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만성적인 전력난 해결을 위해 재생에너지를 체제 생존의 핵심 전략으로 전면 재편하고 있다. 12일 노동신문은 황해남도 은율군 금산포젓갈가공공장의 재생에너지 운영 성과를 대대적으로 보도하며, 이를 전국적 모델로 제시했다.
이번 보도는 2025년 12월 노동당 제8기 제13차 전원회의 이후 김정은 정권이 제시한 '새로운 단계로의 도약'이라는 경제 전략의 연장선상에 있다. 북한은 2021년부터 추진해온 국가경제발전 5개년 계획의 종료를 선언하고, 2026년을 역사적 전환점으로 규정한 바 있다.
한국 통계청에 따르면 2024년 기준 북한의 전력 생산량은 대한민국의 4.2% 수준에 불과하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 2397호로 원유와 정제유 수입이 연간 50만 배럴로 제한되면서, 화력 발전은 사실상 마비 상태다. 겨울철 수력 발전 가동률 급감까지 겹치면서 북한은 구조적 에너지 위기에 직면해 있다.
김정은 위원장은 2017년 1월 금산포 시설을 직접 방문해 "공장과 수산사업소의 전력 수요를 원만히 충족시킬 수 있게 되었다"며 극찬한 바 있다. 이번 보도는 9년 만에 이 사례를 재소환함으로써, 전국의 모든 공장과 기업소에 '금산포처럼 하라'는 강력한 지침을 내린 것으로 풀이된다.
노동신문에 따르면 금산포 시설에는 현재 태양광 패널 1만1000여 개가 설치돼 있다. 2016년 초기 위성 분석에서 약 2880개가 확인된 것과 비교하면, 10년간 설비가 약 4배 가까이 확장된 것으로 보인다. 패널 1개당 출력을 250~300W로 가정하면, 총 설비 용량은 약 2.75~3.3MW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특히 주목할 점은 태양광과 풍력을 결합한 하이브리드 시스템 구축이다. 태양광이 낮 시간대에만 전력을 생산하는 한계를 보완하기 위해, 서해안의 밤바람을 이용한 풍력 발전을 병행 운전하고 있다. 24시간 냉동 설비 가동이 필수적인 수산물 공장의 특성상, 이러한 복합 발전 시스템은 필수적이다.
이 시스템의 핵심은 국가 전력망과 분리된 독립형 마이크로그리드(Micro-grid) 운영이다. 중앙에서 전력을 공급받지 않고도 공장이 자체적으로 가동될 수 있는 구조다. 대용량 에너지 저장 장치가 필수적이며, 북한은 폐배터리 재생 기술이나 중국산 저가형 배터리를 활용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의 재생에너지 정책은 2013년 재생에너지법 제정으로 법적 기반을 마련했다. 이 법은 태양열, 풍력, 지열, 생물질, 해양 에너지 등을 재생에너지로 규정하고, 개발과 이용을 국가적 의무로 명시했다. 2019년에는 중소형발전소법을 개정해 태양광과 바이오매스를 명시적으로 포함시켰다.
2025년 11월 통일연구원 정은이 연구위원은 "평양! 지붕 위 태양빛으로 버티다" 보고서를 통해 북한의 야간 조명 실태가 획기적으로 개선됐다고 분석했다. 과거 위성 사진에서 '암흑의 땅'으로 묘사되던 북한이 최근 몇 년 사이 평양과 국경 도시를 중심으로 유의미하게 밝아졌다는 것이다.
태양광 패널과 배터리가 내장된 독립형 가로등이 도시 중심부뿐 아니라 외곽 도로까지 설치됐고, 아파트 베란다와 단독 주택 지붕의 태양광 패널 밀도도 급증했다. 에어컨 실외기 설치가 늘어난 것은 태양광 발전이 단순 조명을 넘어 가전제품을 가동할 수준의 전력을 공급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러한 변화는 국가 공급망 복구가 아닌 주민들의 '각자도생' 노력의 결과다. 북한 주민들은 장마당에서 중국산 태양광 패널, 인버터, 배터리를 구입해 자가 발전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다. 전력이 국가가 배급하는 공공재가 아닌, 돈을 주고 장비를 사서 생산해야 하는 사유재로 전환된 것이다.
중국은 이러한 북한의 에너지 전환에 결정적 역할을 하고 있다. 유엔 안보리 결의 2397호는 정제유 수출을 제한했지만, 태양광 패널 자체는 제재 품목에 명시적으로 포함되지 않았다. 북한에 설치된 태양광 패널의 거의 100%가 중국산으로, 단둥-신의주 라인을 통해 대량 유입되고 있다.
2024년 중국의 태양광 모듈 수출량은 236GW에 달했다. 전 세계적 공급 과잉으로 가격이 하락하면서, 북한의 구매력이 상대적으로 높아졌다. 전문가들은 공식 무역 통계에 잡히지 않는 밀수나 보따리 무역을 통한 패널 유입량이 공식 통계를 훨씬 상회할 것으로 분석한다.
그러나 기술적 한계도 명확하다. 태양광 패널은 수입으로 해결되지만, 풍력 발전기는 상황이 다르다. 북한은 100kW, 250kW, 750kW급 풍력 발전기를 자체 제작했다고 주장하지만, 고효율 터빈 블레이드 제작에 필요한 복합소재와 핵심 부품은 제재 품목이거나 구하기 어렵다.
가장 큰 한계는 국가 전력망과의 연계 부족이다. 남한이나 선진국은 재생에너지 전력을 국가 전력망으로 보내 효율적으로 배분하지만, 북한 전력망은 주파수와 전압이 불안정해 태양광 전력을 수용할 수 없다. 생산된 전기는 해당 공장이나 가정에서만 소비되고, 남는 전기는 버려지거나 비효율적인 배터리에 저장된다.
북한의 재생에너지 전략은 제재 하에서의 생존 전략이자, 중앙 전력망 복구가 불가능한 상황에서의 불가피한 선택이다. '자력갱생'을 외치지만 역설적으로 에너지 생산의 핵심 도구에 대한 중국 의존도는 절대적이다. 북한의 에너지 안보가 중국의 대북 정책과 무역 통제에 종속되는 구조가 고착화되고 있는 것이다.
국제사회 입장에서 북한이 재생에너지를 통해 최소한의 생존 에너지를 확보하고 있다는 점은, 대북 제재의 압박 효과가 희석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동시에 북한 전역에 깔린 수백만 개의 태양광 패널과 분산형 전력 시스템은 향후 남북 통합이나 전력 협력 시 고려해야 할 중요한 변수가 될 전망이다.
#북한재생에너지 #금산포모델 #대북제재 #에너지자립 #중국의존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