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네시아에서 8월 중순 이후 국회의원 급여 인상 논란을 계기로 시작된 반정부 시위가 전국 50여 개 지역으로 확산되며 최소 8명이 사망하는 등 격화되고 있다. 시위는 단순한 특혜 반대를 넘어 권력 집중과 민주주의 후퇴, 구조적 경제 불평등에 대한 국민적 분노가 폭발한 양상을 보이고 있다.
틱톡 영상이 촉발한 전국적 분노
시위의 직접적 기폭제는 국회가 발표한 국회의원 특권 확대 논란이었다. 8월 중순 인도네시아 국회가 의원들에게 월 5천만 루피아(약 422만원) 규모의 주택수당을 지급키로 했다는 소문이 틱톡을 통해 확산되자, 분노가 폭발했다.
국회와 정부는 이 조치가 노후된 관사 보수비용을 위한 것일 뿐 급여 인상은 아니라고 해명했으나, 실제로 국회의원 일당과 수당을 포함하면 월 1억 루피아(850만원) 수준의 보상이 이뤄지는 점에 국민들이 격앙했다. 인도네시아 통계청에 따르면 노동자 평균 월급은 약 284만 루피아(24만원)에 불과해, 국회의원 하루 일당이 보통 노동자 한 달 월급을 초과하는 상황이다.
권력 집중과 민주주의 후퇴 우려
이와 함께 지난해부터 제기된 권력 집중과 민주주의 후퇴에 대한 우려도 시위의 중요한 배경이다. '암흑 인도네시아(Indonesia Gelap)' 운동으로 불렸던 초기 시위는 프라보워 대통령 당선 이후 군의 국정 개입 확대, 예산 삭감 등 정책에 항의하는 내용이었다.
전문가들은 조코 위도도 전 대통령 집권기부터 국회와 권력 엘리트가 비판적 견제 세력을 약화시키고 있다는 지적을 제기해왔다. 실제로 시위대는 대체로 국회의원 특혜 철회, 부패 척결, 군·경찰 개혁 등을 요구하고 있다. CFR(미국외교협회) 분석에 따르면 시위대의 요구 중에는 "군의 정치 개입 배제, 국회의원 과도한 보수 축소, 정부 부패 실태 조사, 민생 기반 강화" 등이 포함되어 있다.
구조적 경제 불평등 심화
인도네시아는 지난해까지 연 5%대의 견고한 경제성장률을 기록했지만, 그 이면에는 구조적 불평등과 고용 불안이 심화돼 왔다. 2025년 2분기 성장률은 5.12%로 양호했으나 청년실업률은 16% 이상에 달하고 있다.
5년간 중산층 인구(월 100~250달러 가계소득 기준)는 5,733만명에서 4,785만명으로 줄었으며, GDP 대비 제조업 비중도 2002년 32%에서 19%로 대폭 축소됐다. 고학력자를 포함해 매년 수백만 명의 노동시장 신규 진입자가 발생하지만 이들을 수용할 양질의 일자리는 부족하다.
수출 호조의 혜택이 주로 니켈 등 원자재 산업에 집중되면서 제조업이 축소된 반면 고용 창출 여력은 떨어졌다. 소비세 인상 등 정부의 긴축 정책이 추진된 상황에서 생활물가 상승과 임금 정체가 맞물려 '경기 체감'은 나빠졌다.
동아시아포럼 분석은 "수십 년간의 경제성장이 중산층 확대를 뒷받침해 왔으나, 코로나 이전부터 이미 중산층은 감소 추세이고 소득 증가세도 둔화됐다"면서, 약화된 소비 여력이 젊은층의 불만을 폭발시킨 배경이라고 지적했다.
조코 위도도 정권의 정책 논란
조코 위도도 전 대통령(2014~2024년)의 개발 전략도 현재 시위의 한 축으로 언급된다. 위도도 정부는 전기차 배터리 소재인 니켈 등 원자재 산업 육성에 집중하며 제조업 기반 강화는 소홀히 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실제로 위도도 정부 시절 착수된 수도 이전, 대규모 농업개발 등 국책사업들은 토지 수탈과 환경 훼손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한편 프라보워 대통령 집권 후에도 상하원의 입법부는 '고무 도장' 성격이라는 비판이 있어, 주요 정책 결정에 대한 시민 의견 수렴이 미비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전국 곳곳 폭력 시위 격화
학생과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한 시위는 자카르타를 비롯한 술라웨시 섬의 마카사르, 동부 자바 수라바야, 서부 자바의 반둥과 시레본, 중부 자바의 페칼롱간, 발리, 파푸아 등 50여 개 지역으로 퍼졌다. 시위대는 의회와 정부청사 인근에 집결해 시위를 벌이다가 일부 지역에서는 건물과 차량에 방화를 저지르고 바리케이드를 설치하며 경찰과 충돌했다.
