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를 계기로 경주에서 열린 한미 정상회담에서 이재명 대한민국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한미 동맹의 경제·안보 지형을 근본적으로 재편하는 역사적 합의를 도출했다.
이번 회담의 핵심은 크게 두 갈래다. 첫째, 한국이 3500억 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를 약속하고 미국은 상호주의적 관세를 당초 25%에서 15%로 낮추는 포괄적 경제 합의를 최종 타결했다. 둘째, 한국이 30여 년간 추진해 온 핵추진 잠수함 보유에 대해 미국이 역사적 승인을 내렸다.
관세 인하와 전략 산업 투자 패키지 확정
이번 합의로 미국이 부과하려던 25%의 관세가 15%로 낮아졌다. 반도체와 의약품 같은 핵심 품목은 경쟁국 대비 불리하지 않은 대우를 받게 됐으며, 23개 철강·알루미늄 품목은 관세가 면제됐다. 이재명 대통령은 쌀과 소고기 시장의 추가 개방은 없을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3500억 달러 투자는 두 축으로 구성된다. 1500억 달러는 '미국 조선업을 다시 위대하게(Make American Shipbuilding Great Again·MASGA)'로 명명된 조선업 협력 펀드에 투입된다. 한국 기업 주도로 미국 조선업 생태계 전반을 부활시키는 것이 목표다. 한화가 소유한 필라델피아 조선소가 협력의 중심지가 된다.
나머지 2000억 달러는 반도체, 첨단 배터리, 바이오 기술, 핵심 광물 등 미국의 전략 산업에 투자된다. 한국 협상팀은 투자금의 연간 현금 유출액을 200억 달러로 제한하는 안전장치를 확보했다. 이는 이재명 대통령이 우려했던 대규모 자본 유출로 인한 외환 시장 불안을 막기 위한 조치다.
뉴욕타임스(New York Times)를 비롯한 외신들은 한국이 일본보다 더 많은 양보를 얻어냈다고 분석했다. 특히 일본과 달리 한국은 투자 대상 결정에 대한 재량권을 확보해 원금 회수 가능성이 높은 프로젝트를 선정할 수 있게 됐다.
다만 자동차 관세는 여전히 난제로 남았다. 합의상 15%로 명시됐으나 실제로는 기존 25% 관세가 철폐되지 않은 상태다. 이는 한국 최대 수출 품목인 자동차 산업을 경쟁국 일본에 비해 불리한 위치에 놓이게 만들었다.
핵추진 잠수함 승인, 30년 숙원 해결
이재명 대통령은 10월 29일 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한국의 핵추진 잠수함 건조와 연료 공급 승인을 공개 요청했다. 이 대통령은 이것이 동맹의 방위비 분담 차원이며 "한국의 첨단 잠수함이 역내 미군의 부담을 상당히 덜어줄 것"이라고 강조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다음 날인 10월 30일 자신의 소셜미디어를 통해 승인 사실을 전격 발표했다. 그는 해당 잠수함이 "훌륭한 미국 필라델피아 조선소"에서 건조될 것이라며 안보 합의를 경제 투자와 직접 연결했다. 이재명 대통령은 핵확산 우려를 불식시키기 위해 재래식 무기만 탑재할 것임을 분명히 했다.
핵추진 잠수함은 디젤 잠수함과 비교할 수 없는 수중 지구력으로 북한 및 주변국 잠수함 위협을 지속 추적·감시할 수 있다. 이번 승인은 한국의 해상 억제력을 획기적으로 강화하고, 중국과의 전략적 경쟁이라는 지정학적 구도 속에서 한국을 역내 주요 군사 강국으로 자리매김하게 한다.
동맹 현대화와 대북 협력
정상회담에서는 동맹 현대화 방안도 논의됐다. 이재명 대통령은 현재 국내총생산(GDP) 대비 2.3% 수준인 국방비를 증액해 강군을 건설하겠다고 약속했다. 주한미군을 대만 해협 유사시 등 한반도 역외 분쟁에 투입할 수 있는 전략적 유연성 개념도 다뤄졌다.
대북 문제에서는 역할 분담에 합의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주된 협상가인 '평화 중재자(peacemaker)' 역할을 맡고, 이재명 대통령은 그 과정을 촉진하고 지원하는 '페이스메이커(pacemaker)' 역할을 수행하기로 했다. 양 정상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의 대화 재개 의지를 표명했으며, 트럼프 대통령은 만남을 환영하겠다고 밝혔다.
이재명 대통령은 방미 기간 동안 "한국은 미국의 기본적인 정책 기조에 어긋나는 행동이나 결정을 할 수 없다"고 강조하며 한미 동맹을 최우선으로 하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동시에 한중 관계는 지리적 근접성으로 인한 "불가피한 관계를 잘 관리하는 수준"으로 규정했다.
국내 반응 극명하게 엇갈려
정부와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이번 회담을 압도적 성공으로 평가했다. 이규연 홍보소통수석은 브리핑에서 이재명 대통령이 '인간 트럼프'를 분석해 어려운 환경에서 국익을 지켜낸 협상가적 기질을 발휘했다고 평가했다.
반면 야당인 국민의힘은 "역대급 외교 참사"이자 "굴욕 외교"라고 맹비난했다.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굴욕적 아부"를 비판하며 막대한 투자 약속을 하고도 자동차 관세 등 실질적 이익은 얻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알자지라(Al Jazeera) 등 외신들은 신라 금관 같은 정교한 선물과 찬사를 트럼프 대통령의 환심을 사는 "마법의 재료"로 묘사했다. 신체 언어 전문가들은 선물에 대한 트럼프 대통령의 기쁨이 역력한 반응을 분석하며 이러한 전략의 성공을 뒷받침했다.
미국 의회조사국(Congressional Research Service·CRS)은 양 정상 간 긍정적 관계는 인정하면서도 공식 공동성명이나 최종 합의문이 부재하다는 점을 지적했다. 이는 핵심 세부 사항이 여전히 불분명하며 추가 협상 대상이 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이행 과제와 향후 전망
가장 큰 과제는 3500억 달러 투자를 최종 문서로 완성하는 것이다. 펀드의 정확한 구조, 투자처 선정 절차, 수익 분배, 위험 완화 전략 등 핵심 운영 방식은 아직 협상이 필요하다.
이번 합의는 양국의 경제·안보적 상호의존성을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심화시켰다. 한국은 군사적으로 더 유능하고 전략적으로 중요한 파트너로 부상했으나, 이는 향후 중국 문제 등 역내 현안에 대해 미국 정책과 보조를 맞추라는 더 큰 압력에 직면할 가능성을 의미한다.
경주 정상회담은 안보 정책으로서의 경제 외교라는 선례를 남겼다. 막대한 경제 투자가 핵심 안보 양보를 얻어내는 주요 통화가 되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했다. 장기적으로는 경제 거래에 과도하게 의존하는 동맹의 지속가능성과 신뢰성에 대한 근본적 질문을 제기한다.
#한미정상회담 #경주회담 #이재명 #트럼프 #3500억달러투자 #핵추진잠수함 #MASGA #한미동맹 #관세협상 #조선업협력 #전략적유연성 #동맹현대화 #대북협력 #실용외교 #APEC정상회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