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디언 보도 영상 캡춰


지난 10일(현지시간) 저녁 6시 52분경 인도의 수도 뉴델리(New Delhi) 중심부에 위치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붉은 요새'(Red Fort, Lal Qila) 인근 지하철역 1번 출구 교차로에서 차량 폭발 사고가 발생해 최소 13명이 숨지고 30여 명이 다쳤다. 인도 당국은 이 사건을 테러로 규정하고 국가 전역에 최고 수준의 경계 태세에 돌입했다.

폭발은 신호 대기 중이던 현대 i20 차량에서 발생했으며, 당시 차량에는 3명이 탑승해 있었던 것으로 파악됐다. 폭발의 위력은 매우 강력해 주변 승용차 6대와 전자동 인력거 3대가 전소됐으며, 폭발 파편은 200m 떨어진 곳에서도 발견됐다. 붉은 요새 건축물 자체의 직접적인 피해는 보고되지 않았다.

델리 경찰은 사건 직후 폭발물 단속법과 함께 인도의 강력한 대테러법인 '불법 활동 방지법'(UAPA)을 적용해 수사에 착수했으며, 11일 사건 수사는 테러 전담 기관인 국가수사국(NIA)에 이첩됐다. 아미트 샤(Amit Shah) 내무장관은 고위급 안보 회의를 주재하며 "모든 범인을 색출하라"고 지시했다.

'화이트 칼라 테러 모듈' 전모 드러나

인도 당국의 주목을 끈 것은 폭발 직전인 9일과 10일 델리 인근 하리아나주 파리다바드(Faridabad)에서 적발된 대규모 테러 조직이다. 잠무-카슈미르(J&K) 경찰과 중앙 기관의 합동 작전으로 주택 2곳을 급습한 결과, 질산암모늄 등 급조폭발물(IED) 제조 물질 최소 350kg에서 최대 2,900kg이 발견됐으며 AK-47 소총, 권총, 타이머 장치 등도 함께 압수됐다.

J&K 경찰은 이 조직을 의사, 교수, 이슬람 성직자 등 고학력 전문직으로 구성된 '화이트 칼라 테러 생태계'(White-Collar Terror Ecosystem)로 규정했다. 체포된 인물 중에는 파리다바드 알-팔라 대학/병원(Al Falah University/Hospital)에서 근무하던 카슈미르 출신 의사 무잠밀 셰킬(Dr. Muzammil Shakeel)과 아딜 아흐마드 라더(Dr. Adeel Ahmad Rather) 등이 포함됐다.

수사 당국은 폭발 차량의 최종 구매자이자 운전자를 파리다바드 모듈의 일원인 카슈미르 풀와마 출신 의사 '우마르 모하마드'(Dr. Umar Mohammad)로 추정하고 있다. 당국 소식통에 따르면 동료들이 체포되고 폭발물이 발각되자 도주 중이던 우마르가 공황 상태에 빠져 자폭을 감행했을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파키스탄 기반 테러 조직 JeM 연계 조사

인도 수사 당국은 이번 사건을 파키스탄에 기반을 둔 이슬람 극단주의 무장 단체 '자이시-에-무함마드'(JeM, Jaish-e-Mohammed) 및 '안사르 가즈와툴 힌드'(AGH)와 연결 짓고 있다. JeM은 2019년 인도 경찰관 40여 명이 사망한 '풀와마 자살 폭탄 테러'의 배후로 지목된 UN 지정 테러 단체다. 이번에 체포된 의사 중 일부는 풀와마 테러와 연관돼 수배 중이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나렌드라 모디(Narendra Modi) 총리는 사건 당시 부탄을 방문 중이었으나 즉각 성명을 내고 "델리 폭발의 배후에 있는 공모자들은 용서받지 못할 것"이라며 "모든 책임자들은 법의 심판을 받을 것"이라고 선언했다. 11일 현재까지 JeM이나 AGH, 혹은 다른 어떤 단체도 공식 범행 성명을 발표하지 않았다.

전국 최고 경보 발령, 경제 활동 마비

사건 직후 델리 수도권(NCR) 전역에 최고 수준 경보가 발령됐으며, 마하라슈트라주(뭄바이), 우타르 프라데시주, 하리아나주, 펀자브주 등 주요 도시에도 즉각적인 비상 경계 태세가 내려졌다. 특히 경제 수도 뭄바이에 예방적 최고 경보가 발령된 것은 2008년 뭄바이 테러의 악몽을 상기시키며, 당국이 이번 사건을 연쇄 테러 음모의 일부로 판단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인도 당국은 수사 및 안보상의 이유로 붉은 요새를 3일간 폐쇄했으며, 폭발 현장 맞은편의 대형 전자 상가인 라즈파트 라이 마켓(Lajpat Rai Market)과 인근 찬드니 촉(Chandni Chowk) 시장도 11일 전면 폐쇄됐다. 관광객 및 쇼핑객의 급감으로 현지 상권은 큰 타격을 입었다.

국제사회 애도와 서방의 보안 경보

미국 국무부는 "끔찍한 폭발"이라며 애도를 표했고, 중국, 영국, 일본, 이란, 유럽연합(EU), 프랑스 등도 일제히 희생자 가족들에게 애도를 전했다. 주인도 대한민국 대사관은 11일 "뉴델리 차량 폭발사고 관련 긴급 안전 공지"를 게시하며 교민과 여행객들에게 "폭발 현장 부근과 혼잡 지역 방문을 자제하고 야간 외출을 삼가달라"고 당부했다.

미국 대사관은 즉각 보안 경보를 발령하고 자국민에게 "붉은 요새와 찬드니 촉 주변 지역을 피할 것", "군중을 피할 것", "관광객이 자주 찾는 장소에서 경계를 늦추지 말 것"을 구체적으로 지시했다. 영국과 프랑스 대사관도 유사한 보안 경보를 발령했다.

인도-파키스탄 긴장 재점화 우려

이번 사건은 올해 5월 인도-파키스탄 군사 충돌 이후 불안정한 휴전 상태에서 발생했다는 점에서 지역 안보에 중대한 위협이 되고 있다. 지난 4월 22일 인도령 카슈미르 팔감(Pahalgam)에서 힌두 관광객 26명이 사망하는 테러가 발생하자, 인도 정부는 5월 7-10일 '신두르 작전'(Operation Sindoor)을 개시해 파키스탄령 카슈미르와 펀자브주의 JeM, LeT 테러 캠프에 미사일 공격을 감행했다. 양국은 수십 년 만에 가장 심각한 군사적 충돌 상태에 돌입했으나 미국과 유엔의 긴급 외교적 중재로 5월 10일 휴전에 합의했다.

그러나 델리 폭발 다음 날인 11일 정오, 파키스탄의 수도 이슬라마바드(Islamabad) G-11 구역 지방 법원 입구에서 자살 폭탄 테러가 발생해 최소 12명이 사망하고 27명 이상이 부상했다. 셰바즈 샤리프(Shehbaz Sharif) 파키스탄 총리는 아무런 증거를 제시하지 않은 채 이슬라마바드 테러의 배후로 인도를 지목했다. 파키스탄 탈레반(TTP)은 이슬라마바드 테러가 자신들의 소행이 아니라고 공식 부인했다.

양국의 수도에서 연이어 발생한 테러로 인도-파키스탄 관계는 다시 한번 위기 국면에 접어들 것으로 전망된다. 양측 모두 "상대방이 먼저 우리 수도를 공격했다"고 주장하는 형국이 되면서 제3자의 중재는 더욱 어려워질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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