대표적으로 동부 술라웨시 마카사르에서는 8월 29일 시위대가 의사당 건물에 방화해 3명이 사망했으며, 서누사텡가라, 서부 자바 페칼롱간·시레본 등에서도 지방의회 건물이 불탔다. 자카르타에서도 특수부대(Mobile Brigade) 본부가 타깃이 되었고, 시위대가 본관 난입을 시도하다 경찰이 최루탄으로 대응했다.
동부 자바 수라바야 등지에서는 경찰서와 관저가 불타기도 했다. 이처럼 자카르타, 수라바야, 반둥, 요그야카르타, 마카사르, 테르나테 등 대도시에서 시위가 격화되었고, 주변 교통이 마비되는 등 일상생활도 타격을 받았다.
충돌 과정에서 최소 8명 이상이 사망했고 인도네시아 인권단체 등은 사망자가 10명에 이르며 실종자도 수십 명에 달한다고 보고했다.
정부 강경 진압에 국제사회 우려
프라보워 정부는 시위 대응 과정에서 초기에 강경한 진압 방침을 내세웠다. 자카르타 경찰은 주요 거리에 검문소를 설치하고 경찰 장갑차를 배치했으며, 8월 말부터 시위 참가자 수천 명을 연행했다. 전국적으로 3,000명 이상이 체포되었다는 보고가 있었고, 경찰의 물대포·최루탄 투입과 공무원 비상대기 조치가 잇따랐다.
프라보워 대통령은 8월 31일 기자회견을 통해 문제된 주택수당을 전격 폐지하겠다고 발표하며 시위대 요구에 일부 양보했으나, 동시에 과격 행위를 단죄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 방침에 따라 군·경 병력이 동원되어 자카르타에서는 야간 통행금지급 경비가 실시되었고, 여성단체·학생연합 등 일부 시위 조직들은 "폭력 진압을 피하기 위해" 시위를 보류하기도 했다.
인권단체는 경찰의 과도한 무력 사용을 비판했다. 휴먼라이츠워치는 "정부 정책에 반대하는 시위를 과도한 무력과 구금으로 대응해서는 안 된다"고 발표하며 진압과 구금을 중단할 것을 촉구했다.
경제·금융시장 충격과 우려
국제 언론과 투자자들도 상황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시위 사태가 금융시장에 충격을 주어 주가와 통화가치가 하락했고, 주요 신용평가사인 S&P는 "당장 정치적 불안정으로 이어질 정도까지 확대되지는 않을 것"으로 평가하면서도 "가계 지원 등 복지지출 증가로 재정적 부담이 커질 수 있다"고 분석했다.
한편 로이터 계열 브레이킹뷰는 스리 물얄리니 전 재무장관 경질(시위 압력으로 해석됨)이 시장에 충격을 주었으며, 저물가 정책 기조를 중단하고 복지 확대로 돌아설 가능성이 높다고 보도했다.
중장기적 사회변화 신호
전문가들은 이번 시위를 단발적 사건으로 보지 않고 중장기적인 사회변화 신호로 해석한다. CFR는 "경제적 불평등과 정부 부패에 분노한 시위대가 전국적으로 분출했으며, 프라보워 정부가 강경 진압에 나설 경우 폭력 사태가 더욱 격화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동아시아포럼은 "농촌 중심 개발에 치중한 프라보워식 성장전략만으로는 인도네시아 도시의 고용과 물가 문제를 해결할 수 없으며, 시위는 과거부터 이어진 '일방통행식 정치'의 위기를 드러내고 있다"고 평가했다.
인도네시아 정부는 다만 "경제 펀더멘털은 견고하다"는 입장을 견지하며 재정 확대와 구조개혁으로 진화 가능성을 봉쇄하려 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향후 정부가 사회불안을 잠재우기 위해 복지 지출을 늘리는 한편, 단기적 안정화와 장기적 구조개혁 사이의 균형을 모색해야 할 것이라고 전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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