캄보디아 국방부는 태국 군이 목요일 양국 국경의 주요 육로인 포이펫 카지노 밀집 지역을 폭격했다고 밝혔다./BSS,AFP 사진
18일 오전 11시(현지시간), 태국 공군 소속 F-16 전투기 편대가 캄보디아 영공을 침범해 국경도시 포이펫(Poipet) 일대를 정밀 타격했다. 태국 국방부는 캄보디아군이 민간 시설로 위장한 창고에 은닉한 BM-21 그라드(Grad) 다연장 로켓 시스템과 탄약고를 파괴하기 위한 자위적 조치였다고 밝혔다. 태국 공군 대변인 잭크릿 탐마비차이(Jackkrit Thammavichai) 공군 소장은 "해당 시설이 군사적 목적으로 전용된 물류 센터"라며 "캄보디아군이 이곳을 거점으로 태국 영토를 향해 로켓 포격을 가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번 공습의 진짜 표적은 따로 있었다. 태국군은 공습 목표 중 하나로 캄보디아 집권 캄보디아인민당(CPP) 유력 상원의원이자 훈 센 전 총리의 측근인 리 용 팟(Ly Yong Phat) 소유의 오스마치(O-Smach) 리조트를 지목했다. 미국 재무부는 지난해 9월 리 용 팟과 그의 L.Y.P. 그룹, 오스마치 리조트를 인신매매 및 사이버 사기 강제 노동 연루 혐의로 제재 명단에 올렸다. 태국 군부 대변인은 공습 목표가 "미국 정부에 의해 제재된 곳"임을 명시적으로 언급하며 작전의 정당성을 강조했다.
태국 정부는 이번 군사 작전을 공식적으로 "사기 군대와의 전쟁(War against the Scam Army)"으로 명명했다. 캄보디아 국경 지역의 경제특구와 카지노 단지가 지난 수년간 온라인 도박장으로 위장한 대규모 사이버 사기 센터로 변질됐다는 것이 태국 측 주장이다. 이른바 '돼지 도살(Pig-butchering)'로 불리는 신종 금융 사기 수법은 피해자와 장기간 신뢰 관계를 형성한 뒤 암호화폐 투자를 유도해 거액을 가로채는 방식이다. 미국 연방수사국(FBI)에 따르면 2023년 암호화폐 관련 사기 피해액만 39억 6천만 달러에 달하며, 그 진원지 중 상당수가 캄보디아에 위치해 있다.
한국인도 피해를 입었다. 지난 8월 캄보디아 캄포트(Kampot)주 보코르 산 인근에서 20대 한국인 대학생 박민호 씨가 숨진 채 발견됐다. 조사 결과 박 씨는 취업 사기에 속아 캄보디아로 입국한 뒤 감금 상태에서 범죄 조직에 의해 사망한 것으로 드러났다. 한국 정부는 포이펫, 캄포트 등지를 여행 금지 구역으로 지정하고 캄보디아 정부에 강력한 대책을 요구했으나, 캄보디아 당국의 미온적인 태도로 실질적인 해결에 난항을 겪고 있다.
캄보디아 국방부는 태국군이 민간인 거주 구역과 상업 시설을 무차별적으로 폭격했다고 강력히 반발했다. 캄보디아 측은 태국 F-16 전투기가 투하한 폭탄 2~3발이 포이펫 시내의 창고와 건물들을 파괴했으며, 이로 인해 민간인 2명이 부상을 입고 인근 카지노 단지들이 파손됐다고 발표했다. 캄보디아 내무부는 12월 7일 교전 재개 이후 태국의 공격으로 최소 4곳의 카지노가 직접적인 피해를 입었다고 주장하며, 태국이 의도적으로 캄보디아의 경제 기반인 카지노 산업을 겨냥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미국의 태도는 표면적인 '우려'와 실질적인 '묵인'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0월 말레이시아 안와르 이브라힘 총리와 함께 캄보디아-태국 정상 간의 '쿠알라룸푸르 평화 협정'을 중재했다고 과시했으나, 이 협정은 두 달도 지나지 않아 파기됐다. 트럼프 대통령은 12월 12일 양국이 다시 포괄적 휴전에 합의했다고 주장했으나, 태국 정부는 곧바로 이를 부인하며 전투를 지속했다. 태국 아누틴 찬비라쿨(Anutin Charnvirakul) 총리는 트럼프와의 통화에서 캄보디아의 지뢰 도발을 강조하며 군사 행동의 불가피성을 설득했고, 트럼프는 이를 "도로변 사고" 정도로 치부하면서도 태국의 주권 행사 권리를 인정하는 듯한 태도를 보였다.
아세안(ASEAN) 의장국인 말레이시아는 중재에 나섰으나 한계를 드러냈다. 안와르 이브라힘 총리는 "신중한 낙관론(Cautious Optimism)"을 피력하며 12월 22일로 예정된 아세안 외교장관 특별 회의에서 해결책을 도출할 수 있을 것이라 기대했다. 그러나 태국 외무부는 협상 재개를 위해 캄보디아가 먼저 세 가지 조건을 충족해야 한다고 못 박았다. 캄보디아의 선제적이고 진정성 있는 휴전 선언, 지속적이고 실질적인 적대 행위 중단, 지뢰 제거에 대한 진정성 있는 협력이 그것이다.
국경 분쟁은 양국 경제에 궤멸적인 타격을 입혔다. 태국 상무부 통계에 따르면 9월 기준 태국의 대(對) 캄보디아 국경 무역액은 1,100만 바트에 불과해 전년 동기 대비 99.9% 감소했다. 정상적인 상황에서 월 수십억 바트 규모였던 교역이 완전히 중단된 것이다. 포이펫-아란야프라텟(Aranyaprathet) 국경 검문소는 하루 수천 대의 물류 트럭이 오가던 동남아 물류의 동맥이었으나, 현재는 군용 차량과 피란민들만이 이용하고 있다. 태국 산업연맹은 국경 무역 중단으로 인한 일일 손실액을 약 5억 바트(약 190억 원)로 추산했다.
미국 국무부의 2024년 인신매매 보고서는 캄보디아 정부 관료들이 사기 범죄 시설을 소유하거나 이로부터 수익을 창출하고 있으며, 부패한 경찰과 사법 시스템이 범죄 조직을 비호하고 있다고 명시했다. 리 용 팟 상원의원은 훈 센 전 총리의 오랜 측근이자 훈 마넷 총리의 자문역으로, 캄보디아 서부 국경 지역의 경제권을 장악하고 있는 인물이다. 태국의 공습은 캄보디아 정권의 핵심 자금줄이자 국제적 범죄의 온상으로 지목된 시설을 타격함으로써 '범죄와의 전쟁'이라는 명분을 강화하려는 다목적 전략으로 해석된다.
22일 아세안 외교장관 회의의 성패, 리 용 팟의 신변 변화, 그리고 트럼프 행정부의 추가 제재 여부가 사태 해결의 열쇠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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