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임 연설에 나선 조란 맘다니 시장/보도영상 캡춰


세계 금융의 중심지 뉴욕시에 역사상 가장 급진적인 진보 성향의 시장이 탄생했다. 1월 1일 취임한 조란 맘다니(Zohran Mamdani, 34) 제112대 뉴욕시장은 자본주의의 심장부에서 사회주의적 실험을 선언하며 미국 정치 지형에 파격적 변화를 예고했다.

맘다니 시장은 화려한 시청 홀 대신 타임스퀘어 지하의 폐쇄된 지하철역에서 자정에 취임 선서를 진행했다. 그는 취임사에서 "소극적인 기대치를 거부하며, 대담하고 포괄적인 통치를 시작할 것"이라고 천명했다. 이어 "강철 장화를 신은 노동자, 하루 종일 서서 일하느라 무릎이 아픈 할랄 카트 상인"을 언급하며 노동 계급 중심의 시정 철학을 분명히 했다.

특히 그는 뉴욕 공립도서관 숌버그 흑인문화연구센터가 소장한 19세기 오스만 제국 시대 시리아산 코란을 선서에 사용했다. 이 코란은 푸에르토리코 태생 흑인 역사학자 아르투로 숌버그가 소장했던 것으로, 맘다니 시장은 무슬림으로서의 정체성과 흑인·라틴계와의 역사적 연대를 동시에 표현하며 트럼프 행정부의 배타적 이민 정책에 맞서는 상징적 메시지를 전했다.

민주사회주의자를 자처하는 맘다니 시장의 등장 배경에는 전임 에릭 아담스(Eric Adams) 시장의 부패 스캔들이 자리한다. 아담스는 지난해 9월 뇌물 수수 등 5가지 혐의로 연방 검찰에 기소됐으나, 올해 4월 트럼프 행정부 법무부가 기소를 취하하면서 정치적 거래 의혹을 낳았다. 이는 민주당 지지층에게 깊은 배신감을 안겼고, 결국 아담스는 재선 도전을 포기했다.

지난해 11월 선거에서 맘다니는 과반인 50.78%를 득표해 전 뉴욕 주지사 앤드류 쿠오모(41.32%)를 큰 표차로 따돌렸다. 특히 민주당원의 59%, 무당층의 37%가 맘다니를 지지하며 뉴욕 시민들이 안정보다 변화를 선택했음을 보여줬다. 40대 이하 세입자 계층에서 압도적 지지를 얻은 것은 렌트비 상승과 주거 불안에 시달리는 청년층의 분노가 표심으로 연결된 결과로 분석된다.

맘다니 시장은 취임 직후 전임 시장 에릭 아담스가 기소된 지난해 9월 26일 이후 서명한 모든 행정명령을 무효화하는 조치를 단행했다. 여기에는 아담스가 임기 말 추진했던 이스라엘 보이콧 금지 명령 등이 포함된 것으로 보이며, 이는 전임자와의 도덕적 단절을 선언한 것이다.

맘다니 시장은 취임 첫날 야심찬 주거 정책을 발표했다. '랜드 인벤토리 패스트 트랙(LIFT)'과 '공평한 개발 촉진 절차 간소화(SPEED)' 두 개의 태스크포스를 발족하고, 오는 7월 1일까지 주택 개발에 적합한 모든 시 소유 부지를 전수 조사해 사회주택 공급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민간 주도 개발에서 탈피해 토지의 공공성을 강화하고 개발 이익의 사유화를 막겠다는 의지다. 레일라 보조그(Leila Bozorg) 주택 및 도시계획 담당 부시장이 이를 총괄한다.

특히 SPEED 태스크포스는 모든 개발 사업이 아닌 100% 서민 주택 프로젝트에만 인허가 패스트트랙을 적용한다는 점에서 선별적 규제 완화 전략을 취하고 있다. 이는 민간 럭셔리 콘도 개발에는 혜택을 주지 않겠다는 명확한 메시지다.

대중교통 무상화와 부유세 도입도 핵심 공약이다. 맘다니 시장은 모든 시내버스의 요금 무료화를 추진하고 있으나, 연간 6억~8억 달러의 수입 감소가 예상되고 메트로폴리탄 교통국(MTA)이 이미 올해 2억 달러, 2029년 4억2천800만 달러의 적자가 예상되는 상황이어서 재정 확보가 관건이다.

이를 위해 연소득 100만 달러 이상 거주자에 대한 시 소득세율을 기존 3.9%에서 5.9%로 인상하는 부유세 도입을 추진 중이다. 이 경우 뉴욕시 상위 소득자의 합산 한계세율은 연방·주·시를 합쳐 약 55~60%에 육박하게 되며, 이는 미국 내 최고 수준이다. 월가와 보수 진영은 부유층의 자본 도피를 경고하고 있으나, 맘다니 측은 부유층의 거주지 결정이 세금보다는 인프라와 네트워크에 좌우된다는 연구 결과를 근거로 이를 반박한다.

맘다니 시장의 등장은 한국 외교에도 새로운 변수가 됐다. 지난해 6월 윤석열 대통령 탄핵 후 취임한 이재명 대통령의 기본주택, 기본소득 등 '기본사회' 정책이 맘다니 시장의 사회주택, 무상교통과 맞닿아 있어 정책 연대 가능성이 제기된다. 반면 보수 성향인 오세훈 서울시장과는 이념적 간극이 커 실질적 교류는 제한적일 전망이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선거 기간 맘다니를 "100% 미친 공산주의자"라고 공격했으나, 맘다니는 사유재산 철폐나 일당 독재를 주장하는 공산주의가 아닌 북유럽식 사민주의에 가까운 민주사회주의자다. 맘다니 시장은 시 공무원과 경찰이 연방 이민세관단속국(ICE)의 이민 단속에 협조하는 것을 전면 금지하겠다고 선언해 트럼프 행정부와의 충돌이 예상된다.

뉴욕과 인근 지역에 거주하는 10만 명 이상의 한인 동포 사회는 기회와 위기가 공존하는 상황이다. 한인의 자영업 비율은 13.8%로 뉴욕시 평균 9.8%보다 높아 상업용 임대료 안정화 정책이 소상공인에게는 긍정적이나, 건물 소유주에게는 재산권 침해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반면 한인의 70%가 세입자로 임대료 동결 정책의 수혜자가 될 가능성도 크다.

맘다니 시장은 제시카 티시(Jessica Tisch) 현 경찰국장을 유임시키며 급진적 개혁보다는 조직의 안정을 택하는 실용적 행보도 보였다. 이는 한인 사회가 우려하는 치안 공백을 일정 부분 불식시킬 수 있는 신호로 평가된다.

전문가들은 한국 정부가 트럼프 행정부와는 안보 협력을, 맘다니 행정부와는 복지·주거 정책 교류를 분리해 추진하는 전략이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한국토지주택공사의 공공주택 노하우와 서울의 스마트 교통 시스템을 활용한 실질적 협력이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숌버그 센터 등 흑인·라틴계 커뮤니티와 한인 커뮤니티 간의 문화 연대 행사를 통해 한인 사회가 기득권이 아닌 연대하는 소수자임을 각인시킬 수 있다는 제안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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