셰이크 하시나(Sheikh Hasina, 78) 전 방글라데시 총리


17일(현지시간) 방글라데시 수도 다카의 국제전범재판소(ICT)는 셰이크 하시나(Sheikh Hasina, 78) 전 총리에게 사형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하시나가 지난해 대규모 학생 시위를 유혈 진압하도록 지시한 혐의로 반인도적 범죄를 저질렀다고 판결했다. 아사두자만 칸(Asaduzzaman Khan) 전 내무장관도 같은 혐의로 사형을 선고받았다.

골람 모르투자 모줌더(Justice Golam Mortuza Mozumder) 재판장은 453페이지 분량의 판결문을 통해 "피고인 총리 셰이크 하시나는 반인도적 범죄를 저질렀다"며 "반인도적 범죄를 구성하는 모든 요소가 충족됐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하시나를 2024년 7~8월 시위 진압 과정의 '학살의 주모자이자 지휘관(mastermind and commander of the massacre)'이라고 규정했다.

판결이 선고되자 법정은 환호와 박수로 가득 찼으며, 유혈 진압 과정에서 가족을 잃은 유족들은 눈물을 흘렸다. 하시나는 2024년 8월 5일 실각 직후 인도로 도피해 현재까지 망명 중이다. 이번 재판은 피고인이 법정에 출석하지 않은 궐석 재판(trial in absentia)으로 진행됐다.

'살해 지시'부터 '드론 동원'까지... 3대 혐의 유죄 인정

재판부가 인정한 핵심 혐의는 크게 세 가지다. 첫째, 하시나가 "시위하는 학생들을 살해하고 제거하라"고 직접 지시하고, 자신의 정당 활동가들을 선동해 시위대에 대한 폭력을 부추긴 혐의다. 법원은 하시나의 발언과 지시가 "시위대 절멸(extermination)"을 목표로 한 핵심 범죄 행위라고 적시했다.

둘째, 재판부는 하시나가 민간인을 상대로 "드론, 헬리콥터, 그리고 치명적인 무기(drones, helicopters and lethal weapons)"의 사용을 명령한 혐의를 유죄로 인정했다. 지난해 7월 알자지라(Al Jazeera)가 입수한 통화 녹취록에서 하시나는 한 동맹 정치인에게 "이제 그들(보안군)은 치명적인 무기를 사용할 것이다. 발견하는 대로 사격하라(shoot wherever they find them)"고 말한 것으로 드러났다.

셋째, 하시나는 최고 사령관으로서 보안군과 집권당 민병대가 자행한 대규모 살상, 고문, 성폭력 등의 잔혹행위를 막기 위한 어떠한 조치도 취하지 않은 '지휘 책임(command responsibility)' 혐의에서도 유죄가 인정됐다. 재판부는 8월 5일 다카 찬카르풀(Chankharpul) 지역에서 6명의 시위대가 살해된 사건을 거론하며, 이러한 살해 행위가 "총리 셰이크 하시나의 완전한 인지와 명령, 그리고 묵인 하에 일어났다"고 판시했다.

배신한 경찰청장의 증언이 결정타

이번 재판의 결정적 증거는 함께 기소된 초우두리 압둘라 알마문(Chowdhury Abdullah Al-Mamun) 전 경찰청장의 증언이었다. 시위 유혈 진압의 최종 집행자였던 알마문 전 청장은 재판 과정에서 자신의 유죄를 인정하고 '국가 증인(state witness)'으로 전향했다.

그는 법정에서 하시나 전 총리와 칸 전 내무장관으로부터 시위대에 대한 살상 무기 사용과 강경 진압을 직접 지시받았다고 증언했다. 이는 유혈 진압이 하시나의 의도와 명령에 따라 체계적으로 이루어졌음을 입증하는 가장 강력한 내부자 증언이 되었다. 그 대가로 재판부는 알마운 전 청장에게 징역 5년이라는 상대적으로 가벼운 형을 선고했다.

검찰은 10,000페이지가 넘는 방대한 증거와 함께 알마문의 증언을 확보함으로써, 하시나의 '통제 불능' 주장을 일거에 무너뜨렸다. 하시나는 판결 후 성명에서 자신이 "선량한 의도(good faith)"로 행동했으며 "상황이 통제를 벗어난(lost control)" 것이라고 항변했지만, 재판부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7월 학살'... 46일간 최대 1,400명 사망

이번 판결의 근거가 된 2024년 '7월 학살'은 방글라데시 현대사 최악의 정치적 폭력 사태였다. 사건은 지난해 6월 5일 방글라데시 고등법원이 폐지되었던 '독립유공자 자손' 공직 할당제(전체의 30%)를 부활시키는 판결을 내리면서 시작됐다.

다카 대학교를 중심으로 시작된 '공직 할당제 개혁 운동(Quota Reform Movement)'은 순식간에 전국으로 확산됐다. 하시나 정권은 7월 15일경부터 집권당의 폭력 조직인 '방글라데시 차트라 리그(Bangladesh Chhatra League, BCL)'를 동원해 평화 시위대를 무차별 공격하기 시작했다.

이어 경찰과 준군사조직인 신속대응대대(RAB)가 최루탄과 고무탄은 물론 실탄을 조준 사격했다. 7월 16일 베굼 로케야 대학(Begum Rokeya University) 학생 아부 사예드(Abu Sayed)가 경찰의 근거리 조준 사격에 가슴을 맞고 사망하는 영상이 소셜 미디어를 통해 확산되며 분노가 폭발했다. 하시나 정권은 시위대를 '테러리스트'로 규정하고 드론과 헬리콥터까지 동원했다.

