 2005년과 2017년 백서에서 명시했던 "한반도 비핵화를 지지한다"는 문구가 완전히 삭제됐다. 2005년 백서는 "관련 국가들이 한반도, 남아시아, 동남아시아, 중동 등에서 비핵 지대를 설립한다는 주장을 지지한다"고 명시했고, 2017년 아시아태평양 안보 협력 정책 백서는 북한의 핵실험을 "단호히 반대"하며 "한반도 비핵화 추진과 동북아 안정을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천명했던 것과 대조적이다.

대신 2025년 백서는 "한반도 문제에 대해 공정한 입장과 올바른 방향을 견지한다", "정치적 해결 과정에 전념한다", "관련 당사국이 위협과 압박을 중단하고 대화와 협상을 재개하길 촉구한다"는 표현으로 대체했다. 카네기국제평화재단의 자오퉁(Zhao Tong) 선임연구원은 "중국이 지난 1년 반 동안 공식 문서에서 비핵화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않았으며, 이번 백서에서의 삭제는 사실상 북한의 핵 지위를 암묵적으로 수용(tacit acceptance)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미국의 2025 국가안보전략 역시 바이든 행정부의 2022년 NSS가 "완전한 비핵화"를 강조하고, 트럼프 1기 행정부의 2017년 NSS가 "비핵화 강제 옵션 강화"를 명시했던 것과 달리 한반도 비핵화 표현이 전혀 등장하지 않았다. 29페이지 분량의 이번 문서는 북한을 "주요 안보 위협(major security threats)" 목록에서도 제외했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변화가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심화된 진영 대결과 북·중·러 밀착의 결과라고 분석한다. 랜드연구소(RAND)의 티머시 히스(Timothy Heath) 연구원은 "러시아가 북한의 핵 프로그램을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유엔 안보리 제재를 무력화하면서, 중국은 북한에 대한 영향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러시아의 행보를 묵인하거나 최소한 중립적인 태도를 취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고 설명했다.

허드슨 연구소의 패트릭 크로닌(Patrick Cronin) 석좌는 "중국의 입장 변화는 미국이 한·일과 함께 확장억제(Extended Deterrence)를 강화하는 것에 대한 '미묘한 항의(subtle protest)'이자, 북한을 억제하라는 국제적 압력을 회피하기 위한 수단"이라고 평가했다.

외교부 당국자는 중국의 "한반도 비핵화 지지" 문구 삭제 사실을 확인하고 그 배경을 면밀히 분석 중이라고 밝혔다. 정부는 "중국의 한반도 문제에 대한 기본 입장에는 변화가 없다"는 중국 측 설명을 인용했으나, 11월 한중 정상회담과 9월 북중 정상회담 결과문에서도 연이어 비핵화 언급이 빠진 점을 고려할 때 우려가 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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