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통령과 일본 이시바 시게루 총리가 30일 부산에서 세 번째 정상회담을 갖고 양국이 직면한 구조적 위기에 공동 대응하는 새로운 협력 틀을 마련했다.
이날 76분간 진행된 회담에서 양 정상은 저출산, 국토 균형 성장을 포함한 공통 사회 문제에 관한 협의체를 운영하고 협력을 강화한다는 내용의 공동 문서를 발표했다. 이는 양국 관계가 전통적인 안보·무역 중심에서 벗어나 국민 생활과 직결된 구조적 난제를 함께 풀어가는 '구조적 파트너십'으로 진화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21년 만의 지방 회담, 새로운 외교 지평 열다
부산에서 열린 이번 회담은 서울이 아닌 지방 도시에서 한일 정상이 만난 것으로는 2004년 제주 회담 이후 21년 만이다. 이시바 총리는 부산을 조선통신사가 일본으로 출발한 곳으로 언급하며, "조선통신사를 상징하는 활발한 인적 교류에 힘입어 양국이 엄중한 환경 속에서도 공동의 이익을 찾아 협력을 추진해 나가기를 희망한다"고 강조했다.
회담 당일 일본 총리 내외가 누리마루로 입장할 때 조선통신사 행렬을 재연한 취타대 전통 군악대와 의장대가 선도했다. 이는 양국 간의 역사적 우호 분위기를 효과적으로 연출하는 외교적 행위였다.
이재명 대통령은 "한국과 일본이 수도권 집중 문제 등 여러 측면에서 비슷한 과제를 안고 있다"며 공감대를 드러냈다. 한국 정부의 '5극 3특' 정책과 일본 이시바 총리의 '지방창생 2.0' 정책은 향후 협의체의 주요 정책 학습 기반이 될 전망이다.
실질 협력 복원, 16년 만의 과학기술위 재개
양 정상은 2009년 이후 16년 만에 한일 과학기술협력위원회 개최에 합의했다. 이는 양국이 경제 안보 관점에서 상호 보완적인 기술 자산을 융합하고 공급망 안정성을 높이려는 전략적 움직임이다. 일본의 기초 과학력과 한국의 응용·생산 기술력을 결합해 글로벌 공급망 재편 속에서 산업 경쟁 우위를 확보하겠다는 의도가 담겼다.
대통령실은 "미국의 통상 압박 등에 직면한 상황에서 양국 정상이 격변하는 무역 질서 속에서 함께 행동해야 할 필요성에 공감했다"고 설명했다. 향후 수소를 포함한 청정 에너지 보급, 전략 물자 공급망 구축 협력 등도 논의될 것으로 보인다.
'역사 직시' 공감대 속 감성 외교로 신뢰 구축
이재명 대통령은 "과거를 직시하되 미래 지향적인 협력을 계속해 나가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시바 총리가 최근 유엔총회에서 "역사를 정면으로 마주하지 않으면 밝은 미래를 열 수 없다"고 연설한 것을 높이 평가하며 "나의 생각과 같다"고 말했다.
이시바 총리도 회담 후 기자들을 만나 "다른 나라이므로 인식의 차이가 있는 것이 당연하지만 역사를 직시하는 용기, 성실함을 가져야 한다"고 입장을 표명했다.
이시바 총리는 회담 공식 일정에 앞서 24년 전 도쿄에서 일본인을 구하려다 희생된 한국인 유학생 이수현 씨의 묘지를 참배했다. 이 총리는 참배 후 "남을 위해서 본인의 생명을 목숨을 질 수 있는 그런 숭고한 뜻과 그리고 또 끝도 없는 그런 사랑에 대해서 저희가 존경의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라고 발언했다. 이러한 상징적 제스처는 정치적으로 첨예한 과거사 문제를 회피하면서도 양국 국민 간 우호와 연대를 강조하는 감성 외교의 성공 사례로 평가된다.
정권 교체기 관계 안정화, 셔틀외교 정착 의지 확인
이번 회담은 이시바 총리가 9월 7일 사의를 표명하고 10월 4일 신임 자민당 총재 선거를 거쳐 퇴임 예정인 시점에서 열렸다. 일본 언론은 이번 방한이 이시바 총리의 퇴임 전 마지막 외국 방문지가 될 것이며, 한일 관계를 미래 지향적으로 발전시켜 나가겠다는 방침을 재확인하고 이 모멘텀을 차기 정권으로 안정적으로 이어가려는 의도가 있다고 분석했다.
이시바 총리는 방한의 성격에 대해 "셔틀외교 복원 차원에서 방문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재명 대통령은 "한일 관계를 정서적 교감의 수준까지 끌어올리고 셔틀 외교를 정착시켜 공동 발전을 기약해야 한다"는 의지를 표명했다. 양 정상은 한일 간의 소통과 협력을 지속해 나가기로 의견을 모았다.
한미일 공조 강화, 북핵·납북자 문제 협력
양 정상은 한반도 정세와 관련해 북핵 문제 해결과 한반도 평화 구축에 대한 확고한 의지를 재확인했다. 양국 정상은 급변하는 국제 정세 속에서 흔들림 없는 한일 협력과 한미일 협력을 추진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점에 일치했다.
특히 일본의 핵심 안보 의제인 일본인 납북자 문제 해결을 위한 노력의 중요성에 대해서도 공감대를 형성했다. 납북자 문제는 국군 포로 및 우리 국민 납북자 송환 문제 해결과도 연결될 수 있으며, 북일 수교 추진 및 동북아 평화회복을 위한 기폭제가 될 수 있는 민감한 사안이다.
양 정상은 한일 관계의 발전이 한미일 협력 강화로 이어지는 '선순환' 구조를 지속적으로 만들어가기로 했다. 또한 10월 경주에서 개최될 APEC 정상회의와 일본에서 개최될 한중일 정상회의의 성공적인 개최를 위해 상호 협력하기로 했다.
실무 협력 기반 다져 차기 정권 이관 준비
이번 회담에서 공동 성명 대신 실무적 협력을 명시한 공동 문서를 발표한 것은 이시바 총리의 퇴임이 임박한 시점에서 차기 정권에 과도한 외교적 부담을 주지 않으면서도 실질적인 협력 기반을 다지기 위한 전략적 선택으로 평가된다.
한일 양국은 합의 이행력 확보를 위해 신설된 공통 사회문제 협의체와 과학기술협력위원회가 구체적인 성과를 낼 수 있도록 당국 간 협의를 지속적으로 실시하기로 했다.
2028년 만료되는 한일 대륙붕 공동개발협정 등 중장기적으로 양국 관계에 첨예한 쟁점을 야기할 수 있는 경제 및 자원 관련 사안들에 대해서도 선제적 관리가 필요하다는 인식을 공유한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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