유엔(UN) 인권최고대표사무소(OHCHR)는 올해 2월 발표한 공식 보고서에서 지난해 7월 15일부터 8월 5일까지 단 46일 동안 최대 1,400명이 사망했다고 추산했다. 이는 1971년 파키스탄으로부터의 독립전쟁 이후 방글라데시 역사상 최악의 정치적 폭력 사태였다. 수천 명이 부상했으며, 사망자 중 12~13%가 아동이었다.

하시나 "조작된 재판소의 정치적 보복"

인도 뉴델리에 칩거 중인 하시나는 판결 직후 성명을 통해 재판 결과를 전면 부정했다. 그는 유누스 과도정부를 "민주적 정당성 없는 비선출 정부(unelected government with no democratic mandate)"라고 규정하며, 재판소 자체를 "조작된 재판소(rigged tribunal)"라고 비난했다.

하시나는 이번 판결이 "편향되고 정치적 동기에 따른 것(biased and politically motivated)"이며 유죄 판결이 "이미 정해진 결론(a foregone conclusion)"이었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한 이 모든 과정이 유누스 정부가 자신의 정당인 아와미 연맹(AL)을 "정치 세력에서 무력화(nullify the Awami League)"시키려는 정치적 숙청 작업의 일환이라고 비난했다.

하시나의 아들 사지브 와제드(Sajeeb Wazed)는 "필요한 모든 수단을 동원해 맞서 싸울 것"이라고 경고했다. 아와미 연맹은 판결에 항의하며 전국적인 파업과 시위를 촉구했으며, 11월 10일부터 다카를 비롯한 전국에서 화염병 투척, 버스 방화, 조잡한 폭탄 폭발 등 산발적인 폭력 사태가 발생했다.

방글라데시 "송환 불응은 적대행위"... 인도 '전략적 모호성'으로 대응

판결 직후 방글라데시 외무부는 성명을 통해 하시나와 칸 전 장관의 즉각적인 송환을 촉구했다. 외무부는 인도가 이들을 계속 보호하는 것은 "극도로 비우호적인(extremely unfriendly)" 행위이자 "정의에 대한 모욕(affront to justice)"이라고 규정했다.

과도정부의 법률 고문인 아시프 나즈룰(Asif Nazrul) 박사는 더욱 노골적으로 "인도가 계속해서 이 대량 학살자(mass murderer)를 보호한다면, 이는 적대 행위(act of hostility)임을 이해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적대 행위'라는 용어는 외교적으로 전쟁 직전의 상황이나 국교 단절에 준하는 심각한 갈등을 의미한다.

인도의 딜레마는 2013년 양국이 체결한 '범죄인 인도 조약(Extradition Treaty)'의 해석을 둘러싼 법적 함정에 있다. 인도는 하시나를 '정치범'으로 간주해 송환을 거부할 수 있지만, 조약은 '살인' 및 '살인 교사' 혐의를 '정치범' 예외에서 제외하고 있어 무조건 인도 대상이 된다. 방글라데시 ICT 재판부가 하시나의 혐의를 조약상 '살인' 및 '살인 교사' 혐의와 정확히 일치시킨 것은 인도를 법적 코너로 몰아넣기 위한 치밀한 전략으로 분석된다.

이에 대해 인도 외무부(MEA)는 "방글라데시 국제전범재판소의 전 총리 셰이크 하시나 관련 판결을 주목했다"며 "인도는 방글라데시 국민의 평화, 민주주의, 포용, 안정 등 최선의 이익을 위해 전념하고 있으며, 이를 위해 모든 이해당사자(all stakeholders)와 건설적으로 관여할 것"이라고 밝혔다. '모든 이해당사자'라는 표현은 인도가 유누스 과도정부의 요청에 즉각 응하지 않을 것임을 시사하는 '전략적 모호성'으로 해석된다.

'하시나가 만든 칼'에 하시나가 당하다

이번 재판의 가장 비극적인 아이러니는 하시나가 자신이 직접 만든 '무기'에 의해 심판받고 있다는 점이다. 하시나에게 사형을 선고한 국제전범재판소(ICT)는 하시나 자신이 2009년 재집권 직후 1971년 독립전쟁 당시의 전범들을 처단한다는 명분으로 설립한 재판소다.

하시나는 집권 기간 내내 이 ICT를 이용해 정적들을 기소하고 사형을 집행했다. 이 과정에서 ICT는 국내외 인권단체들로부터 "정치적 보복의 도구", "국제 공정 재판 기준 미달"이라는 심각한 비판을 받아왔다. 지난해 8월 유누스 과도정부는 새로운 정의 시스템을 구축하는 대신, 하시나가 만들어둔 바로 그 '정치 보복의 도구'를 그대로 집어 들어 하시나를 겨냥했다.

국제앰네스티(Amnesty International) 등 국제인권단체들은 '7월 학살'에 대한 철저한 책임 규명을 촉구하면서도, 동시에 사형 제도 자체에는 어떤 상황에서든 무조건 반대하는 확고한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이로 인해 미국과 유럽연합(EU) 등 서방은 하시나의 유죄 판결 자체에는 침묵하거나 '공정한 재판과 적법절차'를 촉구하는 원론적인 입장만 표명할 가능성